QT 나눔
제 목 [] 또 길을 떠나
본문
민수기 22:1-14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친다. 모합왕 발락은 두려움으로 번민하며 이스라엘을 저주할 점술사 발람을 부르기 위해 장로들을 보낸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지 말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 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시고 발람은 함께 가기를 거절한다.
광야에서 사십년동안 셀 수도 없이 ‘또 길을 떠났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 입성을 앞두고 건너편 모암 평지에 마지막 진을 치고 있는 광경을 그려 보다가, 그리스도인의 삶이 ‘또 길을 떠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토론토에 가려고 공항에 앉아 있으니 더욱더 그러한 심경이 되나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길을 떠남으로 가나안땅에 가까워진것 처럼, 하나님의 명령대로 ‘또 길을 떠나는 삶’은 그만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저주하지 않는 삶이란 생각도 한다. 두려움의 대상을 저주함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해결 하려던 발락의 방식은 하나님을 믿기전 나의 방식이었다. 이제 나는 두려움의 대상을 더이상 저주하지 않고, 두려움을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두려움의 대상에게 일하시며, 마음의 두려움을 평강으로 바꾸어 주실때 까지 기다릴수 있게 되었다.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발락에게 질문 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이미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계실텐테 왜 이 질문을 발락에게 하셨을까 궁금해 진다. 너와 대화를 나누는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은 나를 저주하는 것이다. 너는 나를 저주 하겠느냐. 발락에게 질문 하시며, 질문을 경고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을 보고 두려워 했던 발락과는 이제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숫자보다 숫자뒤에 계신, 숫자 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두려움을 기도로 바꾸는 삶, 발락처럼 다 뜯어먹힐것 같은 두려움을 키우지 않고 주안에서 평안을 얻는 삶, 모압과 미디안의 장로들처럼 더이상 손에 복채를 들고 사람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삶, 사람의 마음을 사려고 뇌물을 들고 다시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산다. 하나님께는 의지하는 마음만 드리면 되기 때문이다.
발람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를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는 하나님의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이세상 만민에게 저주와 비방의 입은 닫고, 그리스도의 복음만 전하라는 말씀으로 듣는다. 당장은 남편과 자녀들에게 그 어떤 비난의 말도 멈춰야 겠다고 적용한다. 매일의 삶이 주안에서 ‘또 길을 떠나는 삶’이 되기를 기도 드리며, ‘또 길을 떠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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