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예배의 날
본문
누가복음 2:8-20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올라갔을 때에, 그 지역에 있던 목자들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나 주의 영광을 그들에게 비춥니다. 무서워하는 목자들에게 천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며,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소식을 전합니다. 천사는 베들레헴에 너희를 위해 구주가 나셨고, 그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라고 말해줍니다.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하나님을 찬송하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전합니다. 목자들은 즉시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뉘인 아기를 찾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것을 전해 줍니다. 사람들은 듣고 놀랍게 여겼지만, 마리아는 들은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 하였습니다. 목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갑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말씀은 12절,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라는 말씀 입니다. 강보에 싸인 아기는 보통 있는 일이라 구별이 어려울텐데, 강보에 싸인 아기가 말구유에 있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표적을 주실때, 분명히 알수 있는 표적을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강보에 싸인 사람의 아기가 말 구유 위에 놓여 있는것 처럼요. 너무 눈의 띄어서 못찾을수 없는 분명한 표적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며, 나에게도 그런 표적을 주셨을까 곰곰 생각해 봅니다.
저에게도 분명하게 주신 표적이 떠오릅니다. 남편을 잃고 삶의 소망까지 잃었던 저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증거의 표적은 저 자신이 되었습니다. 아주 기이했으니까요. 1년이 넘게 가득찬 슬픔과 어쩌지 못하는 절망으로 하루를 죽은자처럼 지내던 제 마음에 알수 없는 기쁨이 올라오던 날이 아직도 선명히 떠오릅니다. 어린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서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눈부신 햇살과 알수 없는 따듯함과 포근함이 나를 감싸고, 제 안에서 까닭 모를 평안과 기쁨이 올라오는게 느껴졌습니다. 순간 저는, 남편을 잃고 이제 나는 미쳐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제가 달라졌습니다. 숨을 쉴수 있었고, 밥을 먹을수 있었고, 목소리톤이 두 단계쯤 올라갔고, 하루를 활기 차게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미친게 아니었고,하나님의 구원의 표적 이었고, 그 표적은 너무도 선명하고 기이했습니다. 말 구유에 뉘인 아기처럼요.
그런 분명한 표적, 저도 그런 표적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자. 제 삶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되는 그런 표적요. 그러려면 저의 삶도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강보에 쌓인 아기가 아기 침대에 누워있는 상식이 아니고, 말구유에 누워있는 비 상식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빰을 내어주는 비 상식, 핍박을 받으면 감사하는 비 상식, 나를 비난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비 상식, 나에게 밥을 사줄수 없는 사람에게 밥을 사주는 비 상식, 원수를 사랑하는 비상식이 내가 실천해야 하는 표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지난 주말에 교회에 안수집사를 뽑는 선거가 있었는데, 선거권을 가진 성도의 자격 여부와 개표 과정에 불투명성으로, 지금 교회는 소란한 상황속에 있습니다. 저는 그 과정중에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도 고민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기이한 표적이 되는 삶에 대해 묵상해 보니, 답을 알것 같습니다. 교회의 결정은 세상의 결정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 졌습니다. 교회는 손해를 보는 결정, 어리석어 보이는 결정, 허물을 덮는 결정을, 이해가 안가는 결정을, 할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강보에 싸인 아기를 말구유에 누이는 결정 말입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낮아지신 결정 말입니다. 그렇다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결정, 무조건 순복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마음의 흔들림이 잠잠해지고, 교회의 결정된 사항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두번째로,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말씀을 들었을때 보여주는 세 가지 다른 반응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번째는8절과 9절 말씀, 그 지역의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목자들의 반응 인데요, 그들은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천사가 나타났는데 무서워하는 것은 잘못된 걸까요. 아닐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예상 가능한 반응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은 무서워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무서워 했던 마음을 극복하고, 이내 말씀을 듣고 행동에 옮기는 순종을 보여 줍니다. 천사들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하고, 떠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천사들이 가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목자들은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라고 말하며, 곧바로 달려 가는 자발적 순종을 보여 줍니다.
두번째는 18절 말씀,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라는 말씀인데요, 그곳에 있었던 듣는 자들의 반응 입니다. 놀랍게 여긴다는 것이 너무 놀라워서 믿을수 없었다고 해석이 되는 이유는, 그 다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반응 앞에 있는 But 이라는 접속사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반응과는 달랐다는 의미 일테니까요. 그들은 놀라움의 감정에 멈추어 버린듯 합니다. 놀라기만 했을뿐, 그 다음 행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분의 경우 나의 모습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하고 사라지는 감정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두번째와 반대인, 세번째는 19절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마리아의 반응 인데요, 그당시에 큐티라는 묵상 방법은 없었겠지만, 그녀는 분명 큐티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전한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마리아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마리아는 아마도 자신에게 찾아왔던 천사 가브리엘이 떠올랐을것 같습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은 예수이고,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게 될것이라고 알려 주었던, 그의 말씀이 생각 났을것 같습니다. “주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라고 자신이 대답했던 것도 기억하며,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재확인 하고, 주의 말씀이 이루어질 미래를 기대했을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의 등장 인물들인, 목자들과, 사람들과, 마리아를 통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각기 다른 모습들을 보면서,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어떤 모습이 내가 따라야 할 모범일까? 어떤 모습이 내가 반면교사 삼아 피해야 할 행동일까? 생각해 봅니다. 돌아보니,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식을 전해 듣고도 놀라지도 않는, 아니 조롱하고 무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목자들의 순종을 배우려 하고, 마리아의 반응을 동경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처럼 듣고 놀라기만 하지 않고, 목자들처럼 듣는 즉시 믿고 행하는 순종을 해야 겠다고, 마리아처럼 들은 말씀을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며 생각하는 순종을 해야겠다고 적용 합니다. 큐티 라이프와 함께 하는 큐티 묵상 훈련을 통해, 마리아의 순종을 계속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마지막으로 다가온 말씀은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라는 말씀을 읽으며, 사람들 사이의 화평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요 하고 하나님깨 질문 드립니다. 아마도 지금 저희 교회의 사람들 사이에 화평이 깨져가고 있는 현실이, 체한 것처럼 마음에 걸려서 인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위의 사람들의 평화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다고 말씀 하시는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화평은 그들 스스로 만들수 없다고 말씀 하시는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먼저 화평해야. 사람들과의 관계도 화평해 질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나눈 화평으로 사람들과의 화평을 이루어 갈수 있다고 깨닫게 하십니다. 결국, 교회안의 사람들 사이의 회복을 이루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땅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을 중에 평화를 이미 이루신 하나님께 더욱 더 낮아진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과 관계 회복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기도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내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약속하신 구세주를 이 땅에 보내주신 기쁨의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그분의 낮아지심과 사랑을 기억하는 예배의 날입니다. 오늘 말씀의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생각 하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처럼, 스스로 낮아지는 순종을 하도록, 저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 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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