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거하라
본문
디모데후서 3:10-17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고난과 박해를 받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자신을 건지셨다는 것을 바울은 디모데에게 간증한다. 악하고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악행을 계속할 것이므로, 디모데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조언한다. 바울로 부터 배운것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에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라고 말씀 하신다.
14절,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continue). 거한다는 단어가 완료형 인줄 알았는데 진행형임을 깨닫는다. 13절, 악하고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 악해지고 더욱더 속이기를 계속 하다가, 결국은 스스로도 속게 된다는 말씀을 읽으며, 그러기 때문에 ‘거하는’ 것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행형 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거하기’를 계속할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의 삶에 당연한 고난과 박해가 왔을때, 성경과 믿음의 사람들에게 배훈 교훈과 행실과 목적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10)로, 고난과 박해를 감당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고난을 받는 만큼 더욱더 ‘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그렇게 ‘거하기’를 계속하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그런데 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왜 박해가 올까?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조용하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거칠게 산다는 의미일수 있을것 같다. 경건하게 살기 위해 때로는 세상을 거스르는 결정과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친정살이 시작에, 엄마에게 아빠 험담을 하지 말자고 말했을때, 납득하지 못하시는 듯한 엄마의 눈빛이 기억난다. 엄마는 자신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딸에게 털어논다는 유익(?)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무익을 넘어 친부를 증오하는 죄인의 인생을 살게 하였다는 것을 성경을 읽고 깨닫게 되었다. 사십년만에 아빠에 대한 험담을 거부한 딸에게 엄마의 핍박이 시작 된것은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말씀을 읽으며 당연한 고난 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올해 친정살이에서 엄마는 미운 말을 하시며 내 마음을 흔들기도 하셨지만, 놀랍게도 아빠는 순한 양이 되셨고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으셨다. 그 긴 세월동안 모녀가 자신의 대한 험담을 하는것도, 멈춘것도 다 아시는 것이 아날까. 하나님께서 다 아시는 것처럼 말이다.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는 바울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는다. ‘거하기’ 위해 때로 또는 항상 고난을 받더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15)가 나에게 있다. 바울을 그 모든 고난과 박해에서 건지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이시다. 믿음 안에서 만난 한 자매를 만나러 가는 대구행 기차안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서로에게 바울과 디모데가 되기를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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