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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송송> 과 <어슷어슷> 의 차이...
등록일 2010-01-26
작성자 심수희
본문
묵상 나눔 #580 을 올려 놓으면서
11-3-07 에 요한 일서를 묵상하면서 기록해 놓았던
아래의 내용도 이곳에 올려 놓습니다.
(혹시 2007년에 쓴 글을 왜 갑자기
이곳에 올려 놓았나 궁금해 하실까봐서...)
<송송>과 <어슷 어슷> 의 차이 (11-3-07 기록)
약 10년전의 일이다.
남편이 직장을 옮기느라 거의 20년 살던 휴스턴을 떠나
낯선 어스틴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침례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얼마후에 자매 회장을 선출하는데 내가 당첨 (?)이 되었다.
그 교회는 90%가 유학생,
교인 전체의 10%정도가 교포로 구성된 특수 교회였다.
부부가 함께 박사학위 과정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고
그렇지 않으면 비좁은 <학생 아파트>에서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몇년째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보니
그래도 비교적 내가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였다.
그때 우리 아이들이 세살, 다섯살이었을때라 힘들때였으나
나는 원하지 않는 상황속에 던져진 주사위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직분을 그저 받아 들이게 되었다.
새해를 맞아 교회에서 떡국을 끓이느라
자매님들에게 일을 배분하게 되었는데
어떤 자매에게 파 10단을 <어슷 어슷> 하게 썰어 오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1년 반이 지났고 남편의 직장 때문에
우리 가족은 그곳을 떠나 버지니아로 또 이사를 하게 되었다.
파 10단을 부탁받았던 그 자매가 고맙게도
나를 위하여 음식을 마련하고 송별회를 열어 주었다.
그때 그 겡상도 자매가 내게 하는말,
“언니, 생각나나?
그때 나더러 파 열단 썰어오라고 한것 말이다.
그때 내가 안 그랬나?
파 열단을 ‘송송’도 아니고 ‘어슷어슷’ 썰어오라니…” 라며
엄청 투덜 거렸었다고 한다.
내가 그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자매와 관계도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시켰으니 별로 내키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송송’보다는 ‘어슷어슷’이 훨씬 더 어려웠던가 보다...
어쨌든 그 일로 내가 깨달은것이 있다.
세상일도 아니고 특히 주님의 일을 할때에는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을...
그렇다고 일일이 다 찾아 다니면서
웃음공세를 퍼 부며 가식적으로 할것까지야 없지만
주님의 일을 할때에는
그저 일을 성사 시키기 위해 위에서 명령하듯 하다보면
지체가 상처를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관계가 우선이라는것을 염두해 두게 되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 ㅇㅇ 자매,
지금은 교수가 된 남편을 따라 한국에 나가 있지만
약 3,4년전에 어떻게 내 전화 번호를 알았는지 내게 전화를 했다.
남편이 이곳에 출장을 올 일이 있어 온 식구가 동행을 한 김에 나를 찾아 낸 것이다.
우리 집에 들러 식사를 하며
신앙 이야기, 옛 이야기를 하며 추억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그 자매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속으로 웃음지었다.
<송송>과 <어슷어슷>...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아무 차이도 아닌것을…
이번 여름부터 시작된 묵상 모임,
로마서 12장부터 요한 일서, 이서, 삼서를 이어 묵상하는중
계속해서 반복된것이 ‘사랑’ 이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피차 사랑하라> 는 명령이었다.
요한서신에서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거리낌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어
무엇이든지 구하는대로 받을수 있다고 한다.
사랑을 하라는 계명을 지키는것이 <무거운것이 아니라>고 한다.
세상을 이긴 믿음으로 <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수요일 저녁에
목사님께서 요나에 대하여 말씀하신것이
요즘 묵상한 내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순종이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에 내킬때까지 기다렸다가
순종하고 사랑을 한다면 우린 평생 걸려도 절대로 할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거룩한 부담을 품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만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하나님께서 쌍방간의 마음의 상처를 만져 주셔서
두려움이 아닌 담대함으로 용서를 구할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고 믿는다.
어느덧 10월도 지나고 11월로 접어 들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말씀묵상을 통해 주님을 경험한 만큼
나의 삶에서 실천을 하고 있는가를 주님께서는
보시기를 원하실 것이다.
어스틴에서 있었던 그 작은 에피소드로 인하여
지체들에게 상처를 주지않고
사랑의 관계를 맺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노력한대로 꼭 결과가 나타 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나의 모습을
주님께서 count 해 주실것을 확실히 믿는다.
11-3-07 에 요한 일서를 묵상하면서 기록해 놓았던
아래의 내용도 이곳에 올려 놓습니다.
(혹시 2007년에 쓴 글을 왜 갑자기
이곳에 올려 놓았나 궁금해 하실까봐서...)
<송송>과 <어슷 어슷> 의 차이 (11-3-07 기록)
약 10년전의 일이다.
남편이 직장을 옮기느라 거의 20년 살던 휴스턴을 떠나
낯선 어스틴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침례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얼마후에 자매 회장을 선출하는데 내가 당첨 (?)이 되었다.
그 교회는 90%가 유학생,
교인 전체의 10%정도가 교포로 구성된 특수 교회였다.
부부가 함께 박사학위 과정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고
그렇지 않으면 비좁은 <학생 아파트>에서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몇년째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보니
그래도 비교적 내가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였다.
그때 우리 아이들이 세살, 다섯살이었을때라 힘들때였으나
나는 원하지 않는 상황속에 던져진 주사위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직분을 그저 받아 들이게 되었다.
새해를 맞아 교회에서 떡국을 끓이느라
자매님들에게 일을 배분하게 되었는데
어떤 자매에게 파 10단을 <어슷 어슷> 하게 썰어 오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1년 반이 지났고 남편의 직장 때문에
우리 가족은 그곳을 떠나 버지니아로 또 이사를 하게 되었다.
파 10단을 부탁받았던 그 자매가 고맙게도
나를 위하여 음식을 마련하고 송별회를 열어 주었다.
그때 그 겡상도 자매가 내게 하는말,
“언니, 생각나나?
그때 나더러 파 열단 썰어오라고 한것 말이다.
그때 내가 안 그랬나?
파 열단을 ‘송송’도 아니고 ‘어슷어슷’ 썰어오라니…” 라며
엄청 투덜 거렸었다고 한다.
내가 그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자매와 관계도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시켰으니 별로 내키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송송’보다는 ‘어슷어슷’이 훨씬 더 어려웠던가 보다...
어쨌든 그 일로 내가 깨달은것이 있다.
세상일도 아니고 특히 주님의 일을 할때에는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을...
그렇다고 일일이 다 찾아 다니면서
웃음공세를 퍼 부며 가식적으로 할것까지야 없지만
주님의 일을 할때에는
그저 일을 성사 시키기 위해 위에서 명령하듯 하다보면
지체가 상처를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관계가 우선이라는것을 염두해 두게 되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 ㅇㅇ 자매,
지금은 교수가 된 남편을 따라 한국에 나가 있지만
약 3,4년전에 어떻게 내 전화 번호를 알았는지 내게 전화를 했다.
남편이 이곳에 출장을 올 일이 있어 온 식구가 동행을 한 김에 나를 찾아 낸 것이다.
우리 집에 들러 식사를 하며
신앙 이야기, 옛 이야기를 하며 추억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그 자매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속으로 웃음지었다.
<송송>과 <어슷어슷>...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아무 차이도 아닌것을…
이번 여름부터 시작된 묵상 모임,
로마서 12장부터 요한 일서, 이서, 삼서를 이어 묵상하는중
계속해서 반복된것이 ‘사랑’ 이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피차 사랑하라> 는 명령이었다.
요한서신에서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거리낌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어
무엇이든지 구하는대로 받을수 있다고 한다.
사랑을 하라는 계명을 지키는것이 <무거운것이 아니라>고 한다.
세상을 이긴 믿음으로 <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수요일 저녁에
목사님께서 요나에 대하여 말씀하신것이
요즘 묵상한 내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순종이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에 내킬때까지 기다렸다가
순종하고 사랑을 한다면 우린 평생 걸려도 절대로 할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거룩한 부담을 품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만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하나님께서 쌍방간의 마음의 상처를 만져 주셔서
두려움이 아닌 담대함으로 용서를 구할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고 믿는다.
어느덧 10월도 지나고 11월로 접어 들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말씀묵상을 통해 주님을 경험한 만큼
나의 삶에서 실천을 하고 있는가를 주님께서는
보시기를 원하실 것이다.
어스틴에서 있었던 그 작은 에피소드로 인하여
지체들에게 상처를 주지않고
사랑의 관계를 맺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노력한대로 꼭 결과가 나타 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나의 모습을
주님께서 count 해 주실것을 확실히 믿는다.
댓글목록

윤지현님의 댓글
윤지현 작성일
항상 느끼는 거지만 수희 자매님은 글을 참 잘 쓰세요~
언제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지체들을 사랑으로 섬기려 애쓰는
자매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심수희님의 댓글
심수희 작성일
에이~ 아닌데... 요. (부끄 부끄...)
다음주 자매님의 암송 위해 기도합니다.
홧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