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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렉치오 디비나 (영적 독서)란 무엇인가?

등록일 2013-09-05
작성자 장광원

본문

“렉치오 디비나”(영적 독서)란 무엇인가?

   “렉치오 디비나”는 성경을 질문과 대답, 개념 정의와 교의로 탈인격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독서 방식입니다. 성경의 전체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혼합하고자 하는 독서 방식입니다. 단순한 독서로 축소되는 것을 거부하고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래하고 설교하고 기도하고 질문하고 아이를 낳고 죽은 자를 묻고 예수님을 따르는 소리를 듣고, 그것에 반응하며 그 말씀을 살고자 하는 독서 방식입니다.

   “렉치오 디비나”는 네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렉치오”(성경을 읽는다) “메디타티오(묵상한다),“오라티오(기도한다),“콘템플라티오(말씀대로 산다). 그러나 이렇게 이름을 붙인다고 그것이 순차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읽는 것(렉치오)은 선형적 행위이지만, 영적(디비나)독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네 요소가 다양한 순서와 배치로 반복되는 고리 모양의 나선형과 흡사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상호 작용을 인식해야 합니다.

“렉치오”(읽는다)

   읽는 것이 제일 먼저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독서보다 언제나 선행하는 것은 듣고 말하는 것입니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구두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책으로부터 혹은 글 쓰는 사람으로부터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웁니다. 그러나 기록된 말은 말하는 목소리와 듣는 귀를 소생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기록된 말은 구두로 한 말보다 더 명쾌합니다. 그러나 읽기의 출발점은 문법과 사전이 아니라 성경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은유를 고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은유가 작용하는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결코 성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은유로 꽉 차 있어서 우리가 만약 논리적 분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문자적인 것인 것만이 진지함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 난처해지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은유는 문자적으로는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행동과 임재는 우리의 이해를 훨씬 벗어나기 때문에 침착한 묘사와 개념 정의 외에 더 풍부한 의미를 담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유라는 수단을 통해서 개별적인 사물이상의 것을 보며, 모든 것을 다른 모든 것과의 역동적인 긴장과 관계 속에서 인식합니다. 은유는 설명하지도, 규정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본질의 내부로 초청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하게 된 모든 실재에 관여하게 합니다.

“메디타티오”(묵상한다)

   말이 무엇보다도 목소리와 귀를 수단으로 교환되었을 때는 언어가 살아있었고, 말하고 듣는 행위에서 그 생명력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기록되는 순간 기억력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누가 말하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메디타티오”는 독서의 행위에서 기억력이 계속해서 활동하게 하는 훈련입니다. 묵상은 성경에 나오는 말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성경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성경의 말씀을 우리 안으로 가져오면, 우리는 성경이 우리를 그 안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세계는 우리의 정신이나 경험보다 훨씬 크고 더 진정한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묵상은, 성경을 영감 받은 단편의 모음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되고 일관성 있는 전체로서 읽도록 훈련하는 영적 독서의 한 측면입니다. 묵상은 성경 읽기를 분해해서 단절된 신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에 대항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묵상은 침입이 아니라 반추입니다. 계시 전체의 이미지와 이야기가 우리의 이해력을 꿰뚫고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묵상은 참여입니다.

“오라티오”(기도한다)
   다음으로 기도 즉 “오라티오”가 있습니다. 영적 독서는 성경이 기록된 정확한 방식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하고, 묵상과 수용의 자세로 성경의 세계로 들어갈 것을 요구하며, 또한 기도를 통한 우리의 반응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계시된 세계는 우리의 세계보다 너무도 커서 우리는 단번에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인내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 안에서 계시하시는 실재는 아주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그 어떤 것과도 다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실재 속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발견하는데 익숙해지는 과정입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통제에서 신비로, 자아에서 영혼으로, 즉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계시하신 것에 적극적인 삶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계시하시는 창조와 구원 그리고 공동체에 참여하는 행위입니다.

“콘템플라티오”(말씀대로 산다)

   “렉치오 디비나”의 마지막이자 그것을 완결 짓는 요소는 관상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상의 의미는 수사와 수녀들이 수도원에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관상은 읽고, 묵상하고, 기도한 말씀을 나날의 일상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어떤 것도 낭비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저장해 두지 않고 삶에서 그것을 다 써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삶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기도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형성된 삶입니다. 관상의 삶은 특별한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독교적 삶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살아낸 삶이어야 합니다.

  “콘템플라티오”는 다른 세 개의 요소들과는 달리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일어납니다. 그것은 선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수용하고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관상은 우리의 읽기와 묵상하기와 기도하기에 또 한 가지 덧붙이는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와 우리의 반응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무의식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 즉 예수님과 일치하는 삶입니다. “렉치오 디비나”는 성경을 읽는 방법론적인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말씀을 살아내는 습관이 계발되고 발전된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기독 교회를 형성하고 성경이 이 세상에서 소금과 누룩이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이 책을 먹으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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