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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경의 모든 책은 이야기로 되어 있음을 아십니까?
등록일 2008-07-13
작성자 장광원
본문
성경의 모든 책은 이야기로 되어 있음을 아십니까?
앞의 내용은 성경의 인격적이고 계시적인 성격에 대한 기초적인 안내였습니다. 성경의 말은 모두 인격 대 인격으로 하는 말입니다. 관계 맺는 존재로서 최고의 역량을 가진 우리에게 세 위격의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말을 거십니다. 성삼위일체의 개념은 이성경이 지닌 더 이상 축소될 수 없는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고, 그 성경에 기록된 내용에 유일하게 적합한 독서 방법도 인격적이고 참여적인 독서라는 것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이 인격적인 말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살펴보고 예수님의 방식과 우리가 삶을 사는 방식을 연결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의 형식이 우리 삶의 형식임을 주목하십시오.
성경은 하나의 형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이야기라는 형식을 가진 거대하고 포괄적인 내러티브입니다. 이야기는 누구든지 가장 접근하기 쉬운 말의 형식입니다. 어린 아이이든 노인이든 문맹이든 아니든 모두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야기는 단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정직한 이야기는 우리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정직한 이야기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복을 주시는 넓은 세상으로 처음에는 상상력을 통해서 그 다음에는 복음을 통해서 데리고 갑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우리의 필요나 야망보다 더 진실한 무엇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이야기가 “예화”나 “증언” 혹은 “영감”으로 지위가 하락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사람들은 이야기보다는 정보를 선호하는 비성경적인 기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 “과학적” 혹은 “신학적”이라고 불리는 비인격적 정보(교리나 철학, 역사의 형태를 띠는)를 모으는 것이 우리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그 정보를 해석해 달라고 외부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보를 가지고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구원을 위해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 안에서 관계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는 것은, 하루하루의 실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대로의 인생을 설명해 주는 최고의 언어 수단입니다. 이야기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고 관계적이고 인격적입니다. 그래서 자기 삶 및 자기 영혼과의 접촉을 잃어버렸을 때 다시 그 접촉을 회복하게 해주는 최선의 언어 수단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거의 대부분 이야기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 삶을 성경에서 읽는 내용에 굴복시키면, 우리 이야기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우리 이야기를 보게 될 것이다.
성경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광대하고 포용적인 계시의 세상은 내러티브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결코 세분화하거나 사유화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세분화하면 형식은 모호해지고 상황에 따라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된 정보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계시로서의 기능을 갖지 않게 됩니다. 성경을 사유화해서 그것을 흔히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사용할 때 우리는 형식을 모호하게 만듭니다. 사적인 것은 소유하고 격리시키며, 개인적으로 통제하거나 사용하기 위해서 공동의 선으로부터 분리됩니다. 성경을 사유화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훔치는 행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야기가 빈약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심각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았을 때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정보와 동기를 표현하는 “심각한 말”로 전환하고, 우리의 인생을 크고 일관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 제공되는 형식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거의 눈치 채지 못합니다. 성경이 쓰인 방식은 모든 면에서 성경 안에 쓰인 내용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야기는 문장에 형식을 부여하고 문장은 이야기에 내용을 부여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이 둘이 함께 가야하며, 철저하게 통합되어야 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이 책을 먹으라" 중에서
앞의 내용은 성경의 인격적이고 계시적인 성격에 대한 기초적인 안내였습니다. 성경의 말은 모두 인격 대 인격으로 하는 말입니다. 관계 맺는 존재로서 최고의 역량을 가진 우리에게 세 위격의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말을 거십니다. 성삼위일체의 개념은 이성경이 지닌 더 이상 축소될 수 없는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고, 그 성경에 기록된 내용에 유일하게 적합한 독서 방법도 인격적이고 참여적인 독서라는 것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이 인격적인 말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살펴보고 예수님의 방식과 우리가 삶을 사는 방식을 연결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의 형식이 우리 삶의 형식임을 주목하십시오.
성경은 하나의 형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이야기라는 형식을 가진 거대하고 포괄적인 내러티브입니다. 이야기는 누구든지 가장 접근하기 쉬운 말의 형식입니다. 어린 아이이든 노인이든 문맹이든 아니든 모두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야기는 단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정직한 이야기는 우리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정직한 이야기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복을 주시는 넓은 세상으로 처음에는 상상력을 통해서 그 다음에는 복음을 통해서 데리고 갑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우리의 필요나 야망보다 더 진실한 무엇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이야기가 “예화”나 “증언” 혹은 “영감”으로 지위가 하락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사람들은 이야기보다는 정보를 선호하는 비성경적인 기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 “과학적” 혹은 “신학적”이라고 불리는 비인격적 정보(교리나 철학, 역사의 형태를 띠는)를 모으는 것이 우리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그 정보를 해석해 달라고 외부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보를 가지고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구원을 위해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 안에서 관계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는 것은, 하루하루의 실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대로의 인생을 설명해 주는 최고의 언어 수단입니다. 이야기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고 관계적이고 인격적입니다. 그래서 자기 삶 및 자기 영혼과의 접촉을 잃어버렸을 때 다시 그 접촉을 회복하게 해주는 최선의 언어 수단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거의 대부분 이야기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 삶을 성경에서 읽는 내용에 굴복시키면, 우리 이야기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우리 이야기를 보게 될 것이다.
성경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광대하고 포용적인 계시의 세상은 내러티브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결코 세분화하거나 사유화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세분화하면 형식은 모호해지고 상황에 따라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된 정보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계시로서의 기능을 갖지 않게 됩니다. 성경을 사유화해서 그것을 흔히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사용할 때 우리는 형식을 모호하게 만듭니다. 사적인 것은 소유하고 격리시키며, 개인적으로 통제하거나 사용하기 위해서 공동의 선으로부터 분리됩니다. 성경을 사유화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훔치는 행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야기가 빈약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심각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았을 때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정보와 동기를 표현하는 “심각한 말”로 전환하고, 우리의 인생을 크고 일관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 제공되는 형식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거의 눈치 채지 못합니다. 성경이 쓰인 방식은 모든 면에서 성경 안에 쓰인 내용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야기는 문장에 형식을 부여하고 문장은 이야기에 내용을 부여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이 둘이 함께 가야하며, 철저하게 통합되어야 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이 책을 먹으라" 중에서
댓글목록

김 민 재님의 댓글
김 민 재 작성일
감사드립니다.
올려 주신 글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