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들지 못하였으니
본문
민수기 26:52-65
모세와 아론이 시내 광야에세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64). 사십년후 드디어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두번째 계수를 마친 모세와 엘르아살이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14:35)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직면하고 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더라도 각 사람의 죽음의 가치는 다를것이라는 생각을 모세를 바라보며 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것 이겠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가나안땅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도록 우리를 훈련 시키기 원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어도 모세가 실패자가 아닌 이유는, 실수도 있었지만 연단도 받았지만 모세는 광야의 사계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걸어 갔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본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광야가 누군가에겐 죄의 댓가를 치르는 사망의 장소가 되지만, 또 누군가에겐 연단을 받아 더 정결하게 되는 훈련의 장소가 되는 것을 본다. 나에게는 지금 걸어가는 광야길이 어떤 의미이며, 어떤 자세로 광야생활에 임하고 있는지 멈추어 생각해 본다. 나에게는 광야의 삶이, 어제도 기억하지 않고, 내일도 생각하지 않는, 오늘에 집중하는 삶이다. 언제 장막을 걷을지, 언제 다시 장막을 칠지, 언제 출발할지, 언제 멈추어야 할지.. 집중 하려면, 어제를 추억하고 내일을 염려할 시간이 없다.
반드시 광야에서 죽는 모세의 그룹에 속하더라도,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 갈렙과 여호수아 그룹에 속하더라도, 두 그룹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는 패배와 승리로 가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두 그룹 모두 사랑하시는 백성들 이라는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광야에 살았지만 결국 계수되지 못한 사람들도,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지만 총계수에 들지 못하는 레위인들도,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람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기업을 받은 자들 이라는 마음을 주시니, 이 아침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의 충만함이 까닭 모를 두려움을 덮는다.
세상에 계수 되지 않더라고 하나님께 계수 되기를 소망하는 삶, 하나님께 계수됨이 기뻐서 세상의 계수에 신경 쓰지 않는 삶, 세상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은 말씀을 읽을때 마다 경이롭기만 하다. 모세처럼 가나안땅에 ‘들지 못하더라도’ 마지막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죽을 장소와 때까지도 정해주신대로 죽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세상의 계수가 아닌 하나님께 계수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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