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한사람이라도 더
본문
2014년 11월 2일
요한계시록 6: 9-17
10: 큰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도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어린양이 다섯째 인을 떼실 때,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또 그들이 말한 증언 때문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외치는 소리를 요한은 들었다.
“빨리 이 땅을 심판하셔서 자신들이 흘린 피의 원한을 갚아달라고” 말이다.
이에, 그들과 같이 하나님 때문에 순교하는 자들의 수가 찰 때까지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는
당신 때문에 순교한 자들의 억울함을 십분 이해할 만도 하신데,
이 땅의 심판에 서두르시기는 커녕
오히려 기다리라고 말하신다.
당신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이 차야 한다고 말이다.
이미 인이 떼어지면서 심판이 시작되었고
재앙으로 인한 혼란과 혼돈 속에서도
순교자의 수가 더 채워져야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 일까?
왜 그러기까지 어린양은 기다리셔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잔인하신 어린양께서
자신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증명하고 싶으신 것도 아니고 말이다.
가장 먼저 순교하신 어린양께서 어떤 마음으로 그러셨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인류를, 그 안에 포함된 나를 구원하시려고, 가장 먼저 ‘순교’하셨다.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 어린양을 닮아 또 ‘순교’하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까지 어린양은 심판을 미루고 계신 것이다.
이 땅을 보면, 한시라도 빨리 심판을 해서 멸망시켜 버리고 싶은 심정이셨을지라도
순교자의 희생을 치루어 가면서까지
한 사람이라고 더 살리고 싶으신 어린양의 마음이 읽어진다.
가깝게는, 아직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않고 있는 남편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이 감사하기까지 하다.
지금껏 ‘순교’는 나와 상관없는 단어라고 생각해왔다.
육체적으로 죽는 게 두렵고 아직 준비가 안된 내가
나의 삶 속에서 해야 하는 ‘순교’는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날마다 믿음을 시인하는 것,
말씀을 배우고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
무엇보다 내 안의 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순교’는 나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가 합쳐져야 가능한 것임을 깨닫는다.
적용: 소홀했던 믿지 않는 남편과 가족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어린양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하자.
남편에게 좀 더 신경쓰기.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손잡고 기도해주기)
큐티 성실히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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