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내 모습
본문
요한복음 12:1-11
유월절을 엿새 앞두고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저녁 식사를 하러 오셨다. 나사로를 살려 주신것에 대한 세 남매의 감사의 초대 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한 저녁 준비로 분주 하고,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는 장면 속으로 들어간다.
그 장면 한쪽에 마리아를 못마땅 하게 여기며 서 있는 유다가 보인다. 예수님의 제자로 삼년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도, 유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없는 것 같다. 세상의 기준으로 마리아를 판단하는 유다에게, 자신의 장례를 위하여 향유를 간직 하도록 그녀를 가만 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마리아의 향유에 대한 예수님의 기준을 가르쳐 주셨는데도 세상의 기준에 눈이 먼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의 속뜻을 깨닫지 못한다.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마르다는 저녁 준비로, 마리아는 비싼 향유로, 나사로는 예수님곁을 떠나지 않음으로 감사를 표현한다. 세상 사람들은 순번을 먹일지 몰라도, 예수님은 세 가지 감사 모두를 기뻐 받으셨으리라 생각한다. 감사는 커녕 마리아를 정죄하는 유다에게 까지도 구지 설명해 주시며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이라는 거울앞에, 당연한 듯 유다를 정죄하는 나의 민낮과 마주한다. 유다는 왜 끝까지 돌이키지 못했을까. 그럼 너는? 너는 다른가?
네 사람의 등장인물들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때론 열심을 다해, 때론 가만히, 때론 헌신적으로, 그러나 때론 탐욕에 사로 잡히기도 하면서, 하루는 완벽한 듯, 또 하루는 실수 투성이 인듯, 좌충우돌하며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유일한 희망도 보인다. 네 사람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유일한 희망이다. 유다처럼 끝까지 돌이키지 못하는, 반복된 죄로 굳어진 영혼의 상태까지 가지 않고, 세 남매처럼 약함을 드러내며 예수님께 매달리며 예수님의 사역에 함께 동참 함으로 죄에 묶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맘 먹는다.
내 모습 이대로가 좋은 이유는, 내 모습 이대로가 낙담이 되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예수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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