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삼일 반
본문
요한계시록 11:1-4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마흔 두 달)을 예언하도록 하나님께 권세를 받았다. 그들을 해하려는 원수들을 죽일수 있는 권세,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는 권세,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 어떤 재앙으로든 땅을 치는 권세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 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그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고, 시체는 거리에 내버려질 것이고, 땅 위의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삼일 반 후에 하나님의 생기가 그들을 일으킬 것이며, 그들의 원수들은 그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될것이다.
하나님은 천이백육십일 동안 이방인들 에게는 거룩한 성을 짓밟도록 내버려 두셨고, 두 증인 에게는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 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하나님은 나를 내버려 두시는지, 나에게 사명을 주시는지 생각해 본다. 크고 작은 고난들을 끊임없이 주시는 것을 보면 내버려 두시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나에게 주셨던, 지금 주신, 앞으로 주시길 원하시는 사명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하도록 하나님께 권세를 받은 두 증인 옆에 가만히 서본다. 이 시대에 두 증인은 하나님의 교회들, 교회가 된 사람들이 아닐까.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인 나는 베옷을 입고 있는지, 세상의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베옷은 이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상복이고, 세상의 화려한 옷은 이 세상에 종말을 가리는 파티복이 아닐까. 교회라는 이름은 베옷을 입고 구조선이 되어야 마땅한데, 파티복을 입고 호화 유람선이 되어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교회인 나는 어떤지.. 깊은 시름에 잠긴다.
베옷을 쉽게 입지 못하는 이유는 삼일 반의 고통과 조롱이 두려워 서가 아닐까. 삼일 반 후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가 아닐까. 하나님께서 더 큰 믿음을 주시길 기도 드린다. 옷을 더욱더 검소하고 단정하게 입고, 남은 연말의 모임에서도 소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식단으로 손님들을 대접해야 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베옷을 입고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