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주로 말미암아
본문
시편 70:1-5
다른 사람의 영혼을 찾는자는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되고, 사람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는 수모를 당하고 물러간다. 다른 사람이 당하는 수치를 기뻐하여 조롱의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their shame) 조용히 사라진다.
그러나,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은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다윗은 스스로를 가난하고 궁핍 하다고 여기고, 주는 그의 도움이시며 그를 건지시는 분이라 부른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한 만큼 더욱더 여호와의 도움을 간절히 청하는 다윗을 본다.
나는 나를 어떻게 여기는가. 나는 주님을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찾고 있는가, 주를 찾고 있는가. 나는 나로 말미암아 살고 있는가, 주로 말미암아 살고 있는가. 주님의 존재가 커질수록 나의 존재는 작아지고, 나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주님의 존재감이 작아진다. 주 앞에서 자신을 낮춘 다윗의 겸손이 아름답다.
‘주로 말미암아’ 살지 않으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살게 되는 것이 정해진 인생 이었다. 부끄러워 조용히 사라지는 인생, 왜 뒷걸음칠 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사라져야 하는 허무한 인생, 수치가 수치를 낳는 악순환의 인생을 살뻔 했다. 다윗은 ‘주로 말미암아’ 살기만을 간절히 원했고, 그 간절함이 다윗을 겸손한 사람으로 빚어갔다.
아빠는 까닭없이 화가 나셔서 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나는 번역기를 돌려가며 아빠의 화를 통역해 보려고 애쓴다. 생각해 보니, 작년에도 내가 떠날때 그러셨다. 내가 떠나는 것과 자신의 노쇠를 직면하기 어려우셔서, 두려움이 화로 변하신 것이라 해석해 본다. ‘나로 말미암은’ 인생은 끝없이 답이 없다. 다윗처럼, ‘주로 말미암은’ 인생을 살기로 약속한 나는 그저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 주님 속히 저를 구해 주세요 속히 저를 도와 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통해서도 주의 구원을 경험하게 해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여전히 ‘주로 말미암아’ 기쁜 하루를 보내고 싶다. 집에 돌아오니 이곳에도 가을이 와있어서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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