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Ruthless Trust, 다시 한번 보여 줄 수 있느냐?...
본문
4-7-10 (수) <예레미야 2:1~13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하나님께서 이제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직접 선포케 할 메세지를 슬슬 풀어 놓기 시작 하신다.
이스라엘이 아직 예리예리한 소년때
하나님을 향해 가졌던 우의 (devotion)와
결혼했을때 신부가 신랑을 향해 품었던 사랑을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기억 하신다고 한다.
아직 여러면에 있어 여리고 약하디 약한 소년의 모습이지만
하나님께 온전히 devote 되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못잊어 하고 하신다.
씨 뿌리지 못하는 땅과 광야를 거쳐야 하는 험한 신혼 시절,
비록 때로는 철없이 투정을 부리기는 했어도
“난 당신만 있으면 되요~” 라며 신랑의 손을 꼬옥~ 잡고 따르던 신부의 사랑,
풋풋하면서도 신랑만 바라보는 신부의 신뢰함과 결의를
하나님께서는 분명 잊지 않고 기억하시며 너무도 그리워 하고 계심이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씨 뿌리지 못하는 메마르고 황량한 땅 한 가운데 있었을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전진했던 그 시절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다투셔야 (bring charges) 하는 상대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9절>
신부의 죄과를 하나 하나 짚어 가며
그에 마땅한 벌을 주어야만 하는 신랑의 마음이란
신랑 스스로를 벌주는것과 다름 없는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설득해보고, 달래보고, 꾸중도 해 보고, 애원을 해봐도
신부가 신랑을 저버리고 신랑아닌 다른것에 눈을 돌린다면
함께 살아도 더 이상은 부부가 아닌것이다.
죄와 갈라서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신랑이신 하나님과 divorce하는 무시 무시한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으름짱을 놓으셔야하는 하나님의 속 마음은,
“제발 우리의 옛 관계를 생각하며 돌아와다오”그 자체이다.
마땅히 신뢰하며 따라야 할 신랑되신 하나님,
그들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들 스스로 어떻게 해 보겠다며
순전히 인위적인 노력으로 <웅덩이를 판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판결 내리신 죄.목. 이다.
아무리 파고 파도 물 한방울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
물을 저축하기는 커녕,
그들이 스스로 판 웅덩이는 결국,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영영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 거릴수밖에 없는 스스로 판 무덤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첫번째 스텝은
그들이 그동안 망각하고 있던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 은혜의 감격을 다시 떠 올리며 회복하는 것이다.
그들이 현재 하나님이 아닌 다른것들을 붙잡고 있는것들은 사실
생.수.가. 아.니.라.
그들을 서서히 죽이는 독극물임을 알아야하는거다.
갈증을 해소해 주기는 커녕,
마셔도 마셔도 갈증을 더해가기만 하다가
결국은 죽음으로 이끄는 사해 (Dead Sea) 인것을 깨달아야 하는거다.
어제 예레미야에게
“너는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셨다”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을때,
올해 내게 주신 말씀을 떠 올려 보았다.
나를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기고
나의 성벽이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 하셨으나
많은 번민과 갈등으로 인해
차라리 내 자신을 하나님의 손바닥에서 지워 버리고 (구원의 의미가 아닌)
성벽과 함께 무너져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네 모습은 마치,
새까맣게 다~ 잊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구나…
걸음마 배우는 어린 아이처럼
나를 신뢰함 가운데 한 걸음 한걸음 걷던 시절을 다 잊었구나.
걸음마를 걷던 그 시절에는 오히려 넘어질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늘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빠만 쳐다보고 헤헤거리며 따라가는 기쁨이 있었기에
넘어져 무릎이 깨지는 일이 생겨도 그리 싫지가 않았다.
흐르는 피 닦아 주시고
금방 반창고를 붙여 주시는 아빠의 따뜻한 손길을 한번 더 느낄수 있었으니까…
깨지고 찢어진 상처의 아픔보다는 아빠의 스킨쉽이 더 컸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이런 저런 눈치보며 절대로 안 넘어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넘어져서 피가 날까봐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무서운 도전을 하신다.
큐티 초년시절때 하나님께 드리던 온전한 devotion,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때 시절에 드렸던 갓 결혼한 신부의 순결함을 다시 한번 요구하신다.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신랑을 믿어주는 Ruthless Trust를 다시 보여 달라 하신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그 기본적인 요구를 들어 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댓글목록

윤지현님의 댓글
윤지현 작성일
그럼요~
이런 나눔을 올리신 것으로보아
하나님의 그 요구를 들어 드릴 마음의 준비가 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
저의 그 웅덩이
갔다 버릴라구요.
매일 매일...

이정현님의 댓글
이정현 작성일
아빠의 따뜻한 손길...
아빠의 스킨쉽....
저는 그런 기억이 없네요~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시기에 집사님의 손길이
저에게는 참 따스했습니다.
사랑이 듬북 담긴 격려의 편지 감사합니다.
I love you!

조세라님의 댓글
조세라 작성일
세상에 이런 남편이 있나...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면 이럴 수 있을까?
그 하나님의 사랑에 놀라
떠억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