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그때 그 동산...
본문
3-11-10 (목) <요한복음 17:20~26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따금씩 모이던 그 동산(an olive grove)엘 다시 가셨다.
올리브 나무가 있는 추억의 그 동산에…
예전과 다른것이 있다면
이제는 가룟유다가 빠져버린 열 한 제자와 함께라는 것…
지난번 유월절 만찬때
캄캄한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린 유다가
그때 그 이후로 예수님을 팔 작업을 하느라 영~ 따로 행동을 하더니만
이제 완전 다른편과 합세하여 예수님 앞에 나타났다.
이미 일어날 일을 다 알고 계시면서
그곳으로 향하셨을 예수님의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담소를 나누던 아름다운 추억의 그 동산이
이제는 제자에게 팔리는 슬픔의 곳으로 바뀌다니…
유다…
그는 대체 예수님의 성품을 알기나 하는걸까?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군대와
하속들을 동원하는것까지는 좋았는데, 병기까지 챙겨 오다니…
무슨 폭력배들을 연상케 한다.
자기가 한 소행을 생각하니 예수님이 두려웠나 보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들을 생각해 보니
자기 하나쯤 벌하시기에 충분하신 예수님이 두려웠나 보다.
예수님의 능력은 알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의 성품에 대하여는 눕꼽만치도 이해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유다…
그 예수님께 더 이상 기대할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은 삼십냥이라도 챙기고픈 마음에 예수님이라도 팔겠다는 <유다의 이기심>,
죽을때가 임박하여 제자에게 배신 당하는 이 숨 막히는 현장에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라는 말씀을 응하시기 위하여
“이제 너희가 원하는 나를 찾았으니 이제 이 사람들을 다 가게 하라”는 예수님…
<유다의 이기심> 과 예수님의 <철저한 희생과 순종>이
마치 <흑과 백>, <선과 악>처럼 선명하게 대칭이 되는 이 순간을 몇 사람이나 알아챘을까?
예수님께서는 왜 그들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두번이나 물으셨을까?
한번은 “내로라”라는 말씀에 무리들이 엎드러진다.
또 한번의 “내로라” 라는 말씀과 함께 “이 사람들의 가는것을 용납하라” 하신다.
이 순간에도 모든 power가 예수님 아래에 있을텐데
예수님의 완전한 힘조절 하심을 베드로는 모른걸까?
얼마든지 임의대로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것,
얼마든지 임의대로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말하지 않기로 선택하는것은
아예 선택권이 없는것보다 너무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내로라” 라는
예수님의 두 번의 대답에서 내게 주시는 교훈을 귀기울여 경청한다.
속 시원히 내가 마음 내키는대로 하는 그 순간,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기는 커녕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릴 수 있음을 알려 주신다.
도살장에 끌려 가는 소처럼,
털깍는자 앞에서의 양처럼 조용히,
무지하리만큼 묵묵히 있기로 선택하시는 예수님의 관심이
오로지 당신에게 맡겨 주신 자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잃지 않기 위함이 아닌가?
얼마간 끙끙 거리던 일이 많이 정리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저변에 약간의 속상함이 있기에
한번쯤 시원하게 훈계 차원에서 한마디 정도는 해주고 싶었던 일이 있다.
오늘 나 스스로에게,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함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보며
이제는 아예 기억조차 않고 덮어 버리기로 한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댓글목록

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아멘.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누구를 위함인가...?
항상 점검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