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갈팡질팡 마르다, 마리아와 같은 나
등록일 2010-02-19
작성자 김명희
본문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면서
어머님의 돌아가심이 생각났다.
사랑하는 오라비의 생사를 앞둔 깊은 병 앞에
예수님께 빨리 사람을 보내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마음은
오로지 오라버니가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게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오라버니의 병이 죽을 병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는 말씀만 전해주신다.
그리고 이틀이나 더 유하시고 , 오시는 길이 또 이틀이나 걸려
오라버니가 죽은지 나흘이 되어서야 도착하셨다.
성격급한 마르다, 벌써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동네 어귀까지 뛰어나가 예수님을 맞이하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이해 못할 부활에 대한 말씀만 하신다.
이때, 마르다,
"예수님, 알긴 아는데요......"
"예수님,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계속 갈팡질팡한다.
이 모습이 내게는 애틋한 모습으로 보인다.
그건 마치
어머니가 바다 한 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하시고
시신을 찾지 못해 안타깝게 울고 있는 나와 우리
남은 가족의 마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 , 계속해서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고
이젠 마리아를 부르신다.
마리아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도 우신다.
예수님이 우셨다.
'내가 살려준다니까, 내가 부활하게 해 줄거야'
라고 통분해 하시고, 민망히 여기시면서도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같이 함께 우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날은 2004년 5월 8일 토요일이었다.
바로 어버이날이라 나는 시댁에 가 있었고,
언니와 오빠는 다음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내가 사는 장봉도에 가
부모님을 뵈려했다.
어머니는 다음날 자식들에게 주려고 상합이라는 조개를 캐러
바다에 나가셨다가 지병으로 앓고 계시던 고혈압으로 인해
쓰러지셔서 바다에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각자 흩어져 조개를 캤기에 어머니는 어느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해 시신을 찾지 못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모두 장봉도에 들어갔다.
그리고 슬피 울었다.
그리고 주일아침이 밝았는데도
그리 신앙이 좋다던 우리 가족은 교회를 갈 힘조차 없어
모두 집에 머물러 슬픔에 잠겨있었다.
아직까지 내겐 그것이 의문처럼 내 잠재의식 속에 죄의식처럼 있었다.
어머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머님의
신앙은 위대하였다.
그랬기에, 분명 어머님은 천국에 가셨는데
그런 확신이 있는데, 그럼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야 하지 않나?
그런데 오늘 오라버니의 죽음 앞에
슬피울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울어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작게나마 내게 죄의식처럼 있었던 생각이 자유함을 얻었다..
예수님도 우셨구나. 그들과 같이 함께 우셨구나.
우리 가족이, 아니 막내딸인 내가,
살아생전 잘 해드리지도 못한 내가 어머니를 여의고 울때
예수님도 함께 우셨구나 생각을 하니 위로가 된다.
우리 가족은 그 뒤로 매일 바다에 나가 어머니의 시신을 찾았다.
우리 뿐만 아니라 해경이 동원되고 52명의 군인이 동원돼 어머니가
돌아가신 자리를 샅샅이 찾고 또 찾았다.
그러는 와중에 이모님이 전해주셨다.
어느 기도하시는 권사님께서 기도하시는 중에
반드시 어머님의 시신을 찾게 될거라고.
오히려 빨리 찾게 되면 사람들이 찾은 거라 생각이 드니
하나님이 찾게 해 주실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일주일 뒤,
모든 해경이 철수 하고, 그 사건이 잠잠해 질 무렵
강화도의 한 어부에 의해 어머님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일주일동안이나 바다에 떠 다니셨는데
어쩜 그리도 상한 곳이 한군데도 없을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한달 전
어머님이 돌아가신 자리에서 고향의 한 남자분이 먼저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여전히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님의 상은 그동안 애태게 기다리던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이라도 하듯
기쁨의 잔치가 되어 버렸다.
남은 가족이 각자가 소속되어 있는 단체의 수 만큼 예배는 끊이질 않고 계속 되었고
많은 인파들이 몰려와 분향소를 한곳 더 빌리게 되었다.
그날 아침도 여전히
새벽예배를 다녀오시고,
고추밭에 나가 일을 하시고,
조개를 캐러 나가신 어머니.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는 얼른 어머니이 평생 가지고 다니시던
성경책과 찬송가를 챙겼다.
미국에 오면서
아버지께서 손수 짜주신 바구니를 선물로 받아
그곳에 어머니의 성경책과 찬송가를 넣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다시한번 어머니의 손때 묻은 성경책과 찬송가를 보면서 가슴이 찡했다.
평생, 오로지 하나님 한분만 믿고 사신 어머니.
그 큰 유산이 지금 우리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묻어있다.
어머니의 죽음 뿐 아니라
내 삶에는 아직도 갈팡질팡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메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붙잡고 가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다.
오늘도 갈팡질팡하더라도 하나님! 저를 꼭 잡아주세요.
어머님의 돌아가심이 생각났다.
사랑하는 오라비의 생사를 앞둔 깊은 병 앞에
예수님께 빨리 사람을 보내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마음은
오로지 오라버니가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게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오라버니의 병이 죽을 병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는 말씀만 전해주신다.
그리고 이틀이나 더 유하시고 , 오시는 길이 또 이틀이나 걸려
오라버니가 죽은지 나흘이 되어서야 도착하셨다.
성격급한 마르다, 벌써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동네 어귀까지 뛰어나가 예수님을 맞이하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이해 못할 부활에 대한 말씀만 하신다.
이때, 마르다,
"예수님, 알긴 아는데요......"
"예수님,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계속 갈팡질팡한다.
이 모습이 내게는 애틋한 모습으로 보인다.
그건 마치
어머니가 바다 한 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하시고
시신을 찾지 못해 안타깝게 울고 있는 나와 우리
남은 가족의 마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 , 계속해서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고
이젠 마리아를 부르신다.
마리아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도 우신다.
예수님이 우셨다.
'내가 살려준다니까, 내가 부활하게 해 줄거야'
라고 통분해 하시고, 민망히 여기시면서도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같이 함께 우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날은 2004년 5월 8일 토요일이었다.
바로 어버이날이라 나는 시댁에 가 있었고,
언니와 오빠는 다음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내가 사는 장봉도에 가
부모님을 뵈려했다.
어머니는 다음날 자식들에게 주려고 상합이라는 조개를 캐러
바다에 나가셨다가 지병으로 앓고 계시던 고혈압으로 인해
쓰러지셔서 바다에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각자 흩어져 조개를 캤기에 어머니는 어느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해 시신을 찾지 못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모두 장봉도에 들어갔다.
그리고 슬피 울었다.
그리고 주일아침이 밝았는데도
그리 신앙이 좋다던 우리 가족은 교회를 갈 힘조차 없어
모두 집에 머물러 슬픔에 잠겨있었다.
아직까지 내겐 그것이 의문처럼 내 잠재의식 속에 죄의식처럼 있었다.
어머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머님의
신앙은 위대하였다.
그랬기에, 분명 어머님은 천국에 가셨는데
그런 확신이 있는데, 그럼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야 하지 않나?
그런데 오늘 오라버니의 죽음 앞에
슬피울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울어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작게나마 내게 죄의식처럼 있었던 생각이 자유함을 얻었다..
예수님도 우셨구나. 그들과 같이 함께 우셨구나.
우리 가족이, 아니 막내딸인 내가,
살아생전 잘 해드리지도 못한 내가 어머니를 여의고 울때
예수님도 함께 우셨구나 생각을 하니 위로가 된다.
우리 가족은 그 뒤로 매일 바다에 나가 어머니의 시신을 찾았다.
우리 뿐만 아니라 해경이 동원되고 52명의 군인이 동원돼 어머니가
돌아가신 자리를 샅샅이 찾고 또 찾았다.
그러는 와중에 이모님이 전해주셨다.
어느 기도하시는 권사님께서 기도하시는 중에
반드시 어머님의 시신을 찾게 될거라고.
오히려 빨리 찾게 되면 사람들이 찾은 거라 생각이 드니
하나님이 찾게 해 주실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일주일 뒤,
모든 해경이 철수 하고, 그 사건이 잠잠해 질 무렵
강화도의 한 어부에 의해 어머님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일주일동안이나 바다에 떠 다니셨는데
어쩜 그리도 상한 곳이 한군데도 없을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한달 전
어머님이 돌아가신 자리에서 고향의 한 남자분이 먼저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여전히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님의 상은 그동안 애태게 기다리던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이라도 하듯
기쁨의 잔치가 되어 버렸다.
남은 가족이 각자가 소속되어 있는 단체의 수 만큼 예배는 끊이질 않고 계속 되었고
많은 인파들이 몰려와 분향소를 한곳 더 빌리게 되었다.
그날 아침도 여전히
새벽예배를 다녀오시고,
고추밭에 나가 일을 하시고,
조개를 캐러 나가신 어머니.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는 얼른 어머니이 평생 가지고 다니시던
성경책과 찬송가를 챙겼다.
미국에 오면서
아버지께서 손수 짜주신 바구니를 선물로 받아
그곳에 어머니의 성경책과 찬송가를 넣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다시한번 어머니의 손때 묻은 성경책과 찬송가를 보면서 가슴이 찡했다.
평생, 오로지 하나님 한분만 믿고 사신 어머니.
그 큰 유산이 지금 우리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묻어있다.
어머니의 죽음 뿐 아니라
내 삶에는 아직도 갈팡질팡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메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붙잡고 가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다.
오늘도 갈팡질팡하더라도 하나님! 저를 꼭 잡아주세요.
댓글목록

심수희님의 댓글
심수희 작성일
아, 친정 어머니 얘기....
그 어머님을 생각하시면서 또 우셨을 명희 자매님...
저도 친정 아버지께서 돌아 가셨을때 그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차피 모두가 고아와 같은 존재구나...
그런데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 당시 너무 위로가 되었더랬어요.
육신의 부모는 이 땅에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하지만
우리와 영원히 동행해 주시는 주님께서 명희 자매님을 꼭 잡아 주시니 힘 나시죠?
http://www.s272150719.onlinehome.us/bbs/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animated/animate_emoticon%20(48).gif"> (넘 험상 궂었나? ㅋㅋㅋ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