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우리 좀 만날까?
본문
역대하 25:14~28
어쩌면
유다를 이겨먹은 나라의 신도 아니고
유다에게 진 나라의 신을 가지고 옵니까?(14절)
하나님의 가슴을 헐어서 그랬을까요.
예루살렘 성벽도 헐리고...성전기명을 도둑맞고...백성은 포로로 돌려집니다.(23절)
에돔 신한테 지켜달라 그래라~ 하고
잠시 벌세우시고 수업도 접고 싸늘하게 교무실로 가버리신 담임선생님의 화난 뒷모습을 보는 듯해서...
보는 내가 어쩔바를 모르겠습니다.
온 마음으로 섬겼어야하는데
에돔신에게 그 마음을 나누어 주자,
하나님도
유다에게 주신 사랑의 징표들을 나누어 흩어버리십니다.
아마샤가
한 선지자의 경고를 들었다면(15절)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주셨을텐데요.
듣기는 커녕
입 다물지 않으면 때리겠다고...협박이나 해대고...아마샤의 공격적인 성향은 그의 언어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오라 서로 대면하자(17절)
아마샤가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대면하자고 했다지요.
아마샤는
대면하는 것을 참 좋아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을 잘못 짚었습니다.
대면하자 란,
겨루어보자 라는 의미라고 합니다.(쉬운성경, 새표준)
아마샤가 대면했어야 할 대상은
바로 자기자신이어야 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근데,
여호와 와 겨루고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와 겨루고
굳이 대적을 만들어가며까지 겨루기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제대로 지키고 있는건지(3,4절)
얼만큼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고 있는지(5,6절)
순종한다고 하는 것이 계산없는, 하나님을 위해서인지(9,10절)...
정말 그런가? 정말 그런가?
자기자신과 대면하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을텐데요.
했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내가 갈라디아서 할 때부터
성령의 조명하심 때문에 자기대면이 씨리어스하게 시작되었던 것 처럼이요...
나와 대면하는 시간은, 고통과 수치와 아픔 그 자체였습니다.
바울 속을 썩이는 갈라디아의 교인들이 <나>였고, 유다의 열왕들이 <나> 였습니다.
열왕들의 성향이 그득한 <나>를 피하지않고 대결신청을 하고보니, 나는 감당할 수 없이 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나>와 겨루면서, 나.를. 알.았.습.니.다.
어떤 나를 이겨야하는지 알고 나니까
어떤 나와 앞으로 겨루어나가야할 지 보고나니까,
하나님의 마음도 더 잘 보이고 더 잘 알아졌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해졌습니다. 내 인생 하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졌습니다.
겨루는 전쟁 속에서, 내게 져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서...
이긴 체 하기는 뭣하지만
나는 나를 알았으니까
승리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라, 서로 대면하자
아마샤가 싸우고싶은 대상에게 했던 이 말을
나는 앞으로 말씀 앞에 앉을때마다 내자신에게 던지겠습니다.
우리 좀 만날까?
댓글목록

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
아!
나 와의 만남...
큐티는 바로 그 만남의 시간이었네요!
꾸준한 만남이 있었기에
자신을 알아갈수 있게 된것이라는것
확인하고 갑니다.

심수희님의 댓글
심수희 작성일
싸우고 싶은 대상에게 했던 말,
이제 대상을 바꿔 하나님께로... ^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