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성령으로 마치는 사람...
본문
역대상 20:31-37
본문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자꾸만 생각나는 예화가 있었습니다.
잡초는 작을 때 뽑아버려야 한다는 지난 주에 들은 설교예화 였습니다.
‘이 정도면 되지…’ 하며 잘라내기만 하는 것을 딱 두번만 하면,
뿌리를 더 깊고 강하게 내려서
나중엔 양 옆의 콩줄기와 뿌리가 얽혀 뽑을 수도 없어진다는
설교자의 어린시절의 경험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집안과의 인연을 잘라내기만 했나봅니다.
결국은 아합의 아들과 또 다시 동맹을 맺고 맙니다.
개혁을 했으나 부스러기 처럼 남아있는 산당까지는
제거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의 영적 태도가 드러납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스스로는 해본적이 없지만,
어린 소년에게는 넓은 밭에서 작은 호미만을 가지고
잡초를 뽑는 일은 너무 과중한 일이라 이정도쯤…하고
넘어가고픈 일이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7장 부터 돌아가 생각해 보면 여호사밧도 굉장한 수고를 한 사람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집안의 잡초를 확실하게 뽑아버렸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을 이혼시키는 데 까지 갔더라면…
무서운 안 사돈 이세벨이 어떻게 나오던지간에
두려워 하지말고 뿌리째 뽑아버렸더라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속 시원해 하셨을까요…
그리고 열받은 이스라엘로 부터
유다를 손수 지켜주셨을 것은 더 말할나위도 없을것입니다.
아들들을 몽땅 잃는 비극도 당연히 없었을것입니다.
왕이 이정도까지 나왔더라면
나라 구석 구석의 백성들도
자신들의 손으로 산당을 부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쉽사리 뽑아내지 못하는 잡초…
깨끗이 끊쳐내지 못하는 불의한 동맹…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여호사밧이 결혼을 통해 동맹을 맺었던 아합의 집안은
시돈과의 연혼으로 동맹을 맺었고 부강하게 되었었습니다.
이 두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당시 많은 주변국가들의 대세가 이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연혼으로 인한 평화와 나라의 부강…
여호사밧은 결국 세상의 가치관에 쓸리고 만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시고 강하게 해 주신 나라를
우상과의 연혼으로 지키려는 모습을 보며 갈라디아서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 3:3)
아이들의 산당을 부수어 주고 싶었었습니다.
동료들의 산당과 우상도 불태워서
더욱 쓰임받는 사람들이 되도록 돕고싶었었습니다.
우리 외가 식구들의 산당과 아세라상들도
모조리 찍고 빻고 가루로 만들어 주고 싶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이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 산당도 제대로 부수지 못함을 발견했습니다.
여호사밧이 바이 바이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두려움이
저에겐 더 클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두려움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크신 분이십니다.
방안에 척, 붙여놓은 하나니의 외침을 상기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역대하 16:9)
있는 것 다 잃을것 같아도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
망령되이 행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구합니다.
성령으로 마치는 사람되기를 구합니다.
댓글목록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선희자매 묵상처럼 그렇게...그렇게...싸워오다가...드디어 이혼했습니다.^^
...
아, 선희자매는 결혼부터 해야지요~^^

심수희님의 댓글
심수희 작성일
하나님께만 매달리다 보면 잃게 되는것...
그거 잃을것 생각하면 때로는 움츠러져도,
하나님께 매달리면 무엇으로 마치는가 결과만 생각해 보면 쉬운거군요.
오늘도 저의 묵상을 더욱 풍성함으로 마무리하게 해 주시는
선희 자매님께 감사, 일년 내내 감사... ^ ^
근데... 참~ quality control이 어렵단 말예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