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일천번을 죽은다한들...
본문
10-21-09 (수) <역대하 1:1~6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그 솔로몬이 무지 부럽다.
그 하나님 (his God)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가 심히 창대케 되었단다.
그냥 <창대케>만 되어도 그 scale이 결코 작지 않을텐데 <심히> 라….
심히 창대케 된 솔로몬이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린 일천번제라…
심히 창대케 된 솔로몬이니까 그럴수 있었던거겠지…
요즘 나의 시츄에이션과 너무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심히 창대케>라는 단어…
잡히는것 없고 보이는것 또한 없어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하고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물속으로 다이빙을 해야하는 심정이다.
수영을 못할지라도 물속으로 뛰어드는 용기만 내게 있다면,
하나님께서 살려 주실것이라는 믿음만 있다면,
믿음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하신다.
맞다.
무엇이 보이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가 문제이다라는 켄 가이어의 말처럼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을 말씀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거겠지.
창대, exceedingly great,
그 많은 일천 번제물들, thousand burnt offerings ...
나의 상황과 아주 동떨어진 단어들이지만
내 상황이나 나의 감정이 동하는만큼 하는 맞춤복 묵상이 아니라,
다시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며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무슨 말씀을 하시기를 원하실까에 촛점을 맞추기로 한다.
나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린 창대케 된 솔로몬의 입장보다는
솔로몬에 의해 죽어지는 번제의 희생물이 되어 본다.
일천마리의 희생제물중의 하나가 아니라
나 홀로 일천번 죽어지는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원한다.
희생 제물은 그냥 순서에 따라 (드리는 과정에서 다소 수고가 따르기는 하지만)
하나를 드리고 또 드리고, 그 다음 번제물, 그리고 그 다음 번제물…
한마리서부터 천마리째까지 그냥 진행하면 된다.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나 자신이 그렇게도 십자가에 못박히기를 원했는데
나는 또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다.
그래서 <나>라는 자아가 죽어지는 작업을 하고 또 하고….
말씀으로 거듭 내 자아를 죽이시는데도 내 자아는 꿋꿋하게 또 부활을 한다.
나 자신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로 드려짐에 있어서
지금쯤 구백구십구번째 죽은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sinful nature)와 함께
그 정(passion)과 욕심(desires)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4>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내 안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내 자아가 너무 싫다.
인내해야 할 일들,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하는 일들 앞에서
나 자신이야 말로 가장 크나큰 적이요 우뚝 서 있는 견고한 성이다.
마음의 갈등으로 인해 새벽부터
이런 저런 고민으로 엎치락 뒤치락 하기를 몇시간…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구체적인 지시를 해 주실리 만무….
창대케 해 주시는 하나님…. 까지는 좋지만,
온통 번거로운 차비를 챙겨
일천번제 드리러 산까지 가야하는 부담도 만만치 않지만,
일.천.번.씩이나 나 자신을 태워 드리는 일은 고통을 넘어선 죽음이다.
내 자존심이나 자아가 조금이라도 상하면 죽는다고 엄살 부린다.
<나>라는 존재는 털끝만큼도 없이
온전히 그리스도 예수만이 내 안에 충만히 계셔서
나를 통해 흘러 나오소서… 오열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채찍 맞으신 감동이 나의 심장에 뜨겁게 포개졌다.
육신의 <나>는 내 육신의 desire대로
"솔로몬을 심히 창대케 하심 같이 내게도 그리 해 주소서…." 라며
내 입맛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오늘 내게,
“너 홀로 번제물이 되어 온전히 드려질때까지
<천번>이라도 죽을 수 있느냐?” 고 물으신다.
네…
저 스스로는 죽어질 수 없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할 수 있습니다.
브살렐의 지은 놋단위에 드려진 번제물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제 자아를 못박으시고 태우소서
그런데 하나님...
저 오늘부로 몇번째 죽은거죠?
댓글목록

이 찬용님의 댓글
이 찬용 작성일
나홀로 일천 번 죽어지는 희생물이라......그것 너무 힘들 것 같으네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만큼 크다는 것이겠죠.
이제 조금만 인내하시면 심히 창대케 하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만 남았네요.

최승경님의 댓글
최승경 작성일어째...난 몇번째 죽은것인가를 생각케 하는 것이 아니라.....??아예 태어나지도 않은것같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ㅎㅎㅎㅎㅎㅎㅎ

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
<나홀로 죽어지는 일천번제 희생물>!!!!!!!!
전 오늘 열번만 죽기로 목표 세워두면
성공하는 하루 보낼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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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현님의 댓글
윤지현 작성일
죽고 싶어도 죽어 지지 않는 자아때문에 고민하는 자매님의 심정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매일 큐티할 때마다 죽으리라 다짐하는데 어찌하여...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