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고운 가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본문
17절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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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시내산이 있는 광야에 서있는 저를 상상해보았습니다.
인디안 섬머때 같은, 아니 더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곳일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굴같은 장소에라도 몸을 피하고 싶어지겠구나 싶습니다.
그늘에 앉아 햇빛을 피할 때 눈에 보이는 것은 황량한 대지와
하늘 뿐이고, 귀에 들리는 것은 바람소리 뿐일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스테반 집사님이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줄을 이어 자신의 손에서 순교한 성도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엄마 아빠가 끌려갈 때에 울부짖었을 어린 아이들,
고통가운데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감사했을 사람들
혹시라도 그 와중에 바울에게 증거했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떠오를 때마다
그들을 향해 품었던 마음과, 실제적으로 행했던 핍박에 대한 가책 때문에
온몸을 떨며 속죄하는 나날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의 머리속엔 아라비아의 한 동굴속에서 울부짖으며
회개의 통곡을 하는 바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한명 한명의 순교자에게 내가 죽게한 당신의 몫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다짐을 했을것도 같습니다.
‘전에 박해하던 자’ 로서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 을 전하려는
바울의 모습은 얼마나 얼마나 겸손했을까요…
그저 자존심을 내려놓은 정도가 아니었을것입니다.
그렇게 아라비아에서 곱게 갈려진 바울의 모습이 어떠했길래
그 내용을 전해들은 성도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까요…
예수님을 만나고 서둘러 제자훈련교재부터 배웠던 저의 초신자 시절을 생각해봅니다.
늘 무언가 빠진듯 해서 몇년이 지나도 허전한 한 구석이
아라비아에서의 회개시간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특별히 혼자 튀는 나의 열심때문에 캠프준비를 하다가
섬김의 자리에서 빠져버린 한 학생이 생각납니다.
그 학생과의 관계는 쉽게 회복이 되었고,
졸업후에도 찾아와 봉사하기도 했지만,
저는 제가 뱉었던 말에 대한 찔리는 감정은 무시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런 말… 할 만 했다고 여기며 정당화 시키기만 한것을, 오늘은 해결해야 겠습니다.
나의 아라비아를 찾아 숨어들어야 겠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캠프는 그 학생의 친동생과 함께 준비합니다.
새벽까지 일을 할 때도 있지만,
아직까진? 순항을 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꼭 섬김의 뿌듯함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고운 가루...?
난 자갈이라도 됐음 좋겠어요. 이 바윗덩어리 같은...내 자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