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자의 역사를 따라...
본문
갈라디아서 2:1~10
바울은, 자신을
할례받지 않은 이방을 위해 세워진 사도로 소개합니다.
비록 열두사도 안에 들진 않지만
자신도 똑같이 그 유명하다는 이들(6절, 요한·베드로·야고보)과 동등하게
하나님의 사.도.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줍니다.
그러느라, 온갖 일들을 다 얘기해 주네요.
이방인 디도를 할례시키지 않고 예루살렘총회에 동행했던 이야기는 그렇다치고...
베드로와 잠깐 만났던 얘기를 들을땐, 가슴이 좀 답답해졌답니다.
얼마나 자신의 사도권을 증명하고 싶었으면...날 수까지 이렇게 <15일>이라고 정확하게 언급할까요.(1:18)
베드로와 만나긴 했지만,
<베드로는 할례자의 사도로서, 바울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각자 감당한 사역을 보고하는 차원의 만남일 뿐이었다는 거지요.
같은 사도끼리, 가르치고 배우는 게 어딨냐구요.
일대일 제자 양육 같은 건, 절대 받은 적이 없다는 의미쟎아요.
그렇죠...15일 즉, 2주만에 마칠 수 있는 속성훈련과정 성경공부 같은 건 우리교회에도 없으니까요.
이토록, 구차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사도권을 인정받으려 하는 바울을 생각하다가...
그저께, <영적전쟁과 내적치유> 클래스에서 내게 던져진 질문이 떠올랐어요.
<인정 받고자하는 욕구 부분>을 강의 하시던 목사님이
문득
내 이름을 부르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지요.
(지난번에, 졸다가 이름이 불린 적이 있었기에 쪼끔 덜 놀라긴 했지만은요.)
“박소범 집사님은? 말씀리더로써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없어요~?”
헉!
있다고, 대답했어요.
있으면 안되는 건데, 난...있으니까...사실대로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쉽게 대답하고...챙피하긴 했지만...나의 불순함을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건,
며칠전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큐티할 때 이미 하나님이
다윗의 노년을 못 맞이 할 나의 가능성을 보시고, 돌이켜 준비할 기회를 주셨댔쟎아요.
그 날 이후, 하나님 앞에서 순수사도로서의 사명을 회복하겠다고 고심 중에 있었기에
대중 앞에서 고백할 기회도 열어주셨다는 생각이 (민첩하게) 들었답니다.
대신...그 날, 집에 돌아오면서 혼자 시끄럽게 떠들어댔답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은 건요!
말씀만 많이 알고 잘 전달하는 리더가 아니라, 말씀대로, 말.씀.대.로. 사는 리더로서예요!’
이 내 바램을, 이 내 비젼을, 목사님이 알고 계실까···?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요.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는 바울은
자신의 <진짜 사도>로서의 정당성을 이렇게도 분명하게
다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바울은 속이 시원~ 했겠어요.
그런데, 묵상 하면서...좀 시끄러운 감이 없쟎은...말많은 바울의 의도를 알았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순복음되게 증거하려고, 자신의 사도권을 이해시키는 거였어요.
바울이, 참사도로서 인정받기 원하는 건
그.건. 순.전.히.
참사도인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참.된. 복.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함이었지요.
나처럼,
나 좀 알아달라고...
나 이래뵈도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남모르는 피눈물 흘리면서 산다고...
나는 좀 다르다고...
나처럼,
<나>를 증거하려드는 그런 바울이 아니었다는 거지요.
아...내가 좇는 이것이...
이것이 바로, 바울이 그토록 좇지 말라던 거짓사도들의
그 <육체의 할례요, 죽이는 율법이요, 보이기 위한 형식> 인가봐요.
내 자체가 순복음이 되면, 증거 안 할래도 예수가 안드러날 리 없는데...말이예요.
예루살렘 교회의 막강한 사도들이 바울을 사도로 인정한 건, 그의 복음이 진짜라는 뜻 아니겠어요?
이렇게, 내 주제가 파악이 되니까는요, 내 속의 내 소리와 내 변명을 죽일 힘이 생겼어요.
목사님께 바울처럼 시끄럽게 설명 안 드려도 되겠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리더로 인정받고 싶단 우아한 말로, 나를 포장하지 않길 잘 했어요.
사실 난, 포장이 될 만큼 그리 규격이 괜챦은 사람도 아니구요.
그건, <말>로 설명되는 게 아니라 <열매>로 증거되는...하나님 나라 문제니까요.
율법에 묶였던 <핍박자 사울>도, 결국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1:24)
라며, 열매를 들어 자신을 확증받는 <사도 바울> 이 된 거 봐요.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10절)
바울은, 심각하게 사도권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그-- 와중에
예루살렘교회 사도들에게 부탁받은 구제문제를
자신이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빠트리지 않네요.
물건을 잘 통용했던 예루살렘교회의 풍습을 잘 따르는 것이(사도행전), 그것도
사도가 되는 자격에 든다고...내게 가르쳐주는 것 같애요.
며칠전부터, 우리 구역자매와
나누기 좀 힘든 물건(?)을 통용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역대상을 마치며...솔로몬을 도와주는 아비, 다윗의 마음이 되어보려구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나도 누군가에게 주어보려구요.
지난 목요일, 김은애 사모님께서 주신, 이 말씀을 붙잡고 말이지요.
골로새서 1장 29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댓글목록

심수희님의 댓글
심수희 작성일
말씀 인도자로써 인정 받고 싶은 욕구... 없는 사람 있나요?
거룩한 부담으로 여기자구요....
내 주제가 제대로 파악되는 순간,
그 거룩한 부담조차 가질 용기마저 상실되쟎아요.
그래서 저는 한쪽 눈 슬쩍~ 감고 갈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