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좀 망가지더라도 이해해 주이소...
본문
10-10-09 (토) < 갈라디아서 2:11~21 >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바울에게 책망 들을 일이 있었다니…
게다가 권면의 아들인 바나바도 지도자들이 하는 외식에 유혹되었다니…
이거 공동체가 온통 뒤흔들리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모든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지도자가 잘못했을때
나머지 사람들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워하는것은 당연한 일…
베드로가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교제하는것이 옳다 생각하여 그리 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이지,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자들이 오니까 당황하면서 피할것은 또 무엇인가?
두려움 가운데서나마 예수님을 멀찌기, 끝까지 쫓아갔던
베드로의 일편단심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제와서 무엇이 그로 하여금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이렇게 이중성 있는 삶을 살게 한 것일까?
아~
십자가의 은혜에 focus 되기보다
사람들의 관심과 평가가 더 의식이 될때 베드로처럼 될 수 있겠구나…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촛점을 둘때 그렇게 될 수 있겠구나…
이방인과 함께 앉아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자체가 issue 가 아니라,
사람을 보고 두려워 급변한 베드로의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올 초 여름,
내 목소리가 심각할 정도로 상한 적이 있었다.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으면 그랬겠냐?”고 한 말씀씩 하셨다.
나는 매번 설명을 할수도 없고 해서 그냥 그런척…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럴때마다 정말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마음이 무지 아팠다.
하지만 때로는 못 이기는 척 하면서
아주 그럴듯한 미소를 스윽~ 지어 보였다.
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얻은 명예의 훈장이나 된듯…
정말 숨기고 싶은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학업땜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히스테리를 부리는 고등학교 졸업반의 딸의 모습을 보다 못해
혈기를 부리다가 고함을 질렀는데 목소리가 삐끗~ 빗나가면서 단번에 내 목소리가 상했다.
그 상한 목소리가 회복 될 겨를도 없이 큐티 인도에,
그래도 기도는 해야겠기에 계속 목을 쓰다보니 회복은커녕 더 악화되었다.
너무 걱정이 되어 이비인후과에 가서 목 내시경까지 하기에 이르렀으나,
몇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무절제할 정도로 나의 눈을 피해
성인 사이트를 들락 거리는 아들이 내 눈에 발각되면서
나는 목을 좀 아끼라는 의사의 말은 아랑곳 없이
이성을 잃고 아들의 멱살을 잡고 쉰 목소리로 통곡을 해 버렸다.
그날은 정말,
이러다가 내 아들 폐인되는거 아닌가 하는 착각과 침통한 마음이 생겼다.
이것이 결국 내가 묵상한 삶의 결국이란 말인가?
모든것을 다 때려 치우고
24시간 아들을 감시해야 하는게 아닌가 갈등이 생겼다.
작년에 이사야서를 약속의 말씀으로 붙잡은 이후 계속 기도했지만
현실은 얄궂게도 그 약속의 말씀을 바쳐 주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그 아이의 모습에서 희망같은것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나의 원 목소리가 회복될때까지는 약 2,3개월 가량이 걸렸다.
(맞아요. 요즘 미친듯이 학업에 몰두하는 그 아들 철이예요.
언젠가 간증란에 아주 소상하게 그 과정들을 올릴 날이 있겠지요.)
오늘 베드로에게 보이는 그 이중성… 아니,
그보다도 더한 이중성을 나 자신에게서 너무도 많이 발견한다.
사람의 눈에 그럴듯해 보이는 묵상을 올리며
수많은 적용, 실천을 결심했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실제로 얼마나 행동에 옮기면서 사는지…
수많은 결단과 선포가 정말 얼마나 껍데기와 허실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매번 화,목요 큐티에서 한주간 동안 실천했던것들을 나눌때
자매님들에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때로는 나 자신을 과장 하기도 했다.
내게는 나름, 그런 철학이 있었다.
어느 정도는 내가 선 모습, 완전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무너진, 흐트러진 모습은 금물이다... 등등
제대로 하지 못했을땐 “이번주엔 제대로 못했습니다…”라는 말 대신에
마치 모든것을 완벽하게 한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가능한 한 거룩해 보이는 종잡을 수 없는 야릇한 미소를 지어 보인게 한두번이던가?
성경 암송도 내가 성실히 했을땐 테이블 자매들과 다 함께 외우지만
내가 외우지 못한주엔 스리슬쩍 넘어가기를 몇번이나 했던고?
사랑하는 자매님들이여,
제가 자매님들을 상대로 종종 사기(?)를 쳤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들의 시선이 무서워 야비하게 굴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제 자신을 보여 줄랍니다.
제가 앞으로 많이 망가진 모습을 보이더라도
절대로 실망하지 마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자구요. ^ ^
올해에 적용하기로 했으나 하지 못한것들이 수두룩 하다.
특히 자매들에게 마치 성공하고 있는것처럼 포장했던것중 아주 대표적인 것이 있다.
오늘 당장 그것부터 실천하자.
베드로의 모습으로 인해 혼란스러워 휘청거리는
<남은 유대인들>과 또 다른 <바나바> 같은 희생자가 줄줄이 생기지 않도록…
댓글목록

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
저에겐 외식이 아닌 부분을 골라내기가 쉬울듯...합니다 ㅡㅡ;;
어제도 오늘도
말씀은 정말 영혼의 거울임을 실감하고 있어요,,,
때묻은 제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나눔덕분에 때를 벗겨내기가 더 수월하게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수희자매님의 말, 힘이 됐어요. 알죠?^^

오은미님의 댓글
오은미 작성일
낯설지 않은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