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이미 이루어지기 시작한 약속
본문
역대상 11장 1-9절
2절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은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약속이 실제가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다윗은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그의 처지에 있었다면…
분명히 왕이 된다고 하셨는데, 들판에 혼자 있다가 들은것도 아니고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선포하시고 기름까지 부으셨는데
왜!!
광야에서 목숨을 부지 하기 위해 이리피하고 저리 피해야 하는지…
그냥 이렇게 살다가 사울왕의 손에 죽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사람들은 이런 비참한 삶을 살고있는 나를 왕으로 인정하려고나 할까?
하나님께서는 왕으로 세우신다 하셨는데 잊어버리신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들이 줄을이었을것 같다.
왕이 된다는 약속과 오히려 정 반대로 치닫는 상황속에서 다윗은 기도했을것이다.
그때마다 한결같으신 하나님께서는 똑같은 약속을 주시고 또 주셨을것이다.
다윗의 믿음의 강도나,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이리저리 변경하시지 않으셨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3절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약속의 대상자는 죽도록 고생을 했고,약속의 통로였던 사무엘은 죽었고
많은 사람들은 의심하고 혹, 비웃었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로 드러나고야 말았다.
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는지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서 형통했고
감옥에서는 죄수로서 형통했고, 바로의 궁에서는 총리로서 형통했던 요셉이 떠오른다.
다윗도 요셉도 약속너머에 계신 약속을 주신 이를 바라보는 시야가 열려버렸을것이다.
다윗왕의 헤브론에서의 칠년 반이 여유롭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시야때문인것 같다.
오늘 본문을 새김질하며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슬슬 풀려나갔다.
약속을 일단 주시되, 하는 거 봐서 주실지 아니하실지 결정하실지도 모른다는 오해,
약속만 먼저 주시고 잠잠하시다가 한참 후에야 잊고계셨다는 듯 주신다는 오해,
내가 약속에 합당한 그릇이 되도록 수행? 을 한 후에, 경지에 도달해야만 주신다는 오해…
들이 서서히 씻어져 나갔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말씀하신 그때! 이미 이루시기를 시작하신것이다!
사울에게 죽을듯 살듯 간신히 광야에서 버티는 시간을 통해 기초를 다지시고
헤브론에서의 시간을 통해 다른것들을 더하시고 마침내 이스라엘에서 완성하신것 뿐이다.
약속을 받는 바로 그 순간부터 약속이루어지기의 작업은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내게 주신 약속들을 생각해 본다. 그 중에서 다시 오신다는 그 약속,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된 후에 오신다는 그 약속을 되새긴다.
중국 복음의 문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150년간을 기도하고서야 열렸다.
기도는 했으나 결말은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사람들이 많을것이다.
나도 주님의 다시오심을 이 땅을 사는 동안에 볼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약속하신 바는 오늘도 이루어져가고 있다.
나와 함께 하심으로!
댓글목록

최승경님의 댓글
최승경 작성일그렇지 않아도 , "사명"이란 복음성가를 오늘 하루종일 흥얼거렸네요...."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나와도 함께 하심으로...지금까지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서...여전히...동일하게...
늘 한결같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오늘 선희자매의 글에서 확인하고 갑니다~^^ 신난다^^

심수희님의 댓글
심수희 작성일
흐음~
그러고 보니 제게도,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 인한, 많은 오해가 있었네요.
<오해>라는 영혼의 <오염물>들을 씻어낼때 비로소
오늘 2, 9절의 말씀들을 약속의 말씀으로 받을수 있는거군요...
알았슴다. 써니 공주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