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오늘부터!
본문
사도행전 24:10-23
15-16절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어떻게 양심과 연결이 되는 것일까?
이 땅에서 죽어도 영원한 삶으로 다시 살게된다는 것이
실제인 삶과 양심과의 관계는 무엇일까?
선택과 관련이 있는것 같다.
나의 선택이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하는 선택인가?
아니면 아주 작은 한계가 그어진 지금의 삶만을 고심하며 내리는 선택인가…
양심에 거리끼지 않은 선택을 하나님앞에서 사람앞에서 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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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에 순교자의 목소리에서 출판한 책의 일부를 읽었다.
루마니아에서 활동하신 유대인 목사님 리차드 범브란트 내외분의 이야기 였다.
두 분은 말씀앞에서 양심에 거리끼지 않기 위해서
감옥에 갇히고 강제노역과 고문을 받는 길을 택하고 또 택했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늘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두 분의 고생이 마음에 팍팍 와 닿아서 그런것이었는지…
이번주내내 아파서 그랬었는지,
어제는 ‘나… 이런 상황에서 복음을 계속 증거할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오늘 아침일찍에도 생각할 계기가 있었는데,
여전히 자신은 없었다.
그냥 내 목숨만 총으로 한번에 끝내면 모르겠는데,
남편과 아들까지 언제 죽을지도 모를 고통을
연속적으로 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땐,
치사하게 침묵을 지키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식으로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한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은 분명하다.
얼마전부터 내 맘속에 품고 있는 두 가지 죽음이 있다.
짧아도 예수님처럼 풍성하고 완전한 삶을 갈망하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전도 대상 부족들의 손에 순교했던
짐 엘리엇 선교사님과,
핍박으로 인해 순교하시진 않았지만
마치 닳아서 없어진 것처럼 살다가 가신
존 하이드 선교사님의 죽음이다.
순교를 허락하시지 않으신다면
닳아서 없어지기라도 하겠다는 결심을
오늘 다시 새롭게 해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번주에는 기도하다가, 일을 하다가
집에가서 누워있게 되는 날들이 있었다.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며
불편하게 살겠다더니 지금 뭐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곧장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에 대한 계획은 거창한데,
지금 살고 있는 매일은 영~ 나약하기 짝이없다.
<그 날>에 대한 준비를 오늘 하기로 한다.
오늘은 정한시간까지 눌러앉아 기도하기.
댓글목록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불편하게 살겠다고 결단하는 즉시...편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등따심.
어쩜 좋은지...^^ 하나님도 우릴 귀엽게 봐 주시지 않으실까...요?
그래, 오늘 기도자리 눌러앉는데 성공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