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무능한 나로...
본문
<사도행전 22:1~16><?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어제 말씀엔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또 난리였다.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사랑하는 지체들을 뒤로한채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을 맞은 예루살렘의 형제들…
따뜻한 사랑으로 바울을 영접한 후에는
바울이 이방의 유대인들이 모세를 배반(turn away from Moses)하고
율법을 경하게 여긴다는 쓸데없는 오해로부터 벗어나도록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바울…
자신이 저주를 받을지라도
자기의 핏줄인 유대인을 향하여 구원 받기를 염원하는
그의 깊은 마음과 타는듯한 심정을 과연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1~3>
가는 곳곳마다 바울을 거머리처럼 쫓아 다니며
바울의 피에 목말라 이성을 잃어버린 유대인들…
그들이 바로 바울이 사랑으로 품어야 할 대상이라니…
예루살렘에 가기 전 바울의 각오는 대단했다.
아니, 그때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후 그는 늘 그래왔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행 21:13>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어디서든지, 누구의 앞이든, 그런건 중요치 않았다.
다만 자신의 양심을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대로
그냥, 정말 심플하게, 그러나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했다.
장로들의 제안에 바울이 따랐지만
그들이 제안했던 이유,
그리고 바울이 그 제안을 받아 들인 이유… 는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음 한 구석에 늘 고통과 부담으로 남아 있는
동족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신 심장을 지닌 그에게는
그 어느것이라도 사치스런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모든것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참 자유한 몸이었지만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할수만 있다면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고자했던 바울이 아닌가? <고전 9:20~22>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
그 이레가 거의 차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모든 무리들을 충동(stirred up) 하매
그 영향으로 온 성이 소동(aroused)되었고
정말 피에 목마른자들처럼 소동(uproar)을 불러 일으켰다.
오늘…
바울은 그들 앞에서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때의 간증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 간증, 안들어 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 두번 했겠는가?
나는…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 하는 자라 <행22:3>
이 대목에서 바울은,
속아 살아왔던 자신의 무지한 옛모습을 떠 올리며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목이 메었으리라.
이번주에 나의 마음이 무겁기만하다.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들에 대한 자책감으로 인해,
또한 안타까움으로 잘 붙잡아 주고픈 지체가 오히려 자꾸 멀어짐으로 인해…
혹, 단지 사명감과 체면 때문에
못 놓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마음 써주다가 내가 다치느니
미리 포기해 버리자는 본능적인 자기 방어가 진을 치기 시작한다.
바울처럼 세상적으로 갖출것 다 갖춘 사람이
털끝만큼의 자존심 내세우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모든이들의 비방거리가 되길 자처한것은 사명감과 책임감, 그 이상이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거품물고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매일 발견 했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의 핏값을 주고 죄인중의 괴수를 살리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은혜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컸기에
바울은 그들의 공격에 맞서 대항한다거나 앙갚음하지 않았다.
오늘 내게 필요한 것은...
내 힘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지체들을 향해
바울이 경험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
영혼을 구하고자 자유함으로 여러 모양으로 순응 했지만
절대로 비굴한 타협도 아니요 꺾임도 아닌 그 바울을 생각하니
내게 맡겨 주신 작은 일 하나 제대로 감당 못한것 같아 눈물이 난다.
주님,
기회만 생기면 항상 <하.지.만.>의 토씨를 달았던 저를 용서 하소서.
* * *
"지체들을 위하여 수고하는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참하게 하는 거부감은 사양하겠습니다 ... "
"스톱!!!"
"여기까지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더 이상은 사양하겠습니다 ..."
* * *
작은 일에도, 작은 말에도 상처 받고 마음이 요동치고
그래서 더 이상 안하고 싶다고 제 마음대로 종지부를 찍었네요.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한계를 자기 스스로 짓지 않았네요.
하나님께서 그저 일하시도록 빈 통로로 내어 드렸네요.
바울을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가능케 하심이
저 같은 무능한 사람에게도 용기가 되는거네요.
많은 지체들에게 늘 골고루 사랑을 주지 못해
때로는 섭섭해 하는 그들로 인해 낙심이 되고 저의 무능력함을 느낍니다.
저의 무능력함과 허물이 발견될수록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온전히 드러나소서.
<적용, 실천>
내려 놓아야 할지 고민이 되는 부분에 대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
이젠 나도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 무관심하고픈 지체가 있었는데
바울의 모습을 통해 그 지체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오늘 사랑의 표현으로 작은것 한가지를 실천해 보았다.
댓글목록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용기를 얻었군요.
어떤 열매를 주실 지, 수희자매님의 하나님이 벌써 기대가 되네요~!
간증...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