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패배
본문
13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요한은 왜 이 선교여행에서 슥ㅡ 빠져서 집으로 돌아갔을까?
부잣집 아들이라 물리적인 불편함을 견딜수 없었던 것이었을지
아니면, 함께한 팀안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요한에게 있어서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을것이다.
멀리까지 왔는데, 집으로 가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을것 같다.
어쨌든 느껴지는 것은 마가라 불리우는 요한은
그때 까지만 해도 선교의 그릇으로 준비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홑이불을 팽게치고 알몸으로 도망한 청년…
이렇게 마음이 유약한 사람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쓰셨다.
사도 바울의 말년 사역에 동참한것을 보면 끊어질듯 끊어질듯
약해보여도 꽤나 끈질기게 섬긴것 같다.
게다가 마가복음까지 기록하는 큰일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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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 짐정리를 하다가 예전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보게되었다.
그 중 모라비안선교에 대한 정리가 너무 흥미로와서 늦은시간에 졸음을 참아가며 읽었다.
선교의 시작을 열었다고도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진젠도르프 백작과 모라비안 교도들도 엄청난 실수들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위대한 점은, 실패로 인해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별히 진젠도르프 백작의 고백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공격성과 미개하게 여겨지는 생활양식을 견디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대놓고 싫다고 말하기도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에 대한 염려만큼은 멈출수 없어서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면서, 약 20년간을 자신도 계속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들을 보냈다.
나는 영성과 열정에 있어서
마가와 진젠도르프 백작과 모라비안 교도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의 부족과 연약함을 더욱 인정해야하는데,
그것은 더욱 더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훤히 보인다.
왜 그럴까?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의 추함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지지 않는가 보다.
마가복음에 알몸으로 도망간 청년얘기를 스스로 기록한 마가처럼,
계속해서 선교를 하면서도 힘든점은 솔직히 고백했던 진제도르프 백작처럼
위선적이지 않은 섬김의 그릇으로 변화되고 싶다.
한계로인해 낮아진 나에게 부어주시는 은혜로 일하고 싶다.
먼저 내게 패배한 부분들을 제대로 인정하는 것을 시작하기로 한다.
이런 저런 변명으로 잘 가리워져 있어서 단박에 떠오르지도 않는다.
이따가 기도할때에 조명해 주심을 구하기로 한다.
댓글목록

소범님의 댓글
소범 작성일패배한 부분들을 제대로 인정하기...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