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마음에 들어가기
본문
빌레몬 1:1-7
빌레몬이라는 가정교회 목자에게 쓴 개인적인 편지가
왜 정경이 되어 천년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오늘 본문에 써있는 빌레몬을 향한 바울의 마음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묻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믿음을 실행하기를 원하시는 지…
또, 우리의 교제를 통해 어떻게 기뻐하고 계시는 지를 엿보았다.
하나님은 (스스로는 성경이 될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을) 바울의 개인적인 편지를 통해
당신 마음의 한 횡단면을 보여주시는 것 같다.
6절 그대가 우리와 더불어 누리는 믿음의 사귐이 효력을 내어서
우리가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갈 때에 우리가 받는 복이 무엇인지
그대가 충분히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빌레몬에게 이런마음이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복을 속속들이 누리기를 원하고 원하신다.
다름이 아닌, 믿음의 사귐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신 용서를,
희생하신 희생을,
돌려받을 맘 없이 주는 사랑을 practice 하는 것이 믿음의 사귐이라 생각한다.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안다.
그런데 이 이론을 내 몸이 행할때 그 복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게 된다고 하신다.
어제 밤에 갑작스레 몇몇 아이들과 함께 한 학생의 집에 가게 되었다.
늦은시간에 깨어있는 것, 운전하는 것, 군것질 하는 것…내가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일이다.
게다가 지난 주말 캠프를 내내 이런식으로 보낸 후라,
쌓인일들로 인해 마음이 바빴다. 그래서 정말 가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학생은 바로 얼마전 마음의 벽을 허물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바로 그 친구였다.
길을 잘못들어 프리웨이를 몇번 바꾸어 타고, 유턴을 하며 간신히 그 집에 갔다.
늦은시간 집으로 돌아오며 깨달은 진리는 … 황당하게도 <임마누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멀찍이 계시면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신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들어와 버리셨다. 똑같이 되어 버리셨다.
폭탄 맞은 방 이지만 자기 간사님이 왔다며 좋아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이 조금 아팠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나는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구나…싶었다.
그 밤에 떡뽁기를 만들어 먹고, 그래이드때문에 하는 고민들을 듣는것,
다음주에 있을 스피치 클라스에서 담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거 였다. 멀리있고 혼자만 거룩한 목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에 함께하는 목자가 필요했다.
나즈막한 담을 담치기해서 그 집에 들어갔던 것처럼,
그 친구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효력을 내는 믿음의 사귐!
오늘은 누구의 마음으로 담치기를 하게 하실지…기대한다.
댓글목록

심수희님의 댓글
심수희 작성일
선희 공주님,
대체 몇학년을 담당하고 계신지... 고등부?
그렇담,
일찌감치 선희 공주님 같은분한테 우리 딸래미 좀 맡길껄...
선희 공주님께 보내진 학생들은 행복하여라 (언젠가 드렸던 말이네요.)
그 부모님들 또한 행복한분들임에 틀림이 없네요.
이렇게 한 심령, 한 심령 최선을 다하는 선희 공주님...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온전한 마음으로 인하여 기뻐하실 하나님...
근데... <담치기>라... 해석요. ^ ^
멀리 있고 혼자만 거룩한 목자가 아니라
그들의 생활에 함께 하는 목자...
그 말씀 제 마음이 담아 갈께요. ^^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선희자매와 하나님 사이에 담이 없는 것이 보여요.
아니, 간밤에 쌓인 담을 아침에 말씀으로 날마다 허물어내는 노력이 보여요.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에베소서 2;15
오늘은 누구의 담을 허물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