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형식보다 알맹이
본문
이사야 58:1-12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은 머리를 갈대처럼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깔고 앉은…
겉으로 보기엔 나무랄데 없는 금식이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형식에 속지 않으신다.
다툼, 싸움, 주먹질, 향락, 일꾼들을 부려먹음…
이것들은 고스란히 그들의 형식 안쪽에 있었음을 지적하신다.
진리이신 하나님은 외식을 견디실 수 없다.
그 좋으신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금식은 형식과는 멀고 멀다.
배고픈 사람에게 <나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것,
그러니까 남아 돌아서 주는 것이 아니고, 내 생활비를 나누는 것이다.
노숙자를 집으로 들이는 것…
아직도 두가지 더 남았는데, 난 벌써 여기에서 걸려 버린다.
예전에 버스정류장에서 밤과 낮을 보내는 노숙자에게
조금만 걸어가면 되는데, 왜 쉘터에 가지 않는냐고 물었었다.
그랬더니, 우리집 댄에 머물수 있겠냐고 되물었었다.
순간 완전 당황했었다. 내가 사는집 으로 데리고갈 생각은 해본적도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하숙생이 아니었어도, 선뜻 대답할수 있었을까?
내 집이 아니어서 어렵다고 하고는 그 사람을 떠났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은 내 수준 밖의 일인것만 같다.
이런 금식 말고도 내게 있는 형식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인간관계에서의 형식…특별히 믿음의 형제 자매,
목자와 양과의 관계에서의 형식만 남은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먼저, 양으로서…무지한 양이지만,
목자의 관심의 진실성쯤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사역을 위한 관심인지, 아니면 정말로 내 영혼에 대한 긍휼인지…
전자의 경우…안 그러려고 해도 슬슬 피하게된다.
내가 이렇다면,
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우리 조 아이들은 오죽할까?
유독 한 아이가 떠오른다. 고등부에서 올라온지 일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대학부가 어색하다면서 이벤트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쏙쏙 빠져나간다.
뭔가 관심을 팍팍 주어야 할 것 같은데,
그전에 기도를 뜸뿍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조 아이들을 위한 기도부터 형식적이 되어 있었음을 보여주신다.
맡았으니까 하는 기도였는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주시는 주님,
영혼을 위해 경성하는자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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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가장 다루기 힘든 나의 대의 아이들을 양육하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선희 선생님...!^^

심수희님의 댓글
심수희 작성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금식...
차라리 금식을 말지
왜 금식은 하면서 오락을 찾아 얻고 쌈박질(?)들을 하는지
그들의 모습이 참 이상하게 생각 되었는데
그들의 모습이 바로 저였네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죄로 가득찬 나의 모습, 온전치 못한 나의 입술...
하나님께서 과연 어떻게 보실까 두려워지는 주입니다.
형식보다 알맹이...
오늘 <마치> 와 <같아서>,
그리고 seem eager 라는 단어들을 통해
나는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아니라
나는 <척>하고 <체>하는 시늉만 하는 사람이 아닌가
무척이나 반성이 됩니다.
오, 주님!
나의 영과 마음이 소성케 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오늘도 선희 자매님의 나눔에 은혜 받고
이렇게 흔적만 남기고 갑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