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완악한 나
본문
이사야 46장 8절-13절
8절: 너희 패역한 자들아
9절: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오늘
완악 이라는 단어를 또 만났다.
stubborn-hearted.
피하고 싶은 단어였는데
"네게는, 외고집스런 마음 같은 거 없니? " 하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을 듣고 만다.
<외고집> 하면
난 왜, 남편부터 시작해서 남들의 고집스런 성격만 생각나는 걸까?
‘하나님, 나의 고집스런 부분이라면 그건 저의 마지막 자존심이예요~~~!’
하고 이해만 구하고 싶다.
남의 것은 추하고, 내 것은 고상해 하는
내 성격에서 벌써 완악이 시작되는 줄 알라고 하시는 것 같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45:9)
완악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날카로운 느낌을 받는다.
며칠전, 날카로운 느낌을 받았던 단어가 또 있었기에...되뇌어 보니
지난 45장에서 읽었던 <질그릇 조각>에서도 그랬었다.
질그릇이 조물주와 다툰다 해도, 말 안되게 웃겨 죽는 장면일텐데
깨어져서 동강난 조각 중에서도, 조각 난 조각 같은 꼴을 하고서도
감히 완전하신 조물주에게 대든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되나···?
근데, 하나님은
내가 완악할 때
그런 내게서
<조각들 중 그 한 조각> 같은 이미지를 그려보신다고 하는 것 같다.
조물주와 더불어 다투는 건, 실제 내 삶 속에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조물주가 지으신 다른 지체들과, 내가 화목하지 않을 때
그들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
날카로운 조각이 번뜩이며 설치는 듯한 위험한 피조물의 형상이
내게서 나오지 않겠나...싶다.
나도 조각인데, 다른 지체를 보고 <깨진 조각> 같다고 속으로 업신여긴 것이 생각난다.
나는 그릇의 이미지인 줄로 교만했기 때문이다.
다른 그 조각을
나와 나란히, 끼워넣고 맞춰넣어야 할 것 같다.
나를 지으신 자와 더불어 다투지 않고,
그분과 더불어 사이좋게 살기 위한 적용이다.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이렇게 패역하고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도
그분의 모든 기쁨을 이루시고(10절)
구원을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하신다.(13절)
구원의 계획을 보여 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지.체.치 아니하신다니!
나같은, 조각 중 가장 날카로운 조각에게서도
기쁨을 느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이 헛되지 않도록
오늘, 내 완악함 한가지는 꼭 해결해야겠다. 지체치 않겠다.
<적용>
얼마전 친정엄마에게 섭섭한 일이 생겨서 올해는 절대 전화 안한다...결심했었다.
오늘 저녁에 꼭 전화하겠다.
댓글목록

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
아...
소범집사님 방에서
만난 지체치 않으시는 하나님!
전 저혼자 급한줄 알았지 뭐에요.
오늘도 부르짖을 용기를 얻고가요~ ^ ^

심수희님의 댓글
심수희 작성일
완악함과 고집스러움,
벗기고 또 벗으면 못 벗길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벗기고 조물주만 탓하더라.
그 질그릇 조각중 한 조각 같은자,
바로 저를 두고 하는 말씀 같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