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우욱~ 하는 순간에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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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나의 벗, my friend 란 단어를 보는 순간,
나의 목이 메어온다.
어제 큐티 모임때문에 교회로 가면서
그동안 모임에 잘 나오지 못한 두 자매를 위하여 기도했다.
운전 하면서,
교회 파킹장에 도착하면서,
차에서 물건들을 내리면서
연신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했다.
우리가 모이는 다목적실의 문을 따악~ 여는 순간
Oh my… 열이 화악~ 끓어 올랐다.
기도하는 나의 입에선 더 이상 기도가 아닌,
방언도 아니고 중국말도 아닌,
“#%???@&%$$#@!!!...... “
사탄나라의 말들이 튀어 나왔다.
주일에 여러가지 행사로 인하여 너무도 피곤한 중에
모임을 위하여 테이블 셋업을 다 해놓고 갔는데
도착해 보니 엉망진창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정체 모를 콩고물들이
나의 인내를 시험이라도 하는냥,
보란듯이 테이블 위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기도를 하느라 일찍 갔는데 기도도 못하고 치우느라 바빴다.
순식간에 마음 한구석에서
혈기들이 싹을 트며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큐티를 위해 준비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테이블 셋업과 청소를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해야 하다니 이건 정말 너무 하쟎아요.
지난 1월에 배큠을 하며 먼지를 먹고
며칠동안 알러지로 너무 아팠고
기침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던 생각이 났다.
사람이 이렇게도 악한 것일까?
감사와 찬양은 절로 안 나와도
불평과 원망은 어쩜 그렇게도 자동적으로 튀어 나오는지…
창고에 가서 냅킨과 젓가락등을 챙기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에또, 오늘 자매들과 나눌 말씀이 뭐더라?
그래, 3월 1일 말씀인 이사야 40장 말씀이지.
위로 (comfort) 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시행 착오와 예상치 않은 일들로 인하여 마음이 상할때,
나만 희생하고 수고해야 하는것 같은 피해 의식에 빠져 분이 날때
나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편안케 해 주길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지난주 마가복음을 통해 몰약을 마다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실천하기로 한 것이 있었는데 난 어느새 다 잊어 버리고 있었나보다.
몰약을 좀 드시고 육신의 고통을 더신다고 해서
십자가의 효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닐텐데
굳이 사양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을 하나도 감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 들이시는 것 이상임을 깨닫는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이 세상을 위하여 받는
육신의 아픔을 억지고 과제하듯이 의무감으로 하시지 않고
기쁘게 견뎌 내시는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일주일동안,
내가 사랑하는 지체를 위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수고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가
적용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 앞에 펼쳐진 상황으로 인하여 나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했다.
그렇담, 나는 또 한번 상을 치운다 한들 그저 기쁨으로 하면 되지 않겠는가?
내가 이렇게 우욱~ 하는 순간에도
위로를 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나의 마음이 금새 차분해졌다.
아침에 중보 기도한 두 자매가 일찍 도착했다.
나의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 이렇게 저의 마음을 또 한번 위로해 주시는군요.
오늘 말씀을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의 택한,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불러 주신다.
땅끝처럼 멀리 있는것 같은 때에도,
땅 모퉁이처럼 구석진곳에 있는것 같은때일지라도
찾아 내셔서 불러 주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오늘도 역시 위로하시는 하나님,
아내를 아내라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했던 아브라함에게도
"나의 벗이라" 불러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나에게도 "나의 벗 수희야” 라고 불러 주신다.
그 위로를 받은 자로서,
다음에는 어제같은 상황이 벌어질지라도,
온전한 마음으로 기꺼이 또 한번 치우겠습니다.
댓글목록

김명희님의 댓글
김명희 작성일
집사님!
집사님의 나눔에 동감이 됩니다.
나의 벗이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나에게도 나의 벗 명희 라고 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했죠.
글구 땅끝 낭떠러지 같은 곳에서 매달려 있어도 나를 붙잡는 하나님!
땅 모퉁이에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는 곳에서도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그리고 나를 당신의 종이라 말씀하시며
나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셨다는 말씀 또한 큰 은혜가 되었답니다.
집사님!
이렇게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갈 때 사단도 우리를 노리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금새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오는 집사님을 보며
역시 믿음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민재님의 댓글
김 민재 작성일
나도 오늘 자매님처럼,
[나의 벗 아브라함] 대신에 [나의 벗 민재]로
바꾸어서 기도를 했어요.
창세기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야~~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라는 대목이죠. (창 18:17)
하나님께서 무슨 일이든지 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것처럼,
우리 큐티하는 자매님들도 하나님의 진정한 벗이 되기를 기도할께요.

심수희님의 댓글
심수희 작성일
땅끝 낭떠러지, 벼랑끝에 아슬 아슬하게
자주 서 있는 제 모습을 봅니다.
저, 영화 자주 자주 찍습니다.
제목: 벼랑끝에 선 여자... ㅋㅋㅋ
오늘도 라일락 향기 날리며... http://s272150719.onlinehome.us/bbs/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animated/animate_emoticon%20(5).gif">

무지개님의 댓글
무지개 작성일
나의 벗 아브라함 !
묵상 강의를 하시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오직 아브라함만이 독생자 아들을 제물로 내어놓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동감 했을것이라고...
그래서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고 불렸을까?
더불어 요한복음 15:13-17 말씀이 새겨집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너희가 택한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많은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함이로라.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여전히 수희자매님은
중보기도도 꾸준히, 큐티도 꾸준히
꾸준꾸준...
내게 도전도 꾸준히 주십니다~~~!http://www.qtlife.org/bbs/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animated/animate_emoticon%20(27).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