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사랑없음
본문
마가 10:46-52
50……he jumped up and came to Jesus
눈을 감으면, 마치 벽이 코앞에 있는 것같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데,
바디메오는 펄쩍 뛰어서 주님께로 나아가고 있다.
앞이 안보이는 사람이 예수님께 뛰듯 다가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초라한 행색에 야위고 지저분한 사람이
몸이 기우뚱하기도 하고, 방향을 잘못 잡기도 하지만
눈물나게 열심인 모습으로 주님께 다가오는 모습을 보시며
주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주님은 친히 다가가실 수도 있으셨지만 일부러 부르셨을것 같다.
그래서 내가 만일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면 매우 부끄러워졌을것이다.
앞이 안보이고 거지이기 까지 하니
좋은 말로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았을것 같다.
어쩌면 온갖욕설에 발길질도 당했을지 모를일이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목청을 높여 주님을 부른다.
도대체 이 믿음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바디메오는 구걸을 하면서 주님에 대한 무성한 소문을
들었을것이다. 어쩔땐, 자신처럼 비천한 처지에 있는 자들도
어떤 사랑과 동정으로 고치셨는지를 간증으로
직접 듣기도 했는지도 모른다.
설마…로 시작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겉옷을 던지고 거지생활을 청산하기까지의
강한 확신의 믿음으로 자라났을것이다.
그런분이라면 진짜 다윗의 자손 메시야시구나.
나도 그분을 따르고 싶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는구나…
주님이 어디에 계신지 찾아갈수 없어서
주님을 꼭 만나게 해 달라고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맘속으로 간구하고 있었을것 같다.
그렇게 자라난 믿음과 쌓여진 기도가
실제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을때
누구도 말릴 수 없고,
자신의 한계를 한계로 여기지 않게해서
주님께 나아가고야 말게하는 원동력이 되었을것이다.
내게도 주께서 메시야라는 믿음이 있고
그 주님을 온전히 따르고 싶은 열정이 있으나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계가 있다.
바로 ‘사랑없음’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도 하고,
매주 전화도 한다.
친해지려고 웃기는 얘기도 하고,
간식도 봉지 봉지 싸가지고 간다.
문제는 이런일들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사랑과 믿음 이라기 보다는
제대로 일하지 못한다는 책망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데에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비참한 사실이다.
최소한 우리조 아이들 하나 하나 만이라도
맘 깊이 사랑하고 싶어서 주님께 사랑을 구했으나
아직도 기도가 힘이들고 전화하려면 망설여진다.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시력을 회복할 수 없었던
바디메오 처럼 유일한 해결사이신 주님을 불러야겠다.
한번 불러도 돌아보지 않으시면,
두번 부르고
마귀의 방해공작이 들어오면,
목소리를 더 크게할것이다.
어색한 사랑의 행동이
비웃음을 살지라도 주님만 바라보고
진심을 담을 것이다.
댓글목록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어색한 사랑의 행동이 비웃음을 살지라도...
진심을 담을 것이다...
주님만 바라보고...
선희자매의 귀한 노력이
반 아이들의 마음을 꿈틀꿈틀 살아나게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