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광야에서 들려오는 음성
등록일 2009-01-06
작성자 박소범
본문
마가복음 1:1-15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11절)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실 수 있는, 당연한 이 음성이 임했던 시점은 언제였나...보니
요한에게 겸손히 세례를 받으시던 그 때였다.(9-11절)
내가 겸손할 수 록, 하나님의 사랑을
내게 강하게 표현해 주겠다 하시는 하나님과 만난다.
작년 6월경에
어떤 모임에 갔다가 정말 기분 나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그 분의 경솔한 태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다는 충동만 일어났다.
그 때, 나를 붙잡아 앉히는 말씀이 있었다.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라, 내가 너를 기뻐한다·········!
그날
충동을 억누르며,
‘그래...나는 그런 소리 듣기에 억울할 게 없다.
사실 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보다 훨씬 더 안괜챦은 사람이거든.’
하고 속엣말을 했는데,
11절 말씀이
눈에 선명하게 그려지며, 내 마음에 평강을 주었다.
일주일 아니 사흘만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소리>에 묶여서
속상해 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일년 아니 삼년이 지나도 po---werful 한 흔적을 남기는, <하나님의 음성> 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또 심령도 쪼갤 수 있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다니까요!
작년의 일과 오늘 말씀을 연결해 볼 때
올해 내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더욱 겸손> 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나를 원래부터 사랑하시는 분이시지만
내가 겸손할 때, 머리 숙일 때, 내 주제를 파악할 때
더욱 사랑하심을 표현해 주시는 분 되심을, 오늘 묵상 속에서 깨달았으니까...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왔지만
예수님을 앞서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조차도
요한을 거스르지 않으셨다.
아무래도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들을 되게 좋아하시고 그들과 일하시는 것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다.
1월 1일엔, 본문에도 없던 <광야>라는 단어를 내게 보여주셨는데
오늘은 본문에서 <광야>를 네 번이나 보여주신다.
아무것도 없는 빈들 같은 내 처지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인 안목이 되게 하신다.
2009년, 내게 허락하실 열매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교묘한 광야가 내 발 앞에 함정을 파고 있겠는가?
겁 날것 없다.
그때마다,
요한을 광야에 있게 하시고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심으로 (12절)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던 성령의 선하신 의도를 떠올리겠다.
그 순간을 오히려 200% 활용하는 지혜를 지금, 하나님께 구한다.
아·····들린다······!
내 사랑하는 딸 내 기뻐하는 딸, 소범아·······················!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11절)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실 수 있는, 당연한 이 음성이 임했던 시점은 언제였나...보니
요한에게 겸손히 세례를 받으시던 그 때였다.(9-11절)
내가 겸손할 수 록, 하나님의 사랑을
내게 강하게 표현해 주겠다 하시는 하나님과 만난다.
작년 6월경에
어떤 모임에 갔다가 정말 기분 나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그 분의 경솔한 태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다는 충동만 일어났다.
그 때, 나를 붙잡아 앉히는 말씀이 있었다.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라, 내가 너를 기뻐한다·········!
그날
충동을 억누르며,
‘그래...나는 그런 소리 듣기에 억울할 게 없다.
사실 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보다 훨씬 더 안괜챦은 사람이거든.’
하고 속엣말을 했는데,
11절 말씀이
눈에 선명하게 그려지며, 내 마음에 평강을 주었다.
일주일 아니 사흘만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소리>에 묶여서
속상해 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일년 아니 삼년이 지나도 po---werful 한 흔적을 남기는, <하나님의 음성> 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또 심령도 쪼갤 수 있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다니까요!
작년의 일과 오늘 말씀을 연결해 볼 때
올해 내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더욱 겸손> 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나를 원래부터 사랑하시는 분이시지만
내가 겸손할 때, 머리 숙일 때, 내 주제를 파악할 때
더욱 사랑하심을 표현해 주시는 분 되심을, 오늘 묵상 속에서 깨달았으니까...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왔지만
예수님을 앞서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조차도
요한을 거스르지 않으셨다.
아무래도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들을 되게 좋아하시고 그들과 일하시는 것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다.
1월 1일엔, 본문에도 없던 <광야>라는 단어를 내게 보여주셨는데
오늘은 본문에서 <광야>를 네 번이나 보여주신다.
아무것도 없는 빈들 같은 내 처지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인 안목이 되게 하신다.
2009년, 내게 허락하실 열매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교묘한 광야가 내 발 앞에 함정을 파고 있겠는가?
겁 날것 없다.
그때마다,
요한을 광야에 있게 하시고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심으로 (12절)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던 성령의 선하신 의도를 떠올리겠다.
그 순간을 오히려 200% 활용하는 지혜를 지금, 하나님께 구한다.
아·····들린다······!
내 사랑하는 딸 내 기뻐하는 딸, 소범아·······················!
댓글목록

심수희님의 댓글
심수희 작성일
겸손,
기분 좋고 상황이 받쳐 주면 쉽지만
그렇지 않을때는 정말 너무나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
저도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것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