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내 친구의 이웃에게 증거하겠다.
등록일 2008-12-24
작성자 박소범
본문
요한복음 1:1-18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5절)
말씀되시고 생명되시고 빛되신 하나님이 오셨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니···!
말씀이 있어도 생명이 있어도 빛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을 깨우쳐 주시려고
참빛되신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계획하신 하나님은
또 하나의 계획을 미리 실행하셨다.
증거하는 자, 요한을 앞서 보내셨다.
말씀이 있어도 생명이 있어도 빛이 있어도
<있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없다고> 우기는 우둔한 백성에게
참빛되신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전에
요한부터 보내셔야 했던 하나님의 절박한 심정을 깨닫는 묵상의 시간이다.
일주일 전,
친구 부부가 놀러와서 그들의 이웃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자폐증인 딸로 인해서 아무데도 못가는 엄마의 가슴아픈 이야기이다.
1분도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기에 밥도 한 숟갈 제대로 먹지 못한다 한다.
처녀시절엔 믿음도 좋았고, 현재 교회도 다니긴 하지만
정상적인 인간관계나 공동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다.
깊은 상처 때문에 구원의 확신 마저 잃었다 한다.
감사하게도 자매가 내친구에게 마음을 열어서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려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지만
영적인 도움이 많이 필요한 이웃이라 했다.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다니는 교회도 있다길래, 별 신경 안 썼는데
그런데...그저께는, 기도 중에 얼굴도 모르는 그 자매가 떠오르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남편도 그 자매 집에, 친구네랑 한번 가 보자고 했는데
성가제 연습모임으로 체력을 소진하며 너무 바빴던 나머지, 감동이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어두움 이라는 단어는
혼돈과 공허에 시달리는 그 자매의 어두움을 피해 가지 못하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참빛을 비추어주신 건
나로 하여금 그 빛의 반사체가 되라고 그런 것이라고 배웠다.
나는 환한 빛 속에서 생명 누리고 살면서
빛을 어두움에 비추는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빛을 받은 나> 와 <빛을 깨닫지 못하는 어두움> 이 다를 것이 무엇이 있을까?
증거 라는 단어는 나더러 움직이라고 떠밀어낸다.
혼돈이 가득한 집안에, 공허한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그 자매를
한번 찾아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지, 언제가 좋을 지 기도하며 때를 기다려 보아야겠다.
말씀으로, 가라 하시면
곧 일어나 갈 수 있도록
(친구네와 함께) 준비하는 자세로 기도할 것이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5절)
말씀되시고 생명되시고 빛되신 하나님이 오셨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니···!
말씀이 있어도 생명이 있어도 빛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을 깨우쳐 주시려고
참빛되신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계획하신 하나님은
또 하나의 계획을 미리 실행하셨다.
증거하는 자, 요한을 앞서 보내셨다.
말씀이 있어도 생명이 있어도 빛이 있어도
<있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없다고> 우기는 우둔한 백성에게
참빛되신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전에
요한부터 보내셔야 했던 하나님의 절박한 심정을 깨닫는 묵상의 시간이다.
일주일 전,
친구 부부가 놀러와서 그들의 이웃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자폐증인 딸로 인해서 아무데도 못가는 엄마의 가슴아픈 이야기이다.
1분도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기에 밥도 한 숟갈 제대로 먹지 못한다 한다.
처녀시절엔 믿음도 좋았고, 현재 교회도 다니긴 하지만
정상적인 인간관계나 공동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다.
깊은 상처 때문에 구원의 확신 마저 잃었다 한다.
감사하게도 자매가 내친구에게 마음을 열어서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려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지만
영적인 도움이 많이 필요한 이웃이라 했다.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다니는 교회도 있다길래, 별 신경 안 썼는데
그런데...그저께는, 기도 중에 얼굴도 모르는 그 자매가 떠오르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남편도 그 자매 집에, 친구네랑 한번 가 보자고 했는데
성가제 연습모임으로 체력을 소진하며 너무 바빴던 나머지, 감동이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어두움 이라는 단어는
혼돈과 공허에 시달리는 그 자매의 어두움을 피해 가지 못하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참빛을 비추어주신 건
나로 하여금 그 빛의 반사체가 되라고 그런 것이라고 배웠다.
나는 환한 빛 속에서 생명 누리고 살면서
빛을 어두움에 비추는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빛을 받은 나> 와 <빛을 깨닫지 못하는 어두움> 이 다를 것이 무엇이 있을까?
증거 라는 단어는 나더러 움직이라고 떠밀어낸다.
혼돈이 가득한 집안에, 공허한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그 자매를
한번 찾아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지, 언제가 좋을 지 기도하며 때를 기다려 보아야겠다.
말씀으로, 가라 하시면
곧 일어나 갈 수 있도록
(친구네와 함께) 준비하는 자세로 기도할 것이다.
댓글목록

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
오늘은 저도
그 자매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빛이 확ㅡ 비추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