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비천한 나에게···!
등록일 2008-12-14
작성자 박소범
본문
고린도후서 7:6-7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바울과 디모데)를 위로하셨으니
저(디도)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디도)가
너희(고린도교인)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고리도교인)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바울)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바울과 디모데)에게 고함으로 나(바울)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묵상 1. 바울의 입장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
모든 것을 가졌다며 부유함을 자신하던 바울이(6:10)
스스로를
‘비천한 자’ 들의 이미지에 대입시키고 있다.
디도가, 고린도교회의 마음이 열린 소식을 가져 왔을 때
바울의 감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내게 느끼게 해 준 단어 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앞에서 한없이 낮아지며
디도와 디모데에 대한 고마움으로
더욱 부유해졌을 바울의 마음도 느껴진다.
남편이 실직하던 주에
하나님은 우리 셀에, 새 부부를 보내 주셨다.
지난 일년, 나와 함께 화요모임에서 큐티를 해 오고 있던
자매의 남편이
자매의 오랜 기도 끝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교회와 사람 만나는 것에 질색하던
그 형제는, 하나님을 만나자마자 아내가 하는 큐티에 관심을 보였다.
그 형제는 우리남편과 함께 교회-큐티나눔반에 참석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 부부는 우리 구역의 새식구도 되었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그들을 잘 대접하지도 못하는 비천한 우리부부에게
평일에도 예배를 드려달라고 찾아온다.
오늘은 우리남편을 따라, 김장로님 일행(월요남성모임)과 함께 기도원에도 간다.
이들 부부가 참 고맙고 기특하고, 든든하다.
우리부부가 느끼는 고마움이
하나님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 주는
든든한 동역자이자 제자인, 디도와 디모데에게서
바울이 느꼈던 고마움이겠지···!
능력의 사도 바울이었지만, 비천하다고 밖에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다.
비천한 우리부부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 묵상2. 디모데의 입장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
바울은 아시아에서 환난과 핍박을 당했다.
디모데는 스승이 복음을 전하면서 겪어 온 고난을 알았을 것이다.
고린도교회 때문에 힘들어 했던 스승바울을, 디모데는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동안 디모데의 마음은 어땠을까?
눈물의 편지까지 쓰면서 자신의 사도된 입장을 밝혀야 하는 스승을 보면서
얼마나 속이 상하고 답답했을까?
디모데는 스승바울을 위해서, 그리고 고린도교인들을 위해서
정말 많이 기도했을 것 같다.
그러던 중, 오늘 본문에서 기쁜 소식을 가져온 디도를 만나기에 이르렀다.
그 기쁜 소식에 감격한 디모데는, 바울을 피해 잠깐 화장실에 들어가서
펑펑 울었을 것이다.
스승의 환난을 위로로 갚으신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면서
그의 비젼에 더욱 확신이 생겼을 것 같다.
무엇보다,
고린도교회에 갈 계획을 품고 기도하던 중
길이 열리는 응답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했을까!
지난 수요일은,
친구사모와 목사님이 시작하신 날짜에 맞추어서 중보했던, 40일 기도가 마치는 날이었다.
기도로 동역할 수 있는 마음을 부어주셨던 하나님께 감사한다.
기도를 시작할 때만 해도, 몸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비실비실 했었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40일 후, 되려 기력이 회복되는 응답도 받았다.
동역에 고마웠다는, 친구사모의 이멜을 받았다.
나같이 비천한 것이 누군가의 도우미도 될 수 있다니···! 또 감사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 곁에서
힘이 되어 주라 하시면
디모데처럼 그렇게 하고 싶다.
<묵상 3. 디도의 입장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
바울마저도 배척하는 그 험한 고린도에, 디도가 자원하는 심령으로 갔다.
눈물로 쓴 편지를 들고 갈 때, 그의 심경은 어땠을까?
바울은 이미 두 번이나 방문했었고, 두 번째 방문에선 면박까지 당했다고 한다.
어쩌면 디도는, 바울보다 더 위험한 시기에 고린도에 들어간 셈이다.
그들이 디도편에 온 바울의 편지를 읽고도, 전혀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면
디도는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그 험하고 두려움의 길을
디도가 순종해서 갔다니···!
지도자의 발이 되어 주는 충성된 자세
그리고
중간역할을 할 때 몸을 사리지 않는 사명자의 자세를, 디도에게서 배운다.
나는 얼마 전, 처신을 잘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지혜없음 때문에, 내 지도자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저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떳떳해지려 애썼다.
중간역할에서 오는, 오해와 손해를 피하려고 몸부림치는...내 미성숙함에 문제가 있었다.
디도와 다른, 나의 태도를 확실히 보았다.
디도는, 지도자 바울이 가야 할 길을 총대를 메고 갔는데...나는 비겁했다.
바울이 쓴 마지막 편지의 주인공이 된
디도와 디모데 (목회서신)를 내다보니...정말 부럽다.
나는, 주님의 편지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주님과 양무리의 중간역할을 잘 하고 있나···?
나는, 내 지도자의 발과 손이 되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인가···?
어떨땐(내게 유리할 땐) 비천한 게 감사한데
항상 비천해 지고 싶지는 않은, 나의 언밸런스한 신앙인격이...참으로 절망이다.
기도해야 겠다.
비천해 지는 것에 익숙한 내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바울과 디모데)를 위로하셨으니
저(디도)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디도)가
너희(고린도교인)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고리도교인)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바울)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바울과 디모데)에게 고함으로 나(바울)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묵상 1. 바울의 입장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
모든 것을 가졌다며 부유함을 자신하던 바울이(6:10)
스스로를
‘비천한 자’ 들의 이미지에 대입시키고 있다.
디도가, 고린도교회의 마음이 열린 소식을 가져 왔을 때
바울의 감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내게 느끼게 해 준 단어 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앞에서 한없이 낮아지며
디도와 디모데에 대한 고마움으로
더욱 부유해졌을 바울의 마음도 느껴진다.
남편이 실직하던 주에
하나님은 우리 셀에, 새 부부를 보내 주셨다.
지난 일년, 나와 함께 화요모임에서 큐티를 해 오고 있던
자매의 남편이
자매의 오랜 기도 끝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교회와 사람 만나는 것에 질색하던
그 형제는, 하나님을 만나자마자 아내가 하는 큐티에 관심을 보였다.
그 형제는 우리남편과 함께 교회-큐티나눔반에 참석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 부부는 우리 구역의 새식구도 되었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그들을 잘 대접하지도 못하는 비천한 우리부부에게
평일에도 예배를 드려달라고 찾아온다.
오늘은 우리남편을 따라, 김장로님 일행(월요남성모임)과 함께 기도원에도 간다.
이들 부부가 참 고맙고 기특하고, 든든하다.
우리부부가 느끼는 고마움이
하나님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 주는
든든한 동역자이자 제자인, 디도와 디모데에게서
바울이 느꼈던 고마움이겠지···!
능력의 사도 바울이었지만, 비천하다고 밖에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다.
비천한 우리부부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 묵상2. 디모데의 입장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
바울은 아시아에서 환난과 핍박을 당했다.
디모데는 스승이 복음을 전하면서 겪어 온 고난을 알았을 것이다.
고린도교회 때문에 힘들어 했던 스승바울을, 디모데는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동안 디모데의 마음은 어땠을까?
눈물의 편지까지 쓰면서 자신의 사도된 입장을 밝혀야 하는 스승을 보면서
얼마나 속이 상하고 답답했을까?
디모데는 스승바울을 위해서, 그리고 고린도교인들을 위해서
정말 많이 기도했을 것 같다.
그러던 중, 오늘 본문에서 기쁜 소식을 가져온 디도를 만나기에 이르렀다.
그 기쁜 소식에 감격한 디모데는, 바울을 피해 잠깐 화장실에 들어가서
펑펑 울었을 것이다.
스승의 환난을 위로로 갚으신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면서
그의 비젼에 더욱 확신이 생겼을 것 같다.
무엇보다,
고린도교회에 갈 계획을 품고 기도하던 중
길이 열리는 응답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했을까!
지난 수요일은,
친구사모와 목사님이 시작하신 날짜에 맞추어서 중보했던, 40일 기도가 마치는 날이었다.
기도로 동역할 수 있는 마음을 부어주셨던 하나님께 감사한다.
기도를 시작할 때만 해도, 몸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비실비실 했었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40일 후, 되려 기력이 회복되는 응답도 받았다.
동역에 고마웠다는, 친구사모의 이멜을 받았다.
나같이 비천한 것이 누군가의 도우미도 될 수 있다니···! 또 감사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 곁에서
힘이 되어 주라 하시면
디모데처럼 그렇게 하고 싶다.
<묵상 3. 디도의 입장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
바울마저도 배척하는 그 험한 고린도에, 디도가 자원하는 심령으로 갔다.
눈물로 쓴 편지를 들고 갈 때, 그의 심경은 어땠을까?
바울은 이미 두 번이나 방문했었고, 두 번째 방문에선 면박까지 당했다고 한다.
어쩌면 디도는, 바울보다 더 위험한 시기에 고린도에 들어간 셈이다.
그들이 디도편에 온 바울의 편지를 읽고도, 전혀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면
디도는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그 험하고 두려움의 길을
디도가 순종해서 갔다니···!
지도자의 발이 되어 주는 충성된 자세
그리고
중간역할을 할 때 몸을 사리지 않는 사명자의 자세를, 디도에게서 배운다.
나는 얼마 전, 처신을 잘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지혜없음 때문에, 내 지도자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저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떳떳해지려 애썼다.
중간역할에서 오는, 오해와 손해를 피하려고 몸부림치는...내 미성숙함에 문제가 있었다.
디도와 다른, 나의 태도를 확실히 보았다.
디도는, 지도자 바울이 가야 할 길을 총대를 메고 갔는데...나는 비겁했다.
바울이 쓴 마지막 편지의 주인공이 된
디도와 디모데 (목회서신)를 내다보니...정말 부럽다.
나는, 주님의 편지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주님과 양무리의 중간역할을 잘 하고 있나···?
나는, 내 지도자의 발과 손이 되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인가···?
어떨땐(내게 유리할 땐) 비천한 게 감사한데
항상 비천해 지고 싶지는 않은, 나의 언밸런스한 신앙인격이...참으로 절망이다.
기도해야 겠다.
비천해 지는 것에 익숙한 내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댓글목록

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
<기력회복>에 눈이 번쩍!
건강해지셔서 정말 감사해요!
계속 유지하셨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