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내가 택해야 할 무기...
등록일 2008-12-20
작성자 심수희
본문
<고후 10:1~11>
사람들이 바울에 대하여 여러 말들을 한다.
육체대로 행하는 자라고 하기도 하고 (live by the standards of this world )
바울의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 바울을 가까이 알고 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란 말이 아닌가?
이외에도 바울에게 얼마나 많은 중상 모략과 비판이 있었을까만,
바울은 그런 자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선의 방법임을 안다.
바울도 나 같은 인간인데
자신을 인신공격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어떻게 그럴수 있었을까?
그 해답을 3~5절에서 찾을 수 있을것 같다.
바울은 육신의 몸이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해서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견고함이 있다.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복음 전파함에 있어
방해되고 자신을 요동케 하는 모든 일들이
그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모독과 비방이 아니란것을 안다.
영에 속한 싸움임을 알기에 향방없이 허공을 치는 싸움이 아니라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는 정확히 어떤 무기를 써야할지 파악하고 있다.
<고후 6:3~7>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올해 한해에는 유난히도 사람들로 인하여 실망이 컸었다.
신앙, 직장, 신분문제등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눈물로 중보기도하고 나서 기껏 얻는것이라고는 <떠남>이란 단어였다.
과연 내가 영혼들을 변치 않는 사랑과 열정으로 계속 품으며
사역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져 보았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나에게 끊임 없이 찾아 오는 실망이란 단어는
내가 인간적으로 섭섭하다며 원망해야할 육의 싸움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나의 마음을 좌절시킴으로서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완악한 마음을 품게 하는 사단의 계략임을 때닫게 된다.
사람에 치여서 상처를 받다 보면 마음이 굳어지고 완악해지게 마련이다.
사단은 내가 말에 치어 환경에 치어 고꾸라지는것을 노리고 있다.
영혼을 품을 의욕을 상실케 하는 고도의 흉계이다.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과 싸울것이 아니라
영의 무기를 가지고 사단을 상대로 영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
나의 생각을 좀먹는 사단을 파해야 한다.
의지적으로라도 나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해야한다.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be clear minded)
근신하여 기도하라
나의 생각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으로 나를 채울때 비로소
사랑할 수 없는 대상에게 온유와 관용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에 있었던 많은 일들, 말들…
아직도 다 갚지 못한 빚처럼
나의 마음에 남아있는 유익하지 못한 생각들과
나도 모르게 높아진 마음을 잘 정리, 마무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주님,
마르다처럼 복잡하고 분주한 마음으로는
주님을 온전히 섬길수 없는것을 압니다.
말이 무성한 풍랑 가운데서도 개의치 않고
주님의 성품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바울처럼
저도 예수님의 온유와 관용을
황폐해지기 쉬운 저의 영혼에 채우길 원합니다.
세상이 흉흉해 질수록
저의 마음은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따뜻해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저 또한 다른이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주님의 마음으로 지체들의 속 사정까지 이해해 주길 원합니다.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디도서 3:2>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사람들이 바울에 대하여 여러 말들을 한다.
육체대로 행하는 자라고 하기도 하고 (live by the standards of this world )
바울의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 바울을 가까이 알고 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란 말이 아닌가?
이외에도 바울에게 얼마나 많은 중상 모략과 비판이 있었을까만,
바울은 그런 자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최선의 방법임을 안다.
바울도 나 같은 인간인데
자신을 인신공격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어떻게 그럴수 있었을까?
그 해답을 3~5절에서 찾을 수 있을것 같다.
바울은 육신의 몸이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해서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견고함이 있다.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복음 전파함에 있어
방해되고 자신을 요동케 하는 모든 일들이
그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모독과 비방이 아니란것을 안다.
영에 속한 싸움임을 알기에 향방없이 허공을 치는 싸움이 아니라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는 정확히 어떤 무기를 써야할지 파악하고 있다.
<고후 6:3~7>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올해 한해에는 유난히도 사람들로 인하여 실망이 컸었다.
신앙, 직장, 신분문제등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눈물로 중보기도하고 나서 기껏 얻는것이라고는 <떠남>이란 단어였다.
과연 내가 영혼들을 변치 않는 사랑과 열정으로 계속 품으며
사역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져 보았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나에게 끊임 없이 찾아 오는 실망이란 단어는
내가 인간적으로 섭섭하다며 원망해야할 육의 싸움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나의 마음을 좌절시킴으로서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완악한 마음을 품게 하는 사단의 계략임을 때닫게 된다.
사람에 치여서 상처를 받다 보면 마음이 굳어지고 완악해지게 마련이다.
사단은 내가 말에 치어 환경에 치어 고꾸라지는것을 노리고 있다.
영혼을 품을 의욕을 상실케 하는 고도의 흉계이다.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과 싸울것이 아니라
영의 무기를 가지고 사단을 상대로 영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
나의 생각을 좀먹는 사단을 파해야 한다.
의지적으로라도 나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해야한다.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be clear minded)
근신하여 기도하라
나의 생각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으로 나를 채울때 비로소
사랑할 수 없는 대상에게 온유와 관용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에 있었던 많은 일들, 말들…
아직도 다 갚지 못한 빚처럼
나의 마음에 남아있는 유익하지 못한 생각들과
나도 모르게 높아진 마음을 잘 정리, 마무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주님,
마르다처럼 복잡하고 분주한 마음으로는
주님을 온전히 섬길수 없는것을 압니다.
말이 무성한 풍랑 가운데서도 개의치 않고
주님의 성품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바울처럼
저도 예수님의 온유와 관용을
황폐해지기 쉬운 저의 영혼에 채우길 원합니다.
세상이 흉흉해 질수록
저의 마음은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따뜻해지길 원합니다.
그래서 저 또한 다른이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주님의 마음으로 지체들의 속 사정까지 이해해 주길 원합니다.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디도서 3:2>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댓글목록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관용.
온유함.
수희자매님은, 오늘
내게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해 주네요.
오늘은 좀 온유하지 못했어요.
내일은, 수희자매의 권유를 기억하고
온유함을 나타내도록 노력해 보아야겠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