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대형 수건, 손수건 ...
등록일 2008-12-07
작성자 심수희
본문
오늘 본문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말씀이지만
완고함으로 인하여 수건으로 가리웠다는 원리를
나에게 적용하여 묵상해 보았다.
<고후 3:12~18>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때에
그 수건 (the same veil) 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약 두달전에 비가 쏟아지던 어느날이었다.
뒷마당을 보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패리오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화초가 말라 버렸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화초는 말라서 축 늘어져 있었다.
옆집 할머니께서 주신 큰 파라솔이
화분위에 떠억~ 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가 한방울도 안올때는 그 화초가 말라 죽을까봐
연신 들락거리며 물을 주곤 했었는데,
오히려 며칠동안 비가 오는 날엔
화초가 말라 죽을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는 쫘악 쫘악 내리고 있었고
파라솔 아래의 화초는 파김치가 된 그때의 그 아이러니한 그림이란…
사진을 찍어 두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무리 예수님이 유대인이고
성경을 쓴 저자가 유대인들이고
유대인들의 문화와 그들의 역사로 도배한 구약을 읽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능력의 사도들이 홍수처럼 많았으면 뭐하겠는가?
비오는 날의 파라솔이 비를 차단하듯
그들의 마음이 두꺼운 수건으로 덮고 있는데…
어젯밤에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인도했는데
새로 한 자매님이 오셨다.
표정이 전혀 없는 그 자매의 얼굴에서
나의 옛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무 의욕이 없이 삶이 참 핍절해 보였다.
내가 시골에서 살았을때의 이야기를 잠깐 해 주었다.
영적으로 가물었어도 제대로 도움을 얻을수 없는 시골에 비하면
훌륭하신 목사님들과 강사님들의 설교 말씀이
라디오와 테이프들을 통하여 홍수처럼 넘치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훨씬 복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자매에게 큐티를 시작해 볼것을 권했다.
구약의 예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하여
너무 분명하게 말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완악했고 오히려 양심에 화인 맞은자 되어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셨던 예수님을 끝까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이 수건으로 덮힌자된것처럼
나 또한 7,8년을 대형 수건이 덮힌자처럼
완악하고 우매한자처럼 어두운 삶을 살아왔다.
어젯밤 성경공부의 질문중 하나가
나는 참된 예배의 감격을 맛본 적이 있는가였다.
반원들에게 물으니 뜻밖에도 그들의 반응은
나의 대답을 제일 먼저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도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매일 아침 묵상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던중
최근 몇주 사이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신다.
아무리 격려와 위로의 이멜을 보내고
전화 return call을 부탁해도
전혀 반응이 없는 자매로 인해
요 몇주동안 나의 마음이 굳어져 있음을 알았다.
얼굴을 마주쳐도 묵묵무답인 그 자매로 인해
나의 마음에 어느새 두꺼운 수건으로 덮여진듯
완악해져서 사랑으로 감싼다는것이
내겐 너무도 어려운 과제로 여겨졌다.
나 자신이 자꾸 상처가 되고 낙심이 되어
다시는 전화를 안하리라 다짐을 했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또한번 이멜을 보냈는데
드디어 답멜이 왔다.
그 자매는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심한 환난의 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매가 힘든 일로 인해 마음문이 닫혀서
아무하고도 선뜻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 그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했던 소심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수건이 어디 한가지 종류뿐이겠는가?
대형수건, 손수건, 두꺼운 수건, 얇은 수건등등...
때때로 찾아오는 시험으로 인해 나의 마음이 굳어지기 쉬우니
주님의 임재안으로 돌아가 크고 작은 수건 벗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함을 깨닫게 하신다.
큐티 인도를 하면서 나를 낙심케하는 일들이
나의 평생 피하지 못할 문제임을 알기에
내겐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하던 일들을 내려놓고 싶은 유혹이 밀려 오나
묵상을 통하여 주의 영의 임재 안에서
나의 영혼이 온전한 자유를 누릴수 있도록
그때 그때마다 힘주시고 위로함 주실것을 믿는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7절)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말씀이지만
완고함으로 인하여 수건으로 가리웠다는 원리를
나에게 적용하여 묵상해 보았다.
<고후 3:12~18>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때에
그 수건 (the same veil) 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약 두달전에 비가 쏟아지던 어느날이었다.
뒷마당을 보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패리오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화초가 말라 버렸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화초는 말라서 축 늘어져 있었다.
옆집 할머니께서 주신 큰 파라솔이
화분위에 떠억~ 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가 한방울도 안올때는 그 화초가 말라 죽을까봐
연신 들락거리며 물을 주곤 했었는데,
오히려 며칠동안 비가 오는 날엔
화초가 말라 죽을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는 쫘악 쫘악 내리고 있었고
파라솔 아래의 화초는 파김치가 된 그때의 그 아이러니한 그림이란…
사진을 찍어 두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무리 예수님이 유대인이고
성경을 쓴 저자가 유대인들이고
유대인들의 문화와 그들의 역사로 도배한 구약을 읽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능력의 사도들이 홍수처럼 많았으면 뭐하겠는가?
비오는 날의 파라솔이 비를 차단하듯
그들의 마음이 두꺼운 수건으로 덮고 있는데…
어젯밤에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인도했는데
새로 한 자매님이 오셨다.
표정이 전혀 없는 그 자매의 얼굴에서
나의 옛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무 의욕이 없이 삶이 참 핍절해 보였다.
내가 시골에서 살았을때의 이야기를 잠깐 해 주었다.
영적으로 가물었어도 제대로 도움을 얻을수 없는 시골에 비하면
훌륭하신 목사님들과 강사님들의 설교 말씀이
라디오와 테이프들을 통하여 홍수처럼 넘치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훨씬 복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자매에게 큐티를 시작해 볼것을 권했다.
구약의 예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하여
너무 분명하게 말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완악했고 오히려 양심에 화인 맞은자 되어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셨던 예수님을 끝까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이 수건으로 덮힌자된것처럼
나 또한 7,8년을 대형 수건이 덮힌자처럼
완악하고 우매한자처럼 어두운 삶을 살아왔다.
어젯밤 성경공부의 질문중 하나가
나는 참된 예배의 감격을 맛본 적이 있는가였다.
반원들에게 물으니 뜻밖에도 그들의 반응은
나의 대답을 제일 먼저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도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매일 아침 묵상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던중
최근 몇주 사이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신다.
아무리 격려와 위로의 이멜을 보내고
전화 return call을 부탁해도
전혀 반응이 없는 자매로 인해
요 몇주동안 나의 마음이 굳어져 있음을 알았다.
얼굴을 마주쳐도 묵묵무답인 그 자매로 인해
나의 마음에 어느새 두꺼운 수건으로 덮여진듯
완악해져서 사랑으로 감싼다는것이
내겐 너무도 어려운 과제로 여겨졌다.
나 자신이 자꾸 상처가 되고 낙심이 되어
다시는 전화를 안하리라 다짐을 했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또한번 이멜을 보냈는데
드디어 답멜이 왔다.
그 자매는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심한 환난의 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매가 힘든 일로 인해 마음문이 닫혀서
아무하고도 선뜻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 그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했던 소심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수건이 어디 한가지 종류뿐이겠는가?
대형수건, 손수건, 두꺼운 수건, 얇은 수건등등...
때때로 찾아오는 시험으로 인해 나의 마음이 굳어지기 쉬우니
주님의 임재안으로 돌아가 크고 작은 수건 벗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함을 깨닫게 하신다.
큐티 인도를 하면서 나를 낙심케하는 일들이
나의 평생 피하지 못할 문제임을 알기에
내겐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하던 일들을 내려놓고 싶은 유혹이 밀려 오나
묵상을 통하여 주의 영의 임재 안에서
나의 영혼이 온전한 자유를 누릴수 있도록
그때 그때마다 힘주시고 위로함 주실것을 믿는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7절)
댓글목록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수희자매님 나눔 읽으며
힘 받고 위로함 얻었어요.
상관구절까지 완전 위로 돼요.
좋은 주말 되시길^^

윤지현님의 댓글
윤지현 작성일
저에게도 여러가지 모양의 수건이 덮여졌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그럼에도 영원히 그 수건에 가리워져 있지 아니하고 그 수건들을 치워주시고
주의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새삼 감사드립니다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아...간만에 들어오니
읽었던 글도 막 새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