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바울에게서 배울점
등록일 2008-11-30
작성자 박소범
본문
고린도전서 16: 1-12
에베소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은
이제 마케도냐로 올라갈 계획을 보이며
성령이 인도하시면 고린도에도 들렀다 갈 뜻을 비춘다.
내가 바울이었다면
이 정도 스케쥴을 알려주고
안녕히 계시오. 하고
편지를 깨끗하게 마무리 했을텐데...
고린도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부탁을 하는 바울에게서
배워야 할 지도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묵상 1>
고린도전서 16:2-3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에 헌금을 명한 것처럼
고린도에서도 그렇게 할 것이라 한다.
지금부터 정기적으로 모아서, 바울이 도착하기전에 미리 딱 준비가 되어 있길 당부한다.
바울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고린도성도들에게
민망하게, 헌금의 부담을 주고 그것도 성의를 보일 것을 명하는 어투이다.
영적으로 가난했던 고린도 교회에
예루살렘교회가 신령한 것(복음)을 나누어 주었으니
이제 거꾸로 고린도교회가
가난해진 예루살렘교회에 육신의 것(연보)으로 나누어 주자는 것이다.
로마서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자유하나, 자신의 사도권을 다 쓰지 않고 스스로 종 되길 택한 바울인데
예루살렘교회와 이방교회가 한몸이 되도록 연결해 주며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일에는
사도의 권을 마음껏!! 사용하며, 명하는! 바울에게서, 한가지 배울점을 찾는다.
내게 거리끼는 지체에게, 내 속을 썩이는 양무리에게
나는 헌금 내라고(어려운 부탁을) 말 할 수 있을까?
내게 반갑지 않은 당부를 하는 지도자에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
요즘 불경기라 성도들 형편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우리목사님은 건축헌금을 계속 강조하신다.
목사님은 정말 우리의 관심이 하늘에 있길 원하신다.
세상에 얽메이길 원치 않으신다.
목사님은 30일째 금식하시며 본을 보이고 계신다.
지난주엔, 목사님이 그러셨다.
우리 성도 한사람한사람이 목사님께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그 목사님의 하나님 사랑, 성도 사랑이 느껴지니까
나도 가난 중에 더욱 기도하게 되었다.
건축헌금 드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를...
나는 며칠전, 십불의 건축헌금을 드렸다. 우리집 전재산 30불 중에서 였다.
목사님이 양무리들의 눈치를 보시느라
“힘들면 하지 마세요···!” 하고 설교하셨다면
나도, ‘우리 형편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며
건축헌금 드릴 생각은 전혀 못 했을 것이다.
드리고 나니, 교회사랑이 더 커진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가슴이 확 펴진다.
우리 목사님, 성도 사랑하는 마음 없으시다면
요즘같은 불경기에 결코 헌금강조 안 하셨을 것이다. 바울의 마음이다.
내게 신령한 것을 공급해 주는 내 몸된 교회에
육신의 것으로 돕는 것은 하나님의 바램이며, 내겐 특권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묵상 2>
고린도전서 16:10,11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낼 생각인가보다.
디모데가 가면, 두렵지 않게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고 또 당부한다.
바울마저도 두렵게 만들었던, 고린도가 아니던가.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2:3)
하물며. 연소하고 소심했던 디모데는 어떻겠는가?
바울은 정말 염려가 되었던 모양이다.
디모데를 자식처럼 보호해주고, 참아비의 역할을 감당하는 바울에게서, 배울점을 찾는다.
나는 어떤 지도자인가?
뻔히 아는 힘든 길에, 내 사람을 보낼 때
내 사람의 두려움에 어느정도로 마음을 써 주는 지도자인가?
두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나는
인간에게 의지해선 안 되며 내 스스로 이겨내어야 할 일인지 알면서도
“기도해 줄게.” 한마디로는 부족함을 느낄때도 있다.
나의 두려움의 깊이를 헤아려 주는 바울 같은 지도자라면
정말 평생 함께 하고 싶을 것 같다.
나는
내 양에게 어떤가?
혹시 기도해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 내 할 일 다 했다. 이러고 있진 않는지.
혹시 내 양이 내게, 기도 이상의 더 세심한 관심과 책임을 원하고 있진 않은지.
목요겨울방학 간증회를 준비하며, 00자매님에게 간증을 부탁드렸었다.
처음에 쾌히 승낙하더니, 아무리 기다려도 간증을 이멜로 보내주지 않는 것이다.
그저께 조심스럽게 confirm 전화를 해 보았더니...
그 내용을 막상 간증하려니 두려운 맘이 올라와, 마음이 자꾸 무거워진다고 했다.
그러면 하지 말자고, 마음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나도 두려움을 잘 타는 사람이고, 현재도 발내딛기 두려운 일이 있기에
자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오늘 묵상 중
마음의 부담을 덜어 준 것이 <다> 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증하라 부탁해 놓고, 그 뒤엔 자매가 알아서 하겠거니...기다리기만 했던 것 뉘우친다.
디모데를 보낼 때의 바울처럼, 내 사람을 보낼 때
미리 상황을 파악하고, 길도 닦아주고, 마음도 만져주는
그런 리더의 역할을 하지 못했단 걸 알았다.
내 부족한 점을 알았으니
다음부턴, 좀 더 세심하게 양무리의 심적갈등과 감정을 살피도록 애써서
서로 미안해지는 결과를 안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에베소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은
이제 마케도냐로 올라갈 계획을 보이며
성령이 인도하시면 고린도에도 들렀다 갈 뜻을 비춘다.
내가 바울이었다면
이 정도 스케쥴을 알려주고
안녕히 계시오. 하고
편지를 깨끗하게 마무리 했을텐데...
고린도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부탁을 하는 바울에게서
배워야 할 지도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묵상 1>
고린도전서 16:2-3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에 헌금을 명한 것처럼
고린도에서도 그렇게 할 것이라 한다.
지금부터 정기적으로 모아서, 바울이 도착하기전에 미리 딱 준비가 되어 있길 당부한다.
바울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고린도성도들에게
민망하게, 헌금의 부담을 주고 그것도 성의를 보일 것을 명하는 어투이다.
영적으로 가난했던 고린도 교회에
예루살렘교회가 신령한 것(복음)을 나누어 주었으니
이제 거꾸로 고린도교회가
가난해진 예루살렘교회에 육신의 것(연보)으로 나누어 주자는 것이다.
로마서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자유하나, 자신의 사도권을 다 쓰지 않고 스스로 종 되길 택한 바울인데
예루살렘교회와 이방교회가 한몸이 되도록 연결해 주며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일에는
사도의 권을 마음껏!! 사용하며, 명하는! 바울에게서, 한가지 배울점을 찾는다.
내게 거리끼는 지체에게, 내 속을 썩이는 양무리에게
나는 헌금 내라고(어려운 부탁을) 말 할 수 있을까?
내게 반갑지 않은 당부를 하는 지도자에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
요즘 불경기라 성도들 형편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우리목사님은 건축헌금을 계속 강조하신다.
목사님은 정말 우리의 관심이 하늘에 있길 원하신다.
세상에 얽메이길 원치 않으신다.
목사님은 30일째 금식하시며 본을 보이고 계신다.
지난주엔, 목사님이 그러셨다.
우리 성도 한사람한사람이 목사님께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그 목사님의 하나님 사랑, 성도 사랑이 느껴지니까
나도 가난 중에 더욱 기도하게 되었다.
건축헌금 드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를...
나는 며칠전, 십불의 건축헌금을 드렸다. 우리집 전재산 30불 중에서 였다.
목사님이 양무리들의 눈치를 보시느라
“힘들면 하지 마세요···!” 하고 설교하셨다면
나도, ‘우리 형편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며
건축헌금 드릴 생각은 전혀 못 했을 것이다.
드리고 나니, 교회사랑이 더 커진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가슴이 확 펴진다.
우리 목사님, 성도 사랑하는 마음 없으시다면
요즘같은 불경기에 결코 헌금강조 안 하셨을 것이다. 바울의 마음이다.
내게 신령한 것을 공급해 주는 내 몸된 교회에
육신의 것으로 돕는 것은 하나님의 바램이며, 내겐 특권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묵상 2>
고린도전서 16:10,11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낼 생각인가보다.
디모데가 가면, 두렵지 않게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고 또 당부한다.
바울마저도 두렵게 만들었던, 고린도가 아니던가.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2:3)
하물며. 연소하고 소심했던 디모데는 어떻겠는가?
바울은 정말 염려가 되었던 모양이다.
디모데를 자식처럼 보호해주고, 참아비의 역할을 감당하는 바울에게서, 배울점을 찾는다.
나는 어떤 지도자인가?
뻔히 아는 힘든 길에, 내 사람을 보낼 때
내 사람의 두려움에 어느정도로 마음을 써 주는 지도자인가?
두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나는
인간에게 의지해선 안 되며 내 스스로 이겨내어야 할 일인지 알면서도
“기도해 줄게.” 한마디로는 부족함을 느낄때도 있다.
나의 두려움의 깊이를 헤아려 주는 바울 같은 지도자라면
정말 평생 함께 하고 싶을 것 같다.
나는
내 양에게 어떤가?
혹시 기도해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 내 할 일 다 했다. 이러고 있진 않는지.
혹시 내 양이 내게, 기도 이상의 더 세심한 관심과 책임을 원하고 있진 않은지.
목요겨울방학 간증회를 준비하며, 00자매님에게 간증을 부탁드렸었다.
처음에 쾌히 승낙하더니, 아무리 기다려도 간증을 이멜로 보내주지 않는 것이다.
그저께 조심스럽게 confirm 전화를 해 보았더니...
그 내용을 막상 간증하려니 두려운 맘이 올라와, 마음이 자꾸 무거워진다고 했다.
그러면 하지 말자고, 마음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나도 두려움을 잘 타는 사람이고, 현재도 발내딛기 두려운 일이 있기에
자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오늘 묵상 중
마음의 부담을 덜어 준 것이 <다> 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증하라 부탁해 놓고, 그 뒤엔 자매가 알아서 하겠거니...기다리기만 했던 것 뉘우친다.
디모데를 보낼 때의 바울처럼, 내 사람을 보낼 때
미리 상황을 파악하고, 길도 닦아주고, 마음도 만져주는
그런 리더의 역할을 하지 못했단 걸 알았다.
내 부족한 점을 알았으니
다음부턴, 좀 더 세심하게 양무리의 심적갈등과 감정을 살피도록 애써서
서로 미안해지는 결과를 안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댓글목록

김명희님의 댓글
김명희 작성일
항상 자매님의 묵상을 읽으며 감사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자매님을 사랑하는지 전 잘 알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