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사랑을 따라 성숙함으로...
등록일 2008-11-22
작성자 심수희
본문
<고전 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굉장히 단순하고 쉬운 의미인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말씀 아닌가.
구체적으로 악에 대하여 어린아이처럼 되는것이 무엇일까.
악에 빠져 죄짓지 않으려면 악인지 아닌지 알기 위하여
먼저 지혜로와야 하는데 악에 대하여 어린 아이처럼 되란다.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씀을 관주를 찾아 보았다.
시편 131: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뗀 아이와 같도다
악과 유혹이 내게 접근해 올때
그것에 빠지거나 휩쓸려 요동되는 대신에
물들지 말고 순결함을 지키기 위하여는,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서 고요하고 평온하게 있는것처럼
나의 중심을 항상 그렇게 유지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이야 말로 세상의 간사하고도 부패한 무리들 사이에서도
끝까지 요동함이 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중심을 지키셨다.
많은 은사들, 방언과 통역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생뚱맞게
악에는 어린아이,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란 말을 하고 있는 바울의 심정을 더듬어 본다.
많은 은사를 통한 성령의 역사도
지혜로운 어른처럼 성숙한 모습으로 사랑을 따라 하지 않으면
결국 덕을 세우기보다는 지체간에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게된다.
멋있게 들리는 방언을 절제 하지 못하는 유혹이 왜 없겠는가.
예언과 통변과 그외의 신령한것을 사모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 거듭 강조한 바울의 의도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것 같다.
방언에서 예언에 이르기까지
온갖 신령한 은사가 넘치는 그곳에
교만과 유혹의 손길 또한 만만치 않았을것으로 보인다.
자기의 덕을 세우는 방언을 절제없이 한다면
교회나 믿음이 약한자들에게 덕이 되지않고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는 무지함으로 치닫게 된다.
또한 위에서 내려오는 각양의 좋은 선물들을
지혜에 장성한 사람처럼 삼가 조심스럽게 쓰라는 말로 다가온다.
어제 목요 모임에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뭘까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내게 주신 은사가 뭔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떤 은사를 얼마나 받았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든든히 세워져가고
공동체에 덕이 되는 성숙함이 요구됨을 깨닫게 된다.
사랑이 없다면 방언도 시끄러운 꽹과리요,
사랑이 빠진 사역도 개인의 야망일 뿐이요,
사랑이 빠진 찬양도 기교만 부리는 의미없는 노래요,
사랑이 빠진 모든 은사들도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않으리라.
아무리 예리한 통찰력을 갖고 큐티 하는자라도,
사랑이 결여되었다면,
지혜에 장성한 사람답게 성숙함이 결여되었다면,
자기의 덕을 세우기 위해 일만 마디 방언만 해대는 사람과 무엇이 다를까?
나의 영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큐티가 아니라,
공동체에서 덕을 세우는 성숙한 인격인으로서
한층 업 그레이드된 큐티하는자가 되어야겠다.
Follow the Way of Love…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굉장히 단순하고 쉬운 의미인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말씀 아닌가.
구체적으로 악에 대하여 어린아이처럼 되는것이 무엇일까.
악에 빠져 죄짓지 않으려면 악인지 아닌지 알기 위하여
먼저 지혜로와야 하는데 악에 대하여 어린 아이처럼 되란다.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씀을 관주를 찾아 보았다.
시편 131: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뗀 아이와 같도다
악과 유혹이 내게 접근해 올때
그것에 빠지거나 휩쓸려 요동되는 대신에
물들지 말고 순결함을 지키기 위하여는,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서 고요하고 평온하게 있는것처럼
나의 중심을 항상 그렇게 유지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이야 말로 세상의 간사하고도 부패한 무리들 사이에서도
끝까지 요동함이 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중심을 지키셨다.
많은 은사들, 방언과 통역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생뚱맞게
악에는 어린아이,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란 말을 하고 있는 바울의 심정을 더듬어 본다.
많은 은사를 통한 성령의 역사도
지혜로운 어른처럼 성숙한 모습으로 사랑을 따라 하지 않으면
결국 덕을 세우기보다는 지체간에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게된다.
멋있게 들리는 방언을 절제 하지 못하는 유혹이 왜 없겠는가.
예언과 통변과 그외의 신령한것을 사모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 거듭 강조한 바울의 의도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것 같다.
방언에서 예언에 이르기까지
온갖 신령한 은사가 넘치는 그곳에
교만과 유혹의 손길 또한 만만치 않았을것으로 보인다.
자기의 덕을 세우는 방언을 절제없이 한다면
교회나 믿음이 약한자들에게 덕이 되지않고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는 무지함으로 치닫게 된다.
또한 위에서 내려오는 각양의 좋은 선물들을
지혜에 장성한 사람처럼 삼가 조심스럽게 쓰라는 말로 다가온다.
어제 목요 모임에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뭘까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내게 주신 은사가 뭔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떤 은사를 얼마나 받았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든든히 세워져가고
공동체에 덕이 되는 성숙함이 요구됨을 깨닫게 된다.
사랑이 없다면 방언도 시끄러운 꽹과리요,
사랑이 빠진 사역도 개인의 야망일 뿐이요,
사랑이 빠진 찬양도 기교만 부리는 의미없는 노래요,
사랑이 빠진 모든 은사들도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않으리라.
아무리 예리한 통찰력을 갖고 큐티 하는자라도,
사랑이 결여되었다면,
지혜에 장성한 사람답게 성숙함이 결여되었다면,
자기의 덕을 세우기 위해 일만 마디 방언만 해대는 사람과 무엇이 다를까?
나의 영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큐티가 아니라,
공동체에서 덕을 세우는 성숙한 인격인으로서
한층 업 그레이드된 큐티하는자가 되어야겠다.
Follow the Way of Love…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댓글목록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맞아요.
젖뗀 아이는
젖 말고
밥 맛을 아니까
엄마 품에서
버둥대지 않아도 돼요.
엄마 젖에 더이상 유혹 안 받아요.
엄마 품은, 젖뗀 아이에겐
그저
기대고 안기고 사랑을 느끼는 공간일 뿐이지요.
나도
하나님 품이면 족해요...하고
젖뗀 아이처럼
고요하게
안겨 있고 싶어요.
그러러면
성령의 것이 아닌 것에
유혹 받거나 흔들리거나 혹 하거나
그러면 안 되겠지요?
수희 자매님이 나누어 준
공동체에서 덕을 세우는 성숙한 인격인 이라는 말,
한층 업 그레이드 된 큐티하는 자 라는 말,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께요.
아니, 요즘
그렇게 받고 있는 중이예요.
잘 지속해야 할텐데...^^

조주희님의 댓글
조주희 작성일
사랑의 은사를 가지신 수희자매님!!!
지금도 쉽지 않은데 업.그.레.이.드....
엄마 품과 젖만을 그리워하는 저를 위해
수희, 소범자매님 중보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