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내 경험과 노하우를 뒤로하고...
등록일 2008-10-25
작성자 김(심)수희
본문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 2:5>
사도 바울의 강인하고 막힘없는 담대한 모습의 내면에,
약하고 두렵다 못해 심히 떨림이 있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아덴을 떠나
유식한 철학자들이 득실거리는 고린도 도시에
오긴 왔지만 많이 두려웠나 보다.
세상 학문적인 면에서도 내노라하는 바울도 나름
막상 고린도에 오니 언변에 뛰어난 고린도인들로 인해
심리적으로 좀 위축되었나보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행 18:9,10>
주님의 위로하심이 있었기에 그의 육신의 연약함이 결코
복음에 걸림돌이 된다거나 그로 주저앉게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메세지를 전할때 지혜의 말로 설득하지 않고
오히려 성령의 능력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위에 견고케 되도록 담대히 권했다.
대학교때 이웃 학교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과
미팅을 한적이 있다.
동그랗게 앉아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진땀 흘린 생각을 하면 아직도 끔찍하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모두가 노래를 하면
한 사람씩 “나는 ㅇㅇㅇ~” 라며 노래로
자신의 이름을 밝혀야 하는데 너무 수줍고 떨리다 보니
내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앉아 있었다.
결국 너무 긴장한 탓에 “나는 심~수~희이~” 하는 도중
목소리가 트롯트식으로 뒤집혀 버렸다.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낄낄 거리는 비웃음 소리에
민망함과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더 무서워졌다.
나는 세상적으로는 가진게 정말 없다보니
나 자신에 대하여 자랑할것도 없고 할말도 없다.
그러나 바울의 메세지와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었듯이
나도 큐티로 경험한 하나님을 증거하라면
할말이 많아진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이 아니라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이 바로 이런것이 아닌가 싶다.
작년 7월에 교회의 큐티 모임을 시작한 첫날,
어찌나 뚜렵고 심히 떨렸는지
정신 없이 모임을 마치고는 집에 와서는
기진맥진하여 두통약을 먹고는 드러 누웠다.
너무 신경을 쓴 탓에 반갑지도 않은
두통과 헛 구역질이 함께 찾아오신 것이다.
큐티가 한 <사역>으로 간주되어
주보에 제대로 광고가 된것도 아니고
그저 <취미 동아리>중의 하나로 부속되어 있다보니
지금도 교회에 큐티 모임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러니 처음 큐티 하던 날,
어떤 분들이, 몇분이나 오실까하는
예측 불허란 현실로 인해 무척이나 무서웠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에 처음 갔을때 이런 심정이었을까?
그후부터 나는 모임이 있기 전날인 월요일 저녁에
교회에 가서 의자들을 하나 하나 붙들며 기도하곤 했었다.
나의 연약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아직도 모임 당일이 되면 두렵고 떨리기는 했지만
약간의 경험이 늘다보니 언젠가부터는
월요일 밤에 가서 기도하는것을 중단하고
그냥 집에서 대충 기도하는 일이 생겼다.
얼마전 모임이 분반되고 자리를 잡아가니
자칫 잘못하면 태만해지기 쉽다는것을 잘 알기에
월요일만 되면 다시 교회에 간다.
이것 저것 다 시도해 보았는데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감동이 느껴지기는 커녕,
무섭고 벌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자매가 모임에 새로 왔다.
이제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하여
큐티를 <마지막 기회>로 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모임에 나오게 된 그 자매를 보며
새삼, 나에게 맡겨 주신 인도자의 자리가
너무나도 두렵고 떨림으로 다가온다.
나의 지혜나 인간적인 경험에서 오는 노하우가
결코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될 수 없음을 알기에
또 다시 월요일이면 교회로 달려간다.
테이블과 의자를 셋업하고
칸막이도 갖다 놓고 나면 좀 지치기도 하지만
작년에 모임을 시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자매들을 위하여 의자를 하나 하나 붙잡고 기도하고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힘을 공급 받기 위하여 본당으로 향한다.
<오늘의 적용, 실천>
바울은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했다는데,
나는 쥐꼬리만한 경험이나 노하우로 모임을 이끌지 말자.
내게 주신 성령님의 감동과 영감으로 충만하여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그대로 말하자.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 2:5>
사도 바울의 강인하고 막힘없는 담대한 모습의 내면에,
약하고 두렵다 못해 심히 떨림이 있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아덴을 떠나
유식한 철학자들이 득실거리는 고린도 도시에
오긴 왔지만 많이 두려웠나 보다.
세상 학문적인 면에서도 내노라하는 바울도 나름
막상 고린도에 오니 언변에 뛰어난 고린도인들로 인해
심리적으로 좀 위축되었나보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행 18:9,10>
주님의 위로하심이 있었기에 그의 육신의 연약함이 결코
복음에 걸림돌이 된다거나 그로 주저앉게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메세지를 전할때 지혜의 말로 설득하지 않고
오히려 성령의 능력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위에 견고케 되도록 담대히 권했다.
대학교때 이웃 학교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과
미팅을 한적이 있다.
동그랗게 앉아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진땀 흘린 생각을 하면 아직도 끔찍하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모두가 노래를 하면
한 사람씩 “나는 ㅇㅇㅇ~” 라며 노래로
자신의 이름을 밝혀야 하는데 너무 수줍고 떨리다 보니
내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앉아 있었다.
결국 너무 긴장한 탓에 “나는 심~수~희이~” 하는 도중
목소리가 트롯트식으로 뒤집혀 버렸다.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낄낄 거리는 비웃음 소리에
민망함과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더 무서워졌다.
나는 세상적으로는 가진게 정말 없다보니
나 자신에 대하여 자랑할것도 없고 할말도 없다.
그러나 바울의 메세지와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었듯이
나도 큐티로 경험한 하나님을 증거하라면
할말이 많아진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이 아니라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이 바로 이런것이 아닌가 싶다.
작년 7월에 교회의 큐티 모임을 시작한 첫날,
어찌나 뚜렵고 심히 떨렸는지
정신 없이 모임을 마치고는 집에 와서는
기진맥진하여 두통약을 먹고는 드러 누웠다.
너무 신경을 쓴 탓에 반갑지도 않은
두통과 헛 구역질이 함께 찾아오신 것이다.
큐티가 한 <사역>으로 간주되어
주보에 제대로 광고가 된것도 아니고
그저 <취미 동아리>중의 하나로 부속되어 있다보니
지금도 교회에 큐티 모임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러니 처음 큐티 하던 날,
어떤 분들이, 몇분이나 오실까하는
예측 불허란 현실로 인해 무척이나 무서웠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에 처음 갔을때 이런 심정이었을까?
그후부터 나는 모임이 있기 전날인 월요일 저녁에
교회에 가서 의자들을 하나 하나 붙들며 기도하곤 했었다.
나의 연약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아직도 모임 당일이 되면 두렵고 떨리기는 했지만
약간의 경험이 늘다보니 언젠가부터는
월요일 밤에 가서 기도하는것을 중단하고
그냥 집에서 대충 기도하는 일이 생겼다.
얼마전 모임이 분반되고 자리를 잡아가니
자칫 잘못하면 태만해지기 쉽다는것을 잘 알기에
월요일만 되면 다시 교회에 간다.
이것 저것 다 시도해 보았는데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감동이 느껴지기는 커녕,
무섭고 벌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자매가 모임에 새로 왔다.
이제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하여
큐티를 <마지막 기회>로 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모임에 나오게 된 그 자매를 보며
새삼, 나에게 맡겨 주신 인도자의 자리가
너무나도 두렵고 떨림으로 다가온다.
나의 지혜나 인간적인 경험에서 오는 노하우가
결코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될 수 없음을 알기에
또 다시 월요일이면 교회로 달려간다.
테이블과 의자를 셋업하고
칸막이도 갖다 놓고 나면 좀 지치기도 하지만
작년에 모임을 시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자매들을 위하여 의자를 하나 하나 붙잡고 기도하고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힘을 공급 받기 위하여 본당으로 향한다.
<오늘의 적용, 실천>
바울은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했다는데,
나는 쥐꼬리만한 경험이나 노하우로 모임을 이끌지 말자.
내게 주신 성령님의 감동과 영감으로 충만하여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그대로 말하자.
댓글목록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나도 같은 적용,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예요.
디모데후서 할때 이후로는 더더욱이요.
우리 승리해요.^^

최승경님의 댓글
최승경 작성일
안녕? 자매님? 사실 나도 이부분을 묵상했어요..
금요일은 저에게 많이 바쁜날이예요..그럼에도 하루종일 이 부분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또 자매님을 통하여 다시 말씀하시다니.....다시한번 가정에서나, 사업장에서나, 교회큐티모임에서나..하나님의 능력에 의지 하여야 한다 다집해 봅니다..자매님을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그 자매님이 꼭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김(심)수희님의 댓글
김(심)수희 작성일
하나님의 직분에 충성하는
바울과 아볼로같은 자매님들이여,
열심히 심고 물 주다보면,
하나님께서 쑥쑥 자라게 하시는거 경험하는 재미가
무궁무진 하죠?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맛보아 알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