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나를 말하게 하는 힘
등록일 2008-10-26
작성자 송혜숙
본문
고린도전서 2: 2:1-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3)
지금껏 민수기 안에서의 길고도 험난한 광야 생활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거듭 확인해왔다.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 나의 되찾은 정체성이 고린도전서와 어떻게 이어질 지 궁금했었는데,
내 본적이 ‘세상’군 ‘세상’리 에 있지 않고,
‘ 천국’군 ‘천국’리에 있음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한지
고린도 전서의 장수가 넘어가면서 점점 더 실감이 난다.
방탕에 찌든 고린도인들에게 씨(?)도 안먹힐 것 같은 편지를 보내며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바울의 마음처럼,
타락해가는 이 시대에
적어도 우리의 본적이 ‘하나님께(천국)’있음을 아는 우리가
‘세상’을 본적으로 두고 사는 이들에게
가져야 하는 마음임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권면과 전도의 방법이 내가 살아오며 해오던 방법과는 너무 다르다.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Demonstration of the Sprit’s power)이라고 한다.
증거를 전할때는 말고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1)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3)
남을 전도해야지 하는 사명감은 아직 없지만,
하나님을 새롭게 다시 만나고,
아직 본적이 ‘세상’에 있는 남편과 살면서
전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이 되기 시작하였다.
나의 초점은 늘, ‘어떻게 잘 전하는가’였다.
‘말을 어떻게 잘 하면 넘어올까?
어떻게 강요하면 끌려서라도 교회에 나올까?’
대학교때 만난 남편은 예전의 나의 성향을 잘 기억하고 있다.
남들한테 싫은 소리는 잘 못했지만,
정말 아니다 싶은건 논리적으로 선배에게라도
말하고 넘어가는 편이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던 내 모습이
좋았었다고 남편이 말한 적이 있었다.
나도 그것이 지혜롭고 나름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런 세상적인 면에서 나는 ‘바보’ 같을때가 늘어간다.
스스로도 가끔 ‘너무 비굴하고 바보같은 거 아닌가’ 생각할때도 있다.
‘부당한데, 한마디 해야 하는데 그냥 넘어갈땐.’ 아직도 많이 속상하다.
이렇게 ‘바보같아진 내 모습’을 남편은 좋게만 보지 않는다.
내가 사회적 비판으로부터 입을 다물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사회적 문제들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남편과 많이 이야기해왔던 터였다.)
그런 남편을 전도하려고 여러가지 시도를 했었다.
남편이 좋아한다던 나의 나름 논리적인 언변(?)으로가 첫 시도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의 지혜(?)로 ’No’라고 말했다.
그 다음은 반강제적인 방법으로 설득(persuasive words)을 했다.
억지로 가정교회 사람들과 식사자리를 자꾸 만들었다.
내가 아니라 그들이 설득하게 하여 거절하기 힘든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른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남편이 급기야는
목사님과 새벽까지 2시간에 걸쳐 토론을 벌이고는
결국, ‘No’ 라고 말했다.
고린도인들은 모든 구변과 지식이 풍족했다고 한다.
모든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잘난(?)이들 앞에 서야 하는 바울은
약하고 두려워 심히 떨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자기가 아무리 지혜를 짜 내어 말해도,
미사여구를 덧붙여 권해도,
세상적으로 보면 더 말 잘하고 똑똑한 그들앞에
주눅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그 십자가 안에서
지혜와 의로움, 거룩함과 구속함이 나온다는 원리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지혜와 권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만이
그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 믿고 바라보기로 작정한다.
나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
이젠 알겠다.
그런데, 이제 나의 지혜와 언변을 내려놓으니
사람들앞에서, 특히 남편앞에서 하나님 전하려하면
조심스럽고, 주눅이 많이 든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반응을 미리 예상하니, 말이 입밖으로 나오기가 힘이 든다.
그러나, 나도 바울처럼,
말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구나 깨달았다.
예수 그리스도, 그 구원의 십자가만 믿기로 작정하는 것…
비록 오늘 실패했지만, 또 내일도 실패할 수 있지만,
구원의 능력은 거기에 있음을 믿고 작정하는 것이
나를 말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적용: 전도에 대한 기도를 할 때 10분씩 더하자.
어떻게 말할 지 모를 때마다,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자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3)
지금껏 민수기 안에서의 길고도 험난한 광야 생활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거듭 확인해왔다.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 나의 되찾은 정체성이 고린도전서와 어떻게 이어질 지 궁금했었는데,
내 본적이 ‘세상’군 ‘세상’리 에 있지 않고,
‘ 천국’군 ‘천국’리에 있음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한지
고린도 전서의 장수가 넘어가면서 점점 더 실감이 난다.
방탕에 찌든 고린도인들에게 씨(?)도 안먹힐 것 같은 편지를 보내며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바울의 마음처럼,
타락해가는 이 시대에
적어도 우리의 본적이 ‘하나님께(천국)’있음을 아는 우리가
‘세상’을 본적으로 두고 사는 이들에게
가져야 하는 마음임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권면과 전도의 방법이 내가 살아오며 해오던 방법과는 너무 다르다.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Demonstration of the Sprit’s power)이라고 한다.
증거를 전할때는 말고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1)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3)
남을 전도해야지 하는 사명감은 아직 없지만,
하나님을 새롭게 다시 만나고,
아직 본적이 ‘세상’에 있는 남편과 살면서
전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이 되기 시작하였다.
나의 초점은 늘, ‘어떻게 잘 전하는가’였다.
‘말을 어떻게 잘 하면 넘어올까?
어떻게 강요하면 끌려서라도 교회에 나올까?’
대학교때 만난 남편은 예전의 나의 성향을 잘 기억하고 있다.
남들한테 싫은 소리는 잘 못했지만,
정말 아니다 싶은건 논리적으로 선배에게라도
말하고 넘어가는 편이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던 내 모습이
좋았었다고 남편이 말한 적이 있었다.
나도 그것이 지혜롭고 나름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런 세상적인 면에서 나는 ‘바보’ 같을때가 늘어간다.
스스로도 가끔 ‘너무 비굴하고 바보같은 거 아닌가’ 생각할때도 있다.
‘부당한데, 한마디 해야 하는데 그냥 넘어갈땐.’ 아직도 많이 속상하다.
이렇게 ‘바보같아진 내 모습’을 남편은 좋게만 보지 않는다.
내가 사회적 비판으로부터 입을 다물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사회적 문제들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남편과 많이 이야기해왔던 터였다.)
그런 남편을 전도하려고 여러가지 시도를 했었다.
남편이 좋아한다던 나의 나름 논리적인 언변(?)으로가 첫 시도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의 지혜(?)로 ’No’라고 말했다.
그 다음은 반강제적인 방법으로 설득(persuasive words)을 했다.
억지로 가정교회 사람들과 식사자리를 자꾸 만들었다.
내가 아니라 그들이 설득하게 하여 거절하기 힘든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른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남편이 급기야는
목사님과 새벽까지 2시간에 걸쳐 토론을 벌이고는
결국, ‘No’ 라고 말했다.
고린도인들은 모든 구변과 지식이 풍족했다고 한다.
모든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잘난(?)이들 앞에 서야 하는 바울은
약하고 두려워 심히 떨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자기가 아무리 지혜를 짜 내어 말해도,
미사여구를 덧붙여 권해도,
세상적으로 보면 더 말 잘하고 똑똑한 그들앞에
주눅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그 십자가 안에서
지혜와 의로움, 거룩함과 구속함이 나온다는 원리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지혜와 권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만이
그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 믿고 바라보기로 작정한다.
나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
이젠 알겠다.
그런데, 이제 나의 지혜와 언변을 내려놓으니
사람들앞에서, 특히 남편앞에서 하나님 전하려하면
조심스럽고, 주눅이 많이 든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반응을 미리 예상하니, 말이 입밖으로 나오기가 힘이 든다.
그러나, 나도 바울처럼,
말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구나 깨달았다.
예수 그리스도, 그 구원의 십자가만 믿기로 작정하는 것…
비록 오늘 실패했지만, 또 내일도 실패할 수 있지만,
구원의 능력은 거기에 있음을 믿고 작정하는 것이
나를 말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적용: 전도에 대한 기도를 할 때 10분씩 더하자.
어떻게 말할 지 모를 때마다,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자 .
댓글목록

김(심)수희님의 댓글
김(심)수희 작성일
<10분씩 더>가
성령의 크신 능력으로 열매 맺어지시기를...
남편의 구원에 대한 열정,
하나님께서 이미 받으시고 작업중이실 거예요. ^^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간증이 되게 하시려고...^^

조주희님의 댓글
조주희 작성일
저희 교회에서 40일동안 영적대각성 40일 금식기도가 있습니다. (끼 금식)
다섯가지 기도제목 중 40일동안 40명에게 전도하고 선교하라는 기도제목을 주셨는데
혜숙 자매님의 남편 분도 리스드에 올립니다...
힘 내서요 !!! 아자! 아자! 화이팅!!!

송혜숙(씩씩이)님의 댓글
송혜숙(씩씩이) 작성일감사합니다..저도 힘내서 더 열씨미 기도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