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폐하시는 하나님
등록일 2008-10-24
작성자 박소범
본문
고린도전서 1:26-31
작년에, 아는 학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자주 결석시키는 것을
지켜봐 온 다른 학부모가 엄마로서의 불성실에 대해, 내게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7년전 놀웤에 살 때 크리스챤 사립학교를 왕복 한시간이 넘도록 운전하면서
큰아들을 삼년동안 지각이나 결석을 시켜본 적이 없는 나였다.
플러튼 이사 와서 초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도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아들이 아픈 날에도 출석시켜 아들에게 개근상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당연히 불성실해 보이는 그 학부모가 내심 판단이 되었다.
믿는 사람이 왜, 믿음 없는 사람한테 책망 받을 행동을 했을까...하고.
지난 월요일, 나는 우리 예서를 유치원에 지각을 시켰다.
늦잠을 잤다.
차가 없었을 땐, 데릴러 오는 분의 시간에 맞추어 보내느라
지각할 일이 없었는데
차가 있으니까, 1분만1분만 하다가 푹 잠들어서 깨어보니 아홉시였다.
게다가, 핔업시간이 12시 30분인데 5분이나 지나서 오피스에서 데리고 나온 게, 네 번이다.
차가 없었을 땐, 걸어가니까 미리미리 서둘러서
은서 슬리퍼 망가졌을때 말곤 지각 핔업을 안했는데
차가 생긴 후엔, 가까운 거리라고 느긋하게 굴다가 애기들 챙기면서
5분씩 늦었던 것이다.
드디어, 며칠 전
예서 클래스 엄마들 중
내가 큐티 한다는 거 알고 있는 유일한 한 사람, 같은교인인 학부모가
“지난 주에도 핔업할 때 보니까, 예서만 혼자 남은 것 같던데…!”
하고 관심있는^^ 인사를 해 왔다.
사람 눈에 들키고 나서야
내가 어느 섬에 표류 돼 있는 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정신차리라고, 제대로 처신하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고린도전서 1:30-31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전서는 첫판부터
같은 말 이라는 단어로 내 입술을 제어하더니
자랑 이라는 단어로 마음까지 움츠러들게 했다.
내가 스스로 지혜있는 줄 알고, 스스로 의로운 줄 알고 착각하며
내 안에서 자랑으로 만들었던 일들이 떠오르니
쥐구멍에 숨고 싶다.
내게 뭔가 <있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자랑이
주 안에선 마땅히 <없어져야 될 것들>로 여기셨기에
이렇게
돌려 받는 사건을 통해
폐하는 작업을 해 주시는 것일꺼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28절)
왜,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물건을 지칭하는, ‘것들’ 에 대입시키고 있는 걸까?
그럼, 지혜 있는 ‘것들’ 이라고 하지 않고, 지혜 있는 ‘자’ 라고 한 건, 또 왜 일까?
지혜 있는 ‘자’ 가
미련한 ‘자’ 에게 눌려도 비참할 판에
미련한 ‘것’ 의 수준에 눌리면 얼마나 더 수치스럽겠는가?
그렇게 안 되도록 겸손하라고 하신다.
하나님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닌 인생임을 알게 해 준다.
차라리
‘것들’ 된 자세로 살면, ‘자들’ 로 세워 주겠다고 하시는 것 같다.
나를
‘주 안에서’ 자랑 되게 하시려고
내 안의 자랑 된 것들을
물건처럼 아낌없이 폐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적용>
5분도 안 걸려서 도착하는 거리이지만
항상 20분 일찍 핔업 나가겠다.
이 일 말고 또 생각나는 게 있다.
하나님이 폐하시기 전에 알아서 정리해 봐야 겠다.
작년에, 아는 학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자주 결석시키는 것을
지켜봐 온 다른 학부모가 엄마로서의 불성실에 대해, 내게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7년전 놀웤에 살 때 크리스챤 사립학교를 왕복 한시간이 넘도록 운전하면서
큰아들을 삼년동안 지각이나 결석을 시켜본 적이 없는 나였다.
플러튼 이사 와서 초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도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아들이 아픈 날에도 출석시켜 아들에게 개근상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당연히 불성실해 보이는 그 학부모가 내심 판단이 되었다.
믿는 사람이 왜, 믿음 없는 사람한테 책망 받을 행동을 했을까...하고.
지난 월요일, 나는 우리 예서를 유치원에 지각을 시켰다.
늦잠을 잤다.
차가 없었을 땐, 데릴러 오는 분의 시간에 맞추어 보내느라
지각할 일이 없었는데
차가 있으니까, 1분만1분만 하다가 푹 잠들어서 깨어보니 아홉시였다.
게다가, 핔업시간이 12시 30분인데 5분이나 지나서 오피스에서 데리고 나온 게, 네 번이다.
차가 없었을 땐, 걸어가니까 미리미리 서둘러서
은서 슬리퍼 망가졌을때 말곤 지각 핔업을 안했는데
차가 생긴 후엔, 가까운 거리라고 느긋하게 굴다가 애기들 챙기면서
5분씩 늦었던 것이다.
드디어, 며칠 전
예서 클래스 엄마들 중
내가 큐티 한다는 거 알고 있는 유일한 한 사람, 같은교인인 학부모가
“지난 주에도 핔업할 때 보니까, 예서만 혼자 남은 것 같던데…!”
하고 관심있는^^ 인사를 해 왔다.
사람 눈에 들키고 나서야
내가 어느 섬에 표류 돼 있는 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정신차리라고, 제대로 처신하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고린도전서 1:30-31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전서는 첫판부터
같은 말 이라는 단어로 내 입술을 제어하더니
자랑 이라는 단어로 마음까지 움츠러들게 했다.
내가 스스로 지혜있는 줄 알고, 스스로 의로운 줄 알고 착각하며
내 안에서 자랑으로 만들었던 일들이 떠오르니
쥐구멍에 숨고 싶다.
내게 뭔가 <있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자랑이
주 안에선 마땅히 <없어져야 될 것들>로 여기셨기에
이렇게
돌려 받는 사건을 통해
폐하는 작업을 해 주시는 것일꺼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28절)
왜,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물건을 지칭하는, ‘것들’ 에 대입시키고 있는 걸까?
그럼, 지혜 있는 ‘것들’ 이라고 하지 않고, 지혜 있는 ‘자’ 라고 한 건, 또 왜 일까?
지혜 있는 ‘자’ 가
미련한 ‘자’ 에게 눌려도 비참할 판에
미련한 ‘것’ 의 수준에 눌리면 얼마나 더 수치스럽겠는가?
그렇게 안 되도록 겸손하라고 하신다.
하나님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닌 인생임을 알게 해 준다.
차라리
‘것들’ 된 자세로 살면, ‘자들’ 로 세워 주겠다고 하시는 것 같다.
나를
‘주 안에서’ 자랑 되게 하시려고
내 안의 자랑 된 것들을
물건처럼 아낌없이 폐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적용>
5분도 안 걸려서 도착하는 거리이지만
항상 20분 일찍 핔업 나가겠다.
이 일 말고 또 생각나는 게 있다.
하나님이 폐하시기 전에 알아서 정리해 봐야 겠다.
댓글목록

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
아...지각.
저도 알아서 정리해야겠어요.

김(심)수희님의 댓글
김(심)수희 작성일
오늘의 적용, 무지 적극적이네요.
<지각 안하겠다>의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일찍 픽업 나가겠다>의 자세... 넘 좋다... ^^
저는 올해 연초의 목표가
목요 큐티에 평소보다 더 일찍 도착하기였습니다.
어차피 친양땜에 일찍 가는편이었지만,
찬양을 준비하다 보면 저의 마음이 분주하고
능력 부족을 느끼기에 저의 한계를 느낀 결과,
더 일찍 가서 기도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나 이러다 돌 맞을라. ㅋㅋㅋ)
역쉬 연약함을 느끼는만큼 주님 앞에 더 엎드리게 되는것 같아요.
저의 능력은 <평균 이하>거던요. ㅎㅎㅎ
아! 근데 나 딴거 지각하는건 없나? ㅋㅋㅋ (두리번 두리번 ;;)
오늘의 말씀,
삶의 에피소드로 마음이 팍팍 와닿게 전달해 주셔서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