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광야의 소중함
등록일 2008-10-18
작성자 박소범
본문
민수기 34장, 35장1-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34:1,12)
남편 경계, 서편 경계, 북편 경계...동편 경계 순으로 일러 주신다.
모세는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그 순서대로
이스라엘 열두지파에게 전달해 주었을 것이다.
남-서-북편 경계에 대해 들으면서
르우벤 갓 지파는 얼마나 숨죽이며 들었을까?
동편 경계를 제일 나중에 설명해 주셨으니까 말이다.
어디까지 그으실까…? 물론,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막상
요단동편 땅이 여호와의 경계 안 에 포함되지 않는 지도브리핑을 들으면서
가슴 한 켠 불안감과 소외감이 생기진 않았을런지...
그러고보니,
사방으로 경계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광야와 가나안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광야에서도 동서남북, 지파별 진칠 곳을 지정해 주셨다.
가나안에서도 사방경계를 그어 주신다.
벗어나거나 옮길 수 없는 경계 라는 답답한 단어가, 오늘은 안정감을 준다.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시는 곳은, 경계 때문에 불편해 지는 게 정상이구나~!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으로 도피성이 되게 하되
세 성읍은 요단 이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35:13)
그러나,
가나안 경계에는 들지 않는 요단동편 땅에도
동일한 숫자의 도피성을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
요단동편을 택한 이단아 같은 두지파의 마음 한 구석에 있었을
불안감과 소외감이 말끔히 해소되었을 것 같다.
약속을 잘 이행한 열지파와
동일하게 분배 받고, 동일하게 대우 받는다는 소속감 때문에 말이다.
이러한 소속감은
두지파가 열지파와 합세해서 한마음으로 싸우는 일에
심리적으로 안정감도 주었을 것이다.
4년 전, 나와 같은 교회 성도였던 자매님이
나를 통해서 큐티라이프에 나와서 같은 테이블에 있다가
권사님을 통해 큐티의 하나님을 만난 후 뱅큇에서 간증도 하고
아쉬운 맘으로, 동부쪽으로 이사를 갔다.
그 자매님이 이젠, oo교회 담임목사님 사모님이 되셔서
이번 주, 우리교회에서 열린 선교대회에 참석하시게 되었다.
어제 사모님은 목요모임에 참석하셨고, 모임 후 사모님과 밤이 되도록 함께 있었다.
동east과 서west 다른 곳에, 4년이라는 세월을 떨어져 살았기에
처음엔 요단강이 우리 사이에 흐르듯, 거리감이 느껴져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자연스럽게 민수기 은혜를 나눌 땐, 우리가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다.
너무나도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훈련을 받아 온 우리였지만
같은 말씀의 경계 안에서, 같은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어서인 줄 안다.
둘 다, 엄청 고생하다가 만났는데
대화 속에서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 도피성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이제부턴 친구가 아닌, 사명감을 갖고 중보해 주는
동역자로서의 약속을 이행하기로 하고 각자의 땅으로 헤어졌다.
겁 많은 나에게서 아직 광야를 거두시지 않은 채
고린도전서로 보내시기가 차마 미안하셨던 지
말씀을 통해, 사람을 통해
<광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시려고
갖은 애를 쓰시는 하나님...!
가나안에 도피성이 왜 있겠나.
오골오골 빽빽하게 진치고 모여 살 때엔, 부딪혔단 말이 한군데도 안 나오는데
널찍널찍 자기 영역이 확보되고, 둘반지파가 요단동편으로 가니 실평수도 넓어지는데
부딪힐 일이 허구헌날 생길 모양이다.
나는 오늘 묵상 가운데
도피성 없는 광야가,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은 나의 사방보호자이시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이 광야이기에 오늘도 나는 형통하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34:1,12)
남편 경계, 서편 경계, 북편 경계...동편 경계 순으로 일러 주신다.
모세는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그 순서대로
이스라엘 열두지파에게 전달해 주었을 것이다.
남-서-북편 경계에 대해 들으면서
르우벤 갓 지파는 얼마나 숨죽이며 들었을까?
동편 경계를 제일 나중에 설명해 주셨으니까 말이다.
어디까지 그으실까…? 물론,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막상
요단동편 땅이 여호와의 경계 안 에 포함되지 않는 지도브리핑을 들으면서
가슴 한 켠 불안감과 소외감이 생기진 않았을런지...
그러고보니,
사방으로 경계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광야와 가나안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광야에서도 동서남북, 지파별 진칠 곳을 지정해 주셨다.
가나안에서도 사방경계를 그어 주신다.
벗어나거나 옮길 수 없는 경계 라는 답답한 단어가, 오늘은 안정감을 준다.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시는 곳은, 경계 때문에 불편해 지는 게 정상이구나~!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으로 도피성이 되게 하되
세 성읍은 요단 이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35:13)
그러나,
가나안 경계에는 들지 않는 요단동편 땅에도
동일한 숫자의 도피성을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
요단동편을 택한 이단아 같은 두지파의 마음 한 구석에 있었을
불안감과 소외감이 말끔히 해소되었을 것 같다.
약속을 잘 이행한 열지파와
동일하게 분배 받고, 동일하게 대우 받는다는 소속감 때문에 말이다.
이러한 소속감은
두지파가 열지파와 합세해서 한마음으로 싸우는 일에
심리적으로 안정감도 주었을 것이다.
4년 전, 나와 같은 교회 성도였던 자매님이
나를 통해서 큐티라이프에 나와서 같은 테이블에 있다가
권사님을 통해 큐티의 하나님을 만난 후 뱅큇에서 간증도 하고
아쉬운 맘으로, 동부쪽으로 이사를 갔다.
그 자매님이 이젠, oo교회 담임목사님 사모님이 되셔서
이번 주, 우리교회에서 열린 선교대회에 참석하시게 되었다.
어제 사모님은 목요모임에 참석하셨고, 모임 후 사모님과 밤이 되도록 함께 있었다.
동east과 서west 다른 곳에, 4년이라는 세월을 떨어져 살았기에
처음엔 요단강이 우리 사이에 흐르듯, 거리감이 느껴져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자연스럽게 민수기 은혜를 나눌 땐, 우리가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다.
너무나도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훈련을 받아 온 우리였지만
같은 말씀의 경계 안에서, 같은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어서인 줄 안다.
둘 다, 엄청 고생하다가 만났는데
대화 속에서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 도피성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이제부턴 친구가 아닌, 사명감을 갖고 중보해 주는
동역자로서의 약속을 이행하기로 하고 각자의 땅으로 헤어졌다.
겁 많은 나에게서 아직 광야를 거두시지 않은 채
고린도전서로 보내시기가 차마 미안하셨던 지
말씀을 통해, 사람을 통해
<광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시려고
갖은 애를 쓰시는 하나님...!
가나안에 도피성이 왜 있겠나.
오골오골 빽빽하게 진치고 모여 살 때엔, 부딪혔단 말이 한군데도 안 나오는데
널찍널찍 자기 영역이 확보되고, 둘반지파가 요단동편으로 가니 실평수도 넓어지는데
부딪힐 일이 허구헌날 생길 모양이다.
나는 오늘 묵상 가운데
도피성 없는 광야가,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은 나의 사방보호자이시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이 광야이기에 오늘도 나는 형통하다!
댓글목록

김 민재님의 댓글
김 민재 작성일
나는 오히려 도피성을 주셔서
감사하는 하루였어요.
어제 그릇(accidently)저질렀던 일들을 가지고
도피성으로 가서 숨어 버렸거든요.
그래서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도피성이신 예수님때문에......
틴 에이저 아이들을 통해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렸습니다.
p.s.
나는 cell phone을 귀에다 대지만 않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하나님만 바라보는 광야라서 행복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