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모세의 사랑
등록일 2008-10-12
작성자 박소범
본문
민수기 32:1-15
어어~ 모세, 왜 이러시지~?
또 화내신다. 또 험한 말 하신다.
하나님 들으시면 어쩌려고...?
너희 열조를 계대한 죄인의 종류라니...?
그럼, 이들도 폐역하단 말 아닌가...! (민수기 20:9-11)
물 먹을 가치도 없는 족속이고
가나안에 들어갈 가치도 없는 것들이라는 거친 말을 다시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 그렇지.
그때(므리바 물) 그 사건 터진 날에 내질렀던 그 화, 아닌 거다. 다른 거다.
완전 신경질 난 모세.
가나안 아니면 죽음이기 때문이다.
두 살 터울 내 남동생이, 기어 다닐 때였다.
한겨울, 엄마가 연탄불 갈러 밖에 나간 사이, 부뚜막으로 내려가 아궁이에 거의 빠졌었다.
이마에 흉터가 생겼고, 손가락 네 개가 오그라들며 붙어버렸다.
손가락 성장속도에 맞춰 손가락 사이를 갈라 내고
신경을 살려가며 뱃살엉덩이살 떼서 손가락에 이식하고
손가락 다섯 개가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세월 수술을 열 번도 더 한 걸로 알고 있다.
나는 네 아이를 키우면서, 잘 놀라거나 호들갑을 떠는 일이 별로 없었다.
아이들이 넘어져도 천천히 달려가서 일으켜 세우고,
다쳐서 피가 나도 안 다친 아이 보듯이 굼뜨게 반응한다.
근데,
남편이 커피잔을 아이들 근처에 두거나
국 끓이고 기름에 음식 튀기는데, 아기가 부엌에 들어오도록 방치되었을 땐
생 난리를 친다. 외삼촌 얘기 꺼낸다.
온 가족에게 엄청 화내고 잔소리를 퍼 붓는다. 아기도 공포에 질리도록.
우리 남편도, 그때만은 오버하는 내 목소리 순순히 참아준다.
화상은 내게 죽음과도 같은 이미지다.
생명이 걸린 문제라서 나이스하게 타이르게 되지 않는다. 내 자식들 사랑해서 그렇다.
모세도,
더 소리 지르고 더 화내고 더 조상죄 들추어내고 더 죽는다산다 협박 하고 그래도
하나님은,
이런 모세의 목소리가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으실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된 복을 놓치지 않게 하려고
마지막 혼신을 다하는 모세의 피 토하는 설득에 감동하셨을 것 같다.
모세,
므리바 물 사건 이후, 하나님 자녀 사랑하는 이 마음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얼마나 별러 왔을까...?
창으로 고스비와 시므리를 찔러 죽인 비느하스가, 하나님께로 부터
“나의 질투함으로 질투해 줘서 고맙다” 고 칭찬 듣는 현장을 목격하며
어얼마나 부러웠을까...?
이제 하나님은,
모세의 진두지휘 아래 미디안 족속도 진멸됐겠다,
이스라엘자손들 잘 설득해서 광야에 안 묻히게 마음도 돌려 놓았으니...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냈다고, 믿음 있다고...흡족해 하셨을 것 같다.
하나님 쪽에선, 모세에게
죽기 전에 미디안족속을 멸해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하셨는데
모세 쪽에선, 하나님께
이스라엘자손이 하나님과 가나안까지 동행하도록 묶어 주는, 마지막 사명을 다 한 거네!
2008년이 가기 전,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내게 부탁하고 싶으신 건 없으실까?
내가 모세가 되어,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도록 묶어주어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오늘 묵상은, 여러 가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그 중 며칠 전 일을 말씀으로 정돈해 본다.
지난 목요일,
드디어, 우리 테이블 자매님들에게 <묵상노트> 를 써보는 것을 제안하고 난 뒤
내 마음이 틈틈이 불편했던 것을, 오늘 묵상 중에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목요일날 새로 온 자매들에게 <묵상노트 쓰기>를 제안하기까지 몇주를 망설였었고
권유한 후에도 새자매들이 부담 갖고 떠나지나 않았을까...내심 두려웠기 때문이다.
자매들이 한 번 도전해 보겠다고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었는데도
내 마음이 두려웠던 근본원인을 알게 되었다.
자매들을 끌고 가는 주체가 <나>라는 착각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잊게 했던 것이다.
나는 모세처럼, 자매들에게 말씀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좋은 tool을 전달해 주었으니
앞으로 친히 가나안으로 동행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로 받는다.
자매들이 묵상노트를 기록하면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경험을 꼭 했음 좋겠다.
기록된 말씀과 기록한 말씀이, 자매들을 큐티가나안으로 데려갈 것을 믿음으로 중보하겠다.
이것이, 내가 오늘 말씀에서 받은 <묶어주는 사명> 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다. 나는 주 안에서 형통한 자다. 형통한 자다. 형통한 자다.
어어~ 모세, 왜 이러시지~?
또 화내신다. 또 험한 말 하신다.
하나님 들으시면 어쩌려고...?
너희 열조를 계대한 죄인의 종류라니...?
그럼, 이들도 폐역하단 말 아닌가...! (민수기 20:9-11)
물 먹을 가치도 없는 족속이고
가나안에 들어갈 가치도 없는 것들이라는 거친 말을 다시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 그렇지.
그때(므리바 물) 그 사건 터진 날에 내질렀던 그 화, 아닌 거다. 다른 거다.
완전 신경질 난 모세.
가나안 아니면 죽음이기 때문이다.
두 살 터울 내 남동생이, 기어 다닐 때였다.
한겨울, 엄마가 연탄불 갈러 밖에 나간 사이, 부뚜막으로 내려가 아궁이에 거의 빠졌었다.
이마에 흉터가 생겼고, 손가락 네 개가 오그라들며 붙어버렸다.
손가락 성장속도에 맞춰 손가락 사이를 갈라 내고
신경을 살려가며 뱃살엉덩이살 떼서 손가락에 이식하고
손가락 다섯 개가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세월 수술을 열 번도 더 한 걸로 알고 있다.
나는 네 아이를 키우면서, 잘 놀라거나 호들갑을 떠는 일이 별로 없었다.
아이들이 넘어져도 천천히 달려가서 일으켜 세우고,
다쳐서 피가 나도 안 다친 아이 보듯이 굼뜨게 반응한다.
근데,
남편이 커피잔을 아이들 근처에 두거나
국 끓이고 기름에 음식 튀기는데, 아기가 부엌에 들어오도록 방치되었을 땐
생 난리를 친다. 외삼촌 얘기 꺼낸다.
온 가족에게 엄청 화내고 잔소리를 퍼 붓는다. 아기도 공포에 질리도록.
우리 남편도, 그때만은 오버하는 내 목소리 순순히 참아준다.
화상은 내게 죽음과도 같은 이미지다.
생명이 걸린 문제라서 나이스하게 타이르게 되지 않는다. 내 자식들 사랑해서 그렇다.
모세도,
더 소리 지르고 더 화내고 더 조상죄 들추어내고 더 죽는다산다 협박 하고 그래도
하나님은,
이런 모세의 목소리가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으실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된 복을 놓치지 않게 하려고
마지막 혼신을 다하는 모세의 피 토하는 설득에 감동하셨을 것 같다.
모세,
므리바 물 사건 이후, 하나님 자녀 사랑하는 이 마음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얼마나 별러 왔을까...?
창으로 고스비와 시므리를 찔러 죽인 비느하스가, 하나님께로 부터
“나의 질투함으로 질투해 줘서 고맙다” 고 칭찬 듣는 현장을 목격하며
어얼마나 부러웠을까...?
이제 하나님은,
모세의 진두지휘 아래 미디안 족속도 진멸됐겠다,
이스라엘자손들 잘 설득해서 광야에 안 묻히게 마음도 돌려 놓았으니...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냈다고, 믿음 있다고...흡족해 하셨을 것 같다.
하나님 쪽에선, 모세에게
죽기 전에 미디안족속을 멸해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하셨는데
모세 쪽에선, 하나님께
이스라엘자손이 하나님과 가나안까지 동행하도록 묶어 주는, 마지막 사명을 다 한 거네!
2008년이 가기 전,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내게 부탁하고 싶으신 건 없으실까?
내가 모세가 되어,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도록 묶어주어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오늘 묵상은, 여러 가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그 중 며칠 전 일을 말씀으로 정돈해 본다.
지난 목요일,
드디어, 우리 테이블 자매님들에게 <묵상노트> 를 써보는 것을 제안하고 난 뒤
내 마음이 틈틈이 불편했던 것을, 오늘 묵상 중에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목요일날 새로 온 자매들에게 <묵상노트 쓰기>를 제안하기까지 몇주를 망설였었고
권유한 후에도 새자매들이 부담 갖고 떠나지나 않았을까...내심 두려웠기 때문이다.
자매들이 한 번 도전해 보겠다고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었는데도
내 마음이 두려웠던 근본원인을 알게 되었다.
자매들을 끌고 가는 주체가 <나>라는 착각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잊게 했던 것이다.
나는 모세처럼, 자매들에게 말씀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좋은 tool을 전달해 주었으니
앞으로 친히 가나안으로 동행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로 받는다.
자매들이 묵상노트를 기록하면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경험을 꼭 했음 좋겠다.
기록된 말씀과 기록한 말씀이, 자매들을 큐티가나안으로 데려갈 것을 믿음으로 중보하겠다.
이것이, 내가 오늘 말씀에서 받은 <묶어주는 사명> 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다. 나는 주 안에서 형통한 자다. 형통한 자다. 형통한 자다.
댓글목록

조주희님의 댓글
조주희 작성일
소범이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이다.
소범이는 주 안에서 형통한 딸이다. 형통한 딸이다. 형통한 딸이다. 아멘 !!!
사랑합니다...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