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영원한 날까지...
등록일 2008-08-01
작성자 박소범
본문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억지로 풀다가...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15-16
베드로는,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경고한 후,
바울도 동일한 글을 쓴 적이 있다고 기록하면서
하나님의 예언을 확증할 뿐 아니라,
바울의 예언에도 힘을 실어 주고 있다.
그러면서, 이 땅의 삶을 전부인 것처럼 한계를 긋고 사는 사람들을 향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중요성에 대해 깨우쳐 주고 있다.
이것이, 베드로의 마지막 인사말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
그 마지막 인사에, 바울을 향한 사랑이 묻어난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종말의 메시지를 믿고 또 잘 준비하며
영원한 나라를 향해 앞만 보며 가고 있는 <바울> 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알 자라난 모범 으로 소개하고 있는 듯한
베드로의 베려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베드로를 반석이라 칭해 주신 이래, 베드로에게 무엇을 기대해 오셨을까?
예수님이,
예루살렘과 이방을 이을 자로, 베드로를 세워주시고 떠나실 때
베드로가,
이방사도로서 부름받은 바울을 알아보고 또 서로서로 합심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굳건히 세워 주는 자 되기를, 바라지 않으셨을까?
베드로에게 있어 바울이라는 상대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당연한 대상이었을까?
유대인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것에 동조까지 한 사울이, 회심했다고 해서
형제로 받아들이는 일이
속으로, 전혀 갈등이 없었을까?
더 나아가,
먼저 사도된 자의 입장에서, 나중 사도된 바울을
더 큰 자로 인정하며 진심으로 축복하는 일이, 베드로에게 쉬운 일이었을까?
베드로는 분명, 15절 16절에서,
바울의 편지를 들어,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내가 베드로였다면,
삼층천에 다녀왔느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느니...하면서,
주님 사랑하는 티 엄-청 내고 또 예수님 흉내 내며
현란한 문체와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며 쓴, 바울의 편지를 향해
“예수님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아서, 저렇게 아는 척을 하는 거야?”
하고, 수석사도 곤조를 부렸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당시 야기되었던 바울에 대한 분쟁과 논란을,
의리의 사도 베드로는 어떻게 종식시키고 있나?
바울의 편지를, 이해하기 어려워 하고 괜한 트집 잡는 무리들을 향해
무식한 자이며 굳세지 못한 자, 심지어 무법한 자라서 그렇다고, 매도해 버린다.
사랑하는 형제 바울의 글은
하나님을 아는 자라야, 지혜 있는 자라야, 이해할 수 있는거야!
도저히 이해가 안 되거든 억지로 풀고 그러다 망하지 말고,
제발,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으로, 더욱 힘써, 들어가라!
아니면, 나처럼 어려운 부분이 <더러> 있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그래라!
이러면서,
바울편을 확실히 들어주고 있다.
복음전파에 목숨을 걸고 살았건만,
유대인들이 사도직을 인정해 주지 않았던 일로
얼마나 심한 마음고생과 눈물을 흘리며 살았던, 바울이었던가!
바울이, 베드로의 이렇게 챙겨주고 있는 마음을 어디선가 전해 들었다면,
정말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
그 베드로를 주목하여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사도직을
바른 위치에서,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 내고 있다.
예루살렘교회와 이방교회를 하나로 이어주는, 모퉁이 돌이 되므로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던 주님의 약속을 멋지게 성취해 드리고,
후회없이 영원한 나라에 갈 준비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있다.
오늘,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는 심정으로
베드로의 마음 속 깊이에 담겨있는, 그리스도를 만나본다.
무책임하고 허술한 내 자신 자책하며
공동체에 어려움을 끼친 것에 대한 죄송한 맘을 버리지 못했던 일이,
오늘 묵상을 하던 중,
씻기어 나가고...또 감사의 마음으로 변하고 있다.
5개월간 인도자를 맡았던 교회 <주일 큐티 나눔방>을 떠난 지, 벌써 5주가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교회 주보에는 떠억하니 나눔방 인도자로서
아직도 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
주일날의 벅찬 내 사정을 봐 주십사...매몰차게 떠나 온 자리인데,
아직도 내 이름을 지우지 않은 것에 대해
부담스럽고도 마음이 불편했다.
이름 언제 지우나...하며 미안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묵상 중,
베드로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때, 큐티국장님의 따뜻한 음성이 생각났다.
“큐티하는 집사가 이렇게 6개월도 안 되어
주보에 이름 올라갔다 내려졌다 하면
교역자들이나 성도들이, 집사님에 대한 괜한 오해를 할 수 도 있어요.
집사님한테 피해가 가거나, 어려움이 생기면 안 되는데...”
하시면서, 끝까지 섭섭한 마음 감추시고
내 앞가림만 걱정 해 주시던 국장님...
게다가, 내게 주셨던 인도자의 바톤을, 도로 받으신 현재의 인도자 사모님 또한
바울을 보호하고 두둔해 주었던, 정통사도 베드로의 모습과 별반 다를바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이보다 나를,
더 덮어주시고! 더 받아주시고! 더 두둔해주시고! 더 보호해 주시기를!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계속 그렇게 해 주실 분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알게 되니, 저 깊-은 곳에서 은혜와 평강이 올라온다.
이제도 영원한 날까지도 영광이 주님께 있기를 빕니다. 아멘!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억지로 풀다가...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15-16
베드로는,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경고한 후,
바울도 동일한 글을 쓴 적이 있다고 기록하면서
하나님의 예언을 확증할 뿐 아니라,
바울의 예언에도 힘을 실어 주고 있다.
그러면서, 이 땅의 삶을 전부인 것처럼 한계를 긋고 사는 사람들을 향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중요성에 대해 깨우쳐 주고 있다.
이것이, 베드로의 마지막 인사말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
그 마지막 인사에, 바울을 향한 사랑이 묻어난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종말의 메시지를 믿고 또 잘 준비하며
영원한 나라를 향해 앞만 보며 가고 있는 <바울> 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알 자라난 모범 으로 소개하고 있는 듯한
베드로의 베려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베드로를 반석이라 칭해 주신 이래, 베드로에게 무엇을 기대해 오셨을까?
예수님이,
예루살렘과 이방을 이을 자로, 베드로를 세워주시고 떠나실 때
베드로가,
이방사도로서 부름받은 바울을 알아보고 또 서로서로 합심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굳건히 세워 주는 자 되기를, 바라지 않으셨을까?
베드로에게 있어 바울이라는 상대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당연한 대상이었을까?
유대인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것에 동조까지 한 사울이, 회심했다고 해서
형제로 받아들이는 일이
속으로, 전혀 갈등이 없었을까?
더 나아가,
먼저 사도된 자의 입장에서, 나중 사도된 바울을
더 큰 자로 인정하며 진심으로 축복하는 일이, 베드로에게 쉬운 일이었을까?
베드로는 분명, 15절 16절에서,
바울의 편지를 들어,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내가 베드로였다면,
삼층천에 다녀왔느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느니...하면서,
주님 사랑하는 티 엄-청 내고 또 예수님 흉내 내며
현란한 문체와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며 쓴, 바울의 편지를 향해
“예수님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아서, 저렇게 아는 척을 하는 거야?”
하고, 수석사도 곤조를 부렸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당시 야기되었던 바울에 대한 분쟁과 논란을,
의리의 사도 베드로는 어떻게 종식시키고 있나?
바울의 편지를, 이해하기 어려워 하고 괜한 트집 잡는 무리들을 향해
무식한 자이며 굳세지 못한 자, 심지어 무법한 자라서 그렇다고, 매도해 버린다.
사랑하는 형제 바울의 글은
하나님을 아는 자라야, 지혜 있는 자라야, 이해할 수 있는거야!
도저히 이해가 안 되거든 억지로 풀고 그러다 망하지 말고,
제발,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으로, 더욱 힘써, 들어가라!
아니면, 나처럼 어려운 부분이 <더러> 있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그래라!
이러면서,
바울편을 확실히 들어주고 있다.
복음전파에 목숨을 걸고 살았건만,
유대인들이 사도직을 인정해 주지 않았던 일로
얼마나 심한 마음고생과 눈물을 흘리며 살았던, 바울이었던가!
바울이, 베드로의 이렇게 챙겨주고 있는 마음을 어디선가 전해 들었다면,
정말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
그 베드로를 주목하여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사도직을
바른 위치에서, 반드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 내고 있다.
예루살렘교회와 이방교회를 하나로 이어주는, 모퉁이 돌이 되므로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던 주님의 약속을 멋지게 성취해 드리고,
후회없이 영원한 나라에 갈 준비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있다.
오늘,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는 심정으로
베드로의 마음 속 깊이에 담겨있는, 그리스도를 만나본다.
무책임하고 허술한 내 자신 자책하며
공동체에 어려움을 끼친 것에 대한 죄송한 맘을 버리지 못했던 일이,
오늘 묵상을 하던 중,
씻기어 나가고...또 감사의 마음으로 변하고 있다.
5개월간 인도자를 맡았던 교회 <주일 큐티 나눔방>을 떠난 지, 벌써 5주가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교회 주보에는 떠억하니 나눔방 인도자로서
아직도 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
주일날의 벅찬 내 사정을 봐 주십사...매몰차게 떠나 온 자리인데,
아직도 내 이름을 지우지 않은 것에 대해
부담스럽고도 마음이 불편했다.
이름 언제 지우나...하며 미안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묵상 중,
베드로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때, 큐티국장님의 따뜻한 음성이 생각났다.
“큐티하는 집사가 이렇게 6개월도 안 되어
주보에 이름 올라갔다 내려졌다 하면
교역자들이나 성도들이, 집사님에 대한 괜한 오해를 할 수 도 있어요.
집사님한테 피해가 가거나, 어려움이 생기면 안 되는데...”
하시면서, 끝까지 섭섭한 마음 감추시고
내 앞가림만 걱정 해 주시던 국장님...
게다가, 내게 주셨던 인도자의 바톤을, 도로 받으신 현재의 인도자 사모님 또한
바울을 보호하고 두둔해 주었던, 정통사도 베드로의 모습과 별반 다를바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이보다 나를,
더 덮어주시고! 더 받아주시고! 더 두둔해주시고! 더 보호해 주시기를!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계속 그렇게 해 주실 분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알게 되니, 저 깊-은 곳에서 은혜와 평강이 올라온다.
이제도 영원한 날까지도 영광이 주님께 있기를 빕니다. 아멘!
댓글목록

이은주님의 댓글
이은주 작성일
안녕 하세요!
글솜씨가 없어서 항시 읽고만 간답니다
오늘이 7월31일 인대 등록한 날짜가 8월1일로 나왔내요 어떡게 된건지요? 글은 하루 일칙 올릴수가 있나요?

김명희님의 댓글
김명희 작성일
자매님의 말씀 묵상을 읽으니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바울과 베드로!
신약시대의 두 기둥과 같은 인물들이
이렇게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며
그렇지 못한 이 시대의 우리의 모습을 반성도 하며
참 그리스도의 사랑을 오늘은 꼭 실천하며 살기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