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와 닿지 않을때에라도...
등록일 2008-07-24
작성자 김(심)수희
본문
벧전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어젯밤에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 잤건만 아침에 눈을 뜨니
많은 일들이 다시 나의 생각들을 또 어지럽힌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좌우를 보아도 사방에 우겨쌈을 당한듯
숨통이 막히는듯한 상황에, 혼란스런 일이 겹치니 마음에 풍랑이 인다.
주님, 어제 실천하고자 한것이 의미없이 허공에 날린 선포로 끝나지 않게 하소서.
어젯밤 늦게까지 비몽사몽간에 오늘의 말씀을 들여다 보았을때엔
별로 마음에 와 닿지도 않고 깨달아 지질 않아서 약식 질문지를 이멜한 후에
말씀을 좀 뒤적거리다가 2시 반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마음으로 “오늘은 무슨 깨달음이 있을라나?” 하고 들여다 보았다.
그들을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하게 생각지 말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그들이 복있는 자라고 한다.
주님, 저는 그 정도는 아닌데요.
내가 억눌리고 답답해 하는 부분들은 그들이 받는 욕과 고난, 뭐 그런것과 비교하기에는
부끄러운 차원의 것들이었기에 고난이니, 욕이니, 불 시험이니, 이런 말씀들이 웬지
나에게는 과분하게 들린다.
그래도 오늘 말씀중에서 뭔가 건져야할것같은 강박관념에 눈에 불을 켰다.
주님, 죄송해요.
제가 발견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도록 해야하는데…
그래요, 주님. 저 지금 제가 뭔가를 얻어보려고 큐티를 거꾸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라도 주님의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며 다시 주님께 도움을 청하니 안보이던 말씀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기위하여 고난을 감수하면
영광의 영, 하나님의 영이 나의 위에 함께 해 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 (14절)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위로와 상급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 내게 머물러 주시겠단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것은 두려워하는 마음 (timid, 쪼그라드는 소심한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
이번 여름에 자매들에게 나눠준 첫 암송 구절을 읊으니 자꾸 용기가 생긴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라는 말씀 또한
의미를 마음에 새겨보며 나직히 읊어본다.
욕을 받아도,
고난을 받아도,
되갚거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시는 예수님을 조용히 묵상해 보니
예수님의 심정이 나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으로 적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선을 행하는 가운데
자신의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하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디모데에게 쓴 바울의 편지, 흩어져 있는자들에게 쓴 베드로의 편지가 실에 구슬꿰듯
내게 한줄기의 굵은 맥락으로 연결되어 클로즈 업 된다.
주님, 그렇군요.
내가 그냥 막연히 참는게 아니군요.
공의로 심판하시는 조물주께 부탁할 수 있기에,
내 위에 rest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계시기에,
당신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에 즐겁게 참예할 수 있는거군요.
오늘도 제 손이 민망해 할까봐, 제 마음과 영혼이 허전해 할까봐 이렇게
듬쁙 쥐어 주시고 채워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마음에 와닿지 않아도 이렇게 인내하며 말씀 앞에 머무르기만하면
나의 든든한 빽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후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오늘의 적용, 실천>
암말 말고 clear minded 으로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조물주께 부탁하자.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어젯밤에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 잤건만 아침에 눈을 뜨니
많은 일들이 다시 나의 생각들을 또 어지럽힌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좌우를 보아도 사방에 우겨쌈을 당한듯
숨통이 막히는듯한 상황에, 혼란스런 일이 겹치니 마음에 풍랑이 인다.
주님, 어제 실천하고자 한것이 의미없이 허공에 날린 선포로 끝나지 않게 하소서.
어젯밤 늦게까지 비몽사몽간에 오늘의 말씀을 들여다 보았을때엔
별로 마음에 와 닿지도 않고 깨달아 지질 않아서 약식 질문지를 이멜한 후에
말씀을 좀 뒤적거리다가 2시 반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마음으로 “오늘은 무슨 깨달음이 있을라나?” 하고 들여다 보았다.
그들을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하게 생각지 말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그들이 복있는 자라고 한다.
주님, 저는 그 정도는 아닌데요.
내가 억눌리고 답답해 하는 부분들은 그들이 받는 욕과 고난, 뭐 그런것과 비교하기에는
부끄러운 차원의 것들이었기에 고난이니, 욕이니, 불 시험이니, 이런 말씀들이 웬지
나에게는 과분하게 들린다.
그래도 오늘 말씀중에서 뭔가 건져야할것같은 강박관념에 눈에 불을 켰다.
주님, 죄송해요.
제가 발견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이 제게 임하도록 해야하는데…
그래요, 주님. 저 지금 제가 뭔가를 얻어보려고 큐티를 거꾸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라도 주님의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며 다시 주님께 도움을 청하니 안보이던 말씀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기위하여 고난을 감수하면
영광의 영, 하나님의 영이 나의 위에 함께 해 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 (14절)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위로와 상급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 내게 머물러 주시겠단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것은 두려워하는 마음 (timid, 쪼그라드는 소심한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 1:7> ”
이번 여름에 자매들에게 나눠준 첫 암송 구절을 읊으니 자꾸 용기가 생긴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라는 말씀 또한
의미를 마음에 새겨보며 나직히 읊어본다.
욕을 받아도,
고난을 받아도,
되갚거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시는 예수님을 조용히 묵상해 보니
예수님의 심정이 나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으로 적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선을 행하는 가운데
자신의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하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디모데에게 쓴 바울의 편지, 흩어져 있는자들에게 쓴 베드로의 편지가 실에 구슬꿰듯
내게 한줄기의 굵은 맥락으로 연결되어 클로즈 업 된다.
주님, 그렇군요.
내가 그냥 막연히 참는게 아니군요.
공의로 심판하시는 조물주께 부탁할 수 있기에,
내 위에 rest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계시기에,
당신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에 즐겁게 참예할 수 있는거군요.
오늘도 제 손이 민망해 할까봐, 제 마음과 영혼이 허전해 할까봐 이렇게
듬쁙 쥐어 주시고 채워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마음에 와닿지 않아도 이렇게 인내하며 말씀 앞에 머무르기만하면
나의 든든한 빽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후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오늘의 적용, 실천>
암말 말고 clear minded 으로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조물주께 부탁하자.
댓글목록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수희 자매님의 마음도 <받으시는 하나님>.
미쁘신 조물주께, 우리의 마음을 부탁합시다.

조주희님의 댓글
조주희 작성일
수희 자매님 마음, 소범 자매님 마음, 거기에 이 조 주희 마음까지
모아 모아 모아 미쁘신 하나님께 부탁드립니다.
지도 우겨쌈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라
입 닫고 정신 차리고 기도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주희 마중물이 힘 빠지지않게 중보하겠읍니다.

meire님의 댓글
meire 작성일
누군가 한말이 생각납니다. 그림은 보는것이 아니라 읽는것이고, 찬양은 듣는것이 아니라 보는것이라고 했던 말....
자매님의 글은 분명 읽고 있지만 자매님을 보고 있고 , 자매님의 목소리를 듣는듯 하군요.....
늘 승리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