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처럼 > QT 나눔


  • QT Sharing | QT 나눔
  • 매일매일 QT하는 삶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QT 나눔

제  목 [] 사라처럼

등록일 2008-07-21
작성자 박소범

본문

베드로전서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사라의 <선>이라면, 오늘 본문의 주제가 되고 있는 <아내된 자의 순복> 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선의 종류 중에서, 왜?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는 것>을,
사라의 후손이 되는 결정적인 요소처럼 명시하고 있는 걸까?

2005년 2월, 남편이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았다.
새직장을 구했으나, 한 달간 실직상태로 있느라
그새 밀린 세금들과 빌린 렌트비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 때가...내가 셋째를 낳은 지 백일이 채 못 되었던 시점이었다.
구역장이면서도 성경한자 읽지 않고, 주말을 TV 앞에 누워 있다가
주일엔 항상 지각을 하던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내게는 더 스트레스였다.
그 날의 큐티본문은, 창세기 20장이었다.

창세기 20장 이야기.
사라가 아브라함을 따라서 남방으로 내려간다.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속여서 몇 번이나 사라를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아브라함.
사라를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것 같은 아브라함이,
마치 내게 있어 내 남편처럼 보였다.
그때의 적용은, <남편을 믿고 따라가는 사라 흉내를 억지로라도 내기!> 였다.
.......,
2005년 그 해 9월, 남편이 스스로 큐티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2007년 8월,
내가 넷째를 출산하기 한달 전이었다.
만삭인 나에게, 또 남편의 실직이 닥쳤다.
아...이번엔 그냥 한국으로 갈까...?
남편을 떠나, 친정엄마한테 가서 밥이라도 잘 얻어먹고 살아야지...
하며 매시마다 밥걱정을 했다.

2007년 8월 3일 금요일,
그 당시 생명의 삶 본문은 시편이었지만,
내 큐티노트에는, <아브라함이 가는 길이, 사라가 가야 할 길>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새벽, 잠자는 나를 깨우셔서 비몽사몽간에 감동을 주셨다.
“2005년 2월에 큐티했던, 창세기 20장을 다시 큐티하라” 고.
그리고, 그 날의 본문 말씀이다.

시편 32: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내가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시편 32:10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갈 길>과 <신뢰> 라는 두 단어를, 가슴에 품었다.
창세기 20장의 사라의 길과 소름끼치도록 연결이 되어 다가왔다.
2005년에 묵상할 때 보다는, 사라의 인생이 덜 불쌍하게 보였다.
바꿔 말하면, 아브라함의 처신이 덜 비겁해 보였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이 그런 그들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셨다는 데,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남편이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끌고 다니것처럼 보여도, 묵묵히 따라가기.>
이것이 그 날, 나의 적용과 결단이었다.

그러던, 2008년 올해, 지난 4월, 남편은 또 실직되었다.
그 당시 데살로니가 전서가 시작되었는데,
자연스럽게 창세기와 시편 말씀이 떠올랐다.
계속되는 이사야서 말씀은 내 마음을 녹이고 녹였다.
나보다 더 고통스러울 남편의 심정을,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을 부어주셨다.
목자된 남편의 가는 길이 푸른초장으로 가는 길이겠지...하는, 신뢰도 커졌다.
가난은 그다지 두렵지 않은데,
남편을 업신여기는 내 속사람을 주목하여 보시는
하나님의 눈빛이 정말 <두려웠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6절)  

베드로전서 3장 1절에서 5절은
마치, 6절의 사라가 어떻게 열국의 어미가 되어 가는지에 대해,
아내된 자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일방적으로 택하셨지만,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변모되어 가는 믿음의 시련들 속에는,
사라의 아내된 역할이 정말 귀했다는 메시지를 읽게 된다.
특히 사라가,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사라는, 환경은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두려워했던 것 같다.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2절)

하나님은 사라에게서, 어떤 <두려움>과 <정결한 행위>를 보셨을까?
아내 하나 못 지켜 주는 남편을 열국의 아비라고 인정하기가,
사라에게 쉬웠을까?
그런 남편의 아내로서 자식까지 없는 스스로를, 열국의 어미라고 받아들이기가
사라에게 쉬웠겠냐 말이다.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우습게 여기지 않으려 애썼을,
사라의 두려움의 행위를, 하나님은 정결하다 보셨지 않았을까?
"나를 딴 남자에게 뺏기게 하실, 그런 하나님이 아닐꺼야." 하고 선포하고 선포했을
사라의 신뢰의 행위를, 하나님은 분명히 정결하게 보셨을 것이다.

묵묵히 몸으로 따라갈 뿐만 아니라,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으로 속사람까지 다스려 나가는 사라를,
하나님은 분명히 열국의 어미된 자질이 있다 보셨을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백성된 자의 <선>이다.
주라 칭하고 싶지 않은 남편을 주와 같이 여기는 것이, 아내된 자의 <선>이다.
주께서 어떤 환경을 허락하시든지,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고 따라가는 순종과 신뢰가,
목자를 향한 양된 자의 <선>이다.

내 <선>은 어떤 모양인가?

쪼달리는 형편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번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 남편의 예전 직종 관계자들로부터 잡오퍼가 들어왔다.
이번 직장에서 일한 이래, 세 번째이다.
지난 주에는, 현재 받는 수당의 2.5배를 보장해 준다는 소리를 들었다.
귀가 솔깃해서, 남편에게 그랬다.
옮기자고.
진심이었다.
남편은 멀리 보고 또 앞만 보고 가겠다고 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면서...

옛날에는 돈 많이 주는 직장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직장으로 여기고 옮기는 남편이 속물 같아서 싫었는데,
이제는  돈 적게 주는 직장에 안주해서
통이 작아 보이는 남편이, 겁쟁이 같아서 못마땅하다.

오늘, 사라의 얘기를 통해서
남편의 가는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며,
불안해 보이는 남편의 의견을 주라 칭하여 순복하는 길이,
주께서 나와 함께 가 주시는 길임을 믿어보라고
재도전 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그가 나를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시편 23편>

<적용>
남편을 신뢰하는 것이 사라만큼은 잘 되진 않지만,
우선 한가지,
이제부터 좋은 직장에서 높은 수당 제의가 들어와도,
옮기라고 부추기는 행위를 멈추는 것부터, 실천해 보겠다.

댓글목록

profile_image

김(심)수희님의 댓글

김(심)수희 작성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오늘 낙심되고 눌린 저의 영혼에 산 소망을 주시네요.

늘 은혜로운 소범 자매님의 나눔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Total 4,596건 438 페이지
QT 나눔 목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226
김(심)수희 2008.07.23 18962
김(심)수희 2008.07.23 18962
225
조주희 2008.07.23 18817
조주희 2008.07.23 18817
224
박소범 2008.07.23 19730
박소범 2008.07.23 19730
223
복을 빌라. 댓글7
조주희 2008.07.22 19136
조주희 2008.07.22 19136
222
김(심)수희 2008.07.22 19158
김(심)수희 2008.07.22 19158
221
박소범 2008.07.22 18583
박소범 2008.07.22 18583
열람중
사라처럼 댓글1
박소범 2008.07.21 19338
박소범 2008.07.21 19338
219
김(심)수희 2008.07.20 20496
김(심)수희 2008.07.20 20496
218
예수님... 댓글1
박소범 2008.07.20 20503
박소범 2008.07.20 20503
217
김(심)수희 2008.07.19 19087
김(심)수희 2008.07.19 19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