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나그네 2탄
등록일 2008-07-16
작성자 김명희
본문
나는 말씀 묵상을 하루하루만 한다.
좀 더 부지런하고, 좀 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다음날 것도 미리미리 할 텐데,
그리고 말씀 전체를 통독하라는 권사님 말씀도
순종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 그날 묵상에 버거워 겨우겨우 한다.
(들통 났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그런데 어제에 이어 베드로 아저씨는 오늘도 나에게 나그네로 살라 하신다.
그리고는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하신다.
나그네가 뭐가 두려울 것이 있으랴?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즐거워도, 나는 나그네인데
이곳에 아주 머물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떠날 나그네인데
어째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것일까?
이유인 즉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말씀이렸다.
이 세상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나님을
막 대하지 말라는 것인데 정말로 나는 보이지 않는 거룩하신 아버지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지내고 있는지,
자마와 뉴욕을 다녀온 후 요즘 새벽기도를 못나가고 있다.
꼭 새벽기도를 나가야만 한다는 건 아닌데,
왠지 새벽기도를 나가지 않으니 기도가 부족하다.
말씀을 가슴에 담지만 무언가 갈급하다.
성령충만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나그네로 산다면
기도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새벽기도를 나가지 못한다면 따로 시간을 정해 기도해야 하리라.
지금 내 모습은 말씀과의 만남, 기도와의 만남을 원하시는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내일부터 새벽기도를 나가야지'라고 적용을 한다면
형식적이고 보이는 적용거리에 불과하겠지만
난 형식과 보이는 적용거리를 넘어서
거룩하신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위해
내일부터는 새벽기도를 나가야겠다.
18, 19절 말씀을 읽다보니 예전 일이 생각났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 이니라'
중학교 1학년인가 2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이다.
내가 살던 섬에는 중학교가 없어서 나는 인천으로 나와 중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엄마, 아버지가 사시는 섬으로 들어가 생활을 하다
개학이 다가올 즈음 다시 인천으로 나왔다.
겨울방학, 섬의 작은 교회에 부흥회가 열렸다.
강사목사님이 누구신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키가 자그마하신 분 인것만 기억난다.
그 목사님은 구원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마 지금 생각해 보니 오늘 말씀 중 18절-19절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시지
않았나 싶다.
그때 부르던 찬송가
몇 장인지는 잘 모르나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씻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받았네.'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 것 아니요
거룩한 하나님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씻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받았네.'
목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부르고
'찬송합시다, 할렐루야 찬송합시다, 찬송합시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시다.'
속죄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렇게 소리 높여 속죄에 대한 찬송을 부르고
목사님은 기도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나는 나의 죄들이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시골 구멍가게에서, 초등학교 때 학교 가는 등교길에서
친구들과 주인아저씨가 나오기 전
껌을 훔쳐 주머니에 넣은 일, 정말 숨기고만 싶었던 나의 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치면서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목사님의 안수가 시작되고 목사님의 안수가 내 머리에 닿을 때
나는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다.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것으로 받은 속죄가 아니고 흠 없고 점 없는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순간이었다.
그 날이 저녁 부흥회였다.
성령을 체험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교회 밖으로 나왔는데
세상이 다 새로워보였다.
매섭게 추운 바람과 이미 얼어붙어버린 빙판이 오히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바람은 시원하게 느껴지고, 사방을 둘러봐도 변한 것은 하나 없는데
이 세상 모두가 나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에게
"엄마, 내일 새벽기도에도 깨워주세요"라고 부탁을 하고 붕붕 나는 것 같은
기분으로 그날 잠을 잤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의 일생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꼽으라면 1위가 될 성령체험의 밤.
그때는 그 말씀이 어느 곳에 있는지도, 누가 썼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오늘 묵상을 하다보니,
멋진 베드로 아저씨가 쓰신 말씀이네.
고마워라.
성령 충만을 다시 회복하리라.
좀 더 부지런하고, 좀 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다음날 것도 미리미리 할 텐데,
그리고 말씀 전체를 통독하라는 권사님 말씀도
순종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 그날 묵상에 버거워 겨우겨우 한다.
(들통 났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그런데 어제에 이어 베드로 아저씨는 오늘도 나에게 나그네로 살라 하신다.
그리고는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하신다.
나그네가 뭐가 두려울 것이 있으랴?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즐거워도, 나는 나그네인데
이곳에 아주 머물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떠날 나그네인데
어째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것일까?
이유인 즉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말씀이렸다.
이 세상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나님을
막 대하지 말라는 것인데 정말로 나는 보이지 않는 거룩하신 아버지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지내고 있는지,
자마와 뉴욕을 다녀온 후 요즘 새벽기도를 못나가고 있다.
꼭 새벽기도를 나가야만 한다는 건 아닌데,
왠지 새벽기도를 나가지 않으니 기도가 부족하다.
말씀을 가슴에 담지만 무언가 갈급하다.
성령충만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나그네로 산다면
기도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새벽기도를 나가지 못한다면 따로 시간을 정해 기도해야 하리라.
지금 내 모습은 말씀과의 만남, 기도와의 만남을 원하시는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내일부터 새벽기도를 나가야지'라고 적용을 한다면
형식적이고 보이는 적용거리에 불과하겠지만
난 형식과 보이는 적용거리를 넘어서
거룩하신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위해
내일부터는 새벽기도를 나가야겠다.
18, 19절 말씀을 읽다보니 예전 일이 생각났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 이니라'
중학교 1학년인가 2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이다.
내가 살던 섬에는 중학교가 없어서 나는 인천으로 나와 중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엄마, 아버지가 사시는 섬으로 들어가 생활을 하다
개학이 다가올 즈음 다시 인천으로 나왔다.
겨울방학, 섬의 작은 교회에 부흥회가 열렸다.
강사목사님이 누구신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키가 자그마하신 분 인것만 기억난다.
그 목사님은 구원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마 지금 생각해 보니 오늘 말씀 중 18절-19절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시지
않았나 싶다.
그때 부르던 찬송가
몇 장인지는 잘 모르나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씻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받았네.'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 것 아니요
거룩한 하나님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씻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받았네.'
목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부르고
'찬송합시다, 할렐루야 찬송합시다, 찬송합시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시다.'
속죄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렇게 소리 높여 속죄에 대한 찬송을 부르고
목사님은 기도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나는 나의 죄들이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시골 구멍가게에서, 초등학교 때 학교 가는 등교길에서
친구들과 주인아저씨가 나오기 전
껌을 훔쳐 주머니에 넣은 일, 정말 숨기고만 싶었던 나의 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치면서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목사님의 안수가 시작되고 목사님의 안수가 내 머리에 닿을 때
나는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다.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것으로 받은 속죄가 아니고 흠 없고 점 없는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순간이었다.
그 날이 저녁 부흥회였다.
성령을 체험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교회 밖으로 나왔는데
세상이 다 새로워보였다.
매섭게 추운 바람과 이미 얼어붙어버린 빙판이 오히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바람은 시원하게 느껴지고, 사방을 둘러봐도 변한 것은 하나 없는데
이 세상 모두가 나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에게
"엄마, 내일 새벽기도에도 깨워주세요"라고 부탁을 하고 붕붕 나는 것 같은
기분으로 그날 잠을 잤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의 일생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꼽으라면 1위가 될 성령체험의 밤.
그때는 그 말씀이 어느 곳에 있는지도, 누가 썼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오늘 묵상을 하다보니,
멋진 베드로 아저씨가 쓰신 말씀이네.
고마워라.
성령 충만을 다시 회복하리라.
댓글목록

김(심)수희님의 댓글
김(심)수희 작성일
거룩한 두려움을 소유한 나그녀(?)께, ^ ^
새벽 기도를 통해 어렸을적 받은
성령 체험의 그 이상을 회복하시는 나그녀가 되세여~ ㅎㅎㅎ

오경애님의 댓글
오경애 작성일
하늘에 소망을 둔 하나님의 자녀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의 삶을 나그네로 살아가야 하는데....
한번씩 뒤집어져서 나그네 생활인지....
내 것인양 주인 행세를 하는 생활인지...
구별못할 때가 있으니....ㅉ..ㅉ...
오늘도 말씀을 통해 다시한번 돌아봅니다...

박소범님의 댓글
박소범 작성일
어쩜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만...
저는 권사님들이 부르는 찬송가가 좋아요.
근데, 요즘은 교회에서 복음성가만 불러서...
오늘, 글을 읽으며 찬송까지 따라 불러보니, 참 좋다...이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