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나의 소유
등록일 2008-07-18
작성자 박소범
본문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2:8)
<저희>란, 7절의 <믿지 않는 너희>를 말한다.
이것은, <믿는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으로 들린다.
큐티한다 하면서도, 그 분의 말씀을 자주 거역하는 나를 향해
<말씀을 믿지 않는 너희>라고 부르시는 것 같다.
<믿지만,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를바 없는 나에게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반석에 걸려 넘어지는 원리는 적용된다.
그러고보니, 아모스서와 디모데서신서 묵상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지속적으로 실천하기 원하셨던 것이,
다름아닌, <나그네 됨>과 <소유된 백성임>을 인식하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이 땅에서 주인행세 하면, 걸려 넘어지는 <나그네>.
이 땅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면, 걸려 넘어지는 <소유된 백성>.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넘어지도록 여기저기 돌을 뿌려놓으신 것 같은 하나님께, 순간 거부감이 생긴다.
근데...아이러니하다...?...!
수없이 불순종했건만, 내 무릎은 왜 아직 멀쩡한거지...?
경험상,
매순간, 하나님은 내게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면>, 돌을 치워주시는 하나님이셨다.
능력이 안 돼서 도저히 지키지 못하겠다고 <고백하면>,
돌을 좀 멀리 굴려다 놓으시고, 다음에 지나가도록 기회를 주셨다.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만 보시면,
비켜 주시고, 기다려 주시는...모퉁이 돌의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문제는, <순종하는 자세> 자체가 싫을 때가 있고, 또 망각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거의 99%의 경우, 내게는 <교만>할 때,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지난 토요일, 나는 나의 <교만>에 짓눌려,
숨막히는 가슴으로 밤늦게 성전을 찾은 적이 있다.
우연히도, 사랑하는 동역자와 딱, 마주쳤는데...
핏기없는 얼굴로 기도실을 들어서는 집사님.
그날은 약속이나 한 듯이, 나와 동일한 문제를 안고 오셨다.
이미 싸인을 받았는데, 두 번이나 무시한 것 같다고 하셨다.
나도, 여러번 말씀을 받았건만, 절제하지 못 했다고 고백하였다.
우리의 교만의 정체를 파해치고 서로 중보를 부탁하였다.
평소, 겸손하고 지혜롭고 입도 조심하시고 따뜻하고...내가 참 존경하는 동역자인데,
하나님 앞에서 꼼짝 못하던 집사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워낙에 교만한 나도, 그 날만은, 넘어져서 타박상 입은 무릎을 꿇어야 함을, 알았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 돌아보니, 그날 우리는 뒤늦게라도 <순종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미 교만을 다 저질렀지만, 위험표시 <모퉁이 돌>을 알아 보았다.
그 돌은, 거쳐서 넘어지라고, 박혀 있는 짱돌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앞서가지 말라고, 나를 막고 선 <산 돌>이었다.
나는, 그날 나를 넘어지게 한 그 모퉁이 돌을 알아보고,
하나님을 앞지른 발을 돌이켜 주심을 감사했다. 가슴이 확 트였었다.
오늘 묵상을 하다보니, 더 감사해 진다.
나를 넘어지게 하셨던 하나님이...
거치는 돌, 부딪히는 반석의 하나님은, 진정 자유의 하나님이시다.
믿는 성도지만, 불신자와 다를 바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 <정해 주신>, 이 거룩한 불편함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주어진 특권이 아닐까?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이기에 누리는 특권이 아닐까?
나는 마음껏 교만하면서, 사망의 길을 자유롭게 내달리고 싶진 않다.
엄청난 돌을 뿌려주셔서, 죄가 삐집고 나올때마다 꾸준히 걸리적거리는 간섭을 받고 싶다.
시편 37:24
저가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라
나는 그날 교만함을 회개하고 난 후, 여러 가지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다.
아직도 순간순간, 교만한 내 본능이 꿈틀거리면서
비워진 마음을 다시 채우자고 나를 유혹한다.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17) 는 말씀이,
그 결단을 지키도록 붙잡아 주고 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내 것으로 소유하려 들지 말자.
내가 소유하고 주장해야 할 것은, 달랑 <말씀> 하나 뿐!
<저희>란, 7절의 <믿지 않는 너희>를 말한다.
이것은, <믿는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으로 들린다.
큐티한다 하면서도, 그 분의 말씀을 자주 거역하는 나를 향해
<말씀을 믿지 않는 너희>라고 부르시는 것 같다.
<믿지만,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를바 없는 나에게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반석에 걸려 넘어지는 원리는 적용된다.
그러고보니, 아모스서와 디모데서신서 묵상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지속적으로 실천하기 원하셨던 것이,
다름아닌, <나그네 됨>과 <소유된 백성임>을 인식하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이 땅에서 주인행세 하면, 걸려 넘어지는 <나그네>.
이 땅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면, 걸려 넘어지는 <소유된 백성>.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넘어지도록 여기저기 돌을 뿌려놓으신 것 같은 하나님께, 순간 거부감이 생긴다.
근데...아이러니하다...?...!
수없이 불순종했건만, 내 무릎은 왜 아직 멀쩡한거지...?
경험상,
매순간, 하나님은 내게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면>, 돌을 치워주시는 하나님이셨다.
능력이 안 돼서 도저히 지키지 못하겠다고 <고백하면>,
돌을 좀 멀리 굴려다 놓으시고, 다음에 지나가도록 기회를 주셨다.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만 보시면,
비켜 주시고, 기다려 주시는...모퉁이 돌의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문제는, <순종하는 자세> 자체가 싫을 때가 있고, 또 망각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거의 99%의 경우, 내게는 <교만>할 때,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지난 토요일, 나는 나의 <교만>에 짓눌려,
숨막히는 가슴으로 밤늦게 성전을 찾은 적이 있다.
우연히도, 사랑하는 동역자와 딱, 마주쳤는데...
핏기없는 얼굴로 기도실을 들어서는 집사님.
그날은 약속이나 한 듯이, 나와 동일한 문제를 안고 오셨다.
이미 싸인을 받았는데, 두 번이나 무시한 것 같다고 하셨다.
나도, 여러번 말씀을 받았건만, 절제하지 못 했다고 고백하였다.
우리의 교만의 정체를 파해치고 서로 중보를 부탁하였다.
평소, 겸손하고 지혜롭고 입도 조심하시고 따뜻하고...내가 참 존경하는 동역자인데,
하나님 앞에서 꼼짝 못하던 집사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워낙에 교만한 나도, 그 날만은, 넘어져서 타박상 입은 무릎을 꿇어야 함을, 알았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 돌아보니, 그날 우리는 뒤늦게라도 <순종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미 교만을 다 저질렀지만, 위험표시 <모퉁이 돌>을 알아 보았다.
그 돌은, 거쳐서 넘어지라고, 박혀 있는 짱돌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앞서가지 말라고, 나를 막고 선 <산 돌>이었다.
나는, 그날 나를 넘어지게 한 그 모퉁이 돌을 알아보고,
하나님을 앞지른 발을 돌이켜 주심을 감사했다. 가슴이 확 트였었다.
오늘 묵상을 하다보니, 더 감사해 진다.
나를 넘어지게 하셨던 하나님이...
거치는 돌, 부딪히는 반석의 하나님은, 진정 자유의 하나님이시다.
믿는 성도지만, 불신자와 다를 바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 <정해 주신>, 이 거룩한 불편함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주어진 특권이 아닐까?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이기에 누리는 특권이 아닐까?
나는 마음껏 교만하면서, 사망의 길을 자유롭게 내달리고 싶진 않다.
엄청난 돌을 뿌려주셔서, 죄가 삐집고 나올때마다 꾸준히 걸리적거리는 간섭을 받고 싶다.
시편 37:24
저가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라
나는 그날 교만함을 회개하고 난 후, 여러 가지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다.
아직도 순간순간, 교만한 내 본능이 꿈틀거리면서
비워진 마음을 다시 채우자고 나를 유혹한다.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17) 는 말씀이,
그 결단을 지키도록 붙잡아 주고 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내 것으로 소유하려 들지 말자.
내가 소유하고 주장해야 할 것은, 달랑 <말씀> 하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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