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본토에 심으시는 하나님
등록일 2008-07-14
작성자 박소범
본문
“보라 날이 이를찌라...”
그 날은 특별히,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한 날이 될 것이다.
<남유다>의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에 보내신 하나님의 의도를
아모스서 마지막 장에서 읽게 된다.
유다의 남은 자를 향한 플랜을 가지신, 하나님의 심정으로 일할수 있는 선지자 아모스를 통해,
다림줄심판을 선포케 하신 것은,
북이스라엘을 고치시므로, 남유다의 기초를 바로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셨다.
북이스라엘의 우상을 근절시킨 후, 남유다의 제단을 성결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전략이셨다.
비록, 오늘 아모스서가, 바벨론 포로에 대한 예언으로 막을 내리지만,
본토에 그 백성을 심으시겠다는 하나님 때문에, 오늘 묵상, 소망 갖고 들어가 본다.
시온의 포로를 돌리시는, 하나님은 왜?
<심는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 걸까?
내가 그 본토에 심으리니...(아모스 9:15)
대적의 땅으로 보내실 때엔, 심지 않으시고,
<임시로> 머물게만 하실 계획이심을 알 수 있다.
특별한 날 꺼내어 쓰시려고, 청결한 장소에 보관해 둔 그릇처럼.
<그 본토>로 돌려 보내실 땐, <심으리라> 하신다.
남은자들을 좋은 씨앗으로 보시고,
옥토에 꾸욱- 손가락으로 눌러 박으시겠다는 것이다.
추수까지 기대하시는 표현으로 들린다.
하나님은 이렇게, 유다의 남은 자들이 앞으로 다시는 포로되지 않도록,
씨를 <심는> 심정으로, 약속의 땅으로 돌리시는구나...
그 가지에서 메시야의 결실까지 내다보시는 하나님의 안목이 되어 보니,
현재 어려움 속의 <나>를, 좋은 땅에 옮겨 심으시기 전에
모판에서 키우고 있는 모종처럼 여겨주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13절의 말씀은, 남은자들에게 약속하시는 소망의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여호와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결단하는, 하나님의 적용part 처럼 들려서 더욱 힘이 난다.
노아 홍수 때의, 무지개 언약처럼.
지난 3년동안 큐티모임 가는 날,
둘째아이를 봐주다가 셋째까지 봐주다가 넷째까지 돌보아 준 친구.
(친구도 베이비시터를 시작할 때,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나도 몰랐으니...)
내가 모임에 임하는 성실 못지 않게, 아이들과 매주 성실한 모임을 가져 준,
친구의 사랑에 눈물이 난다.
어제, 그 친구가...LA로 이사를 갔다.
형편이 어려워져서, 이제 지인의 집에 머무르며 일도 해야 할 처지이다.
어제 오후, 우리집 거라지에 모든 살림을 이사시켜 놓고,
다섯식구 몸만 지인의 집으로 들어갔다.
나를 위해, 오랜 시간 수고하여 준 친구의 사랑을, 내 가슴에 꾸욱 심어 둔다.
아모스가 끝나는 날, 이렇게 마음도 횡하고...새로운 고민도 생겼다.
이제 모임갈 때 아기를 어디에 맡겨야 할 지...
말씀이 나를 경책한다.
기도는 하되, 고민을 <심지는> 말라고.
아모스 9: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그 때에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네가지의 영적원리를 발견한다.
첫째,
내가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
추수할 열매가 결정되는 원리.
둘째,
뒤를 이으며...뒤를 이으며...
앞에 둔 <생각과 말과 믿음대로>, 뒤가 그대로 이어지는 원리.
셋째,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가, 포도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가...
<내>가! 뿌린 것을, <내>가! 거두게 되는 원리.
넷째,
<본토>에 심기워지면, 극상품 포도가 보장되는 원리.
둘째아이 임신하기 전 해에, 나를 큐티의 땅에 심으셔서
그 이후, 세아이를 출산하기까지...몸조리 할 때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한 주도 나를 그 땅에서 뽑은 적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큐티의 땅이, 정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본토가 맞다면,
꾸-욱 눌러 주셔서, 그 어떤 것도 나를 뽑아내지 못하게 하시리라!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아모스 9:9>
<적용>
지금껏 받은 은혜 한 알갱이도 잃지 않기.
새로운 문제에 대한 믿음의 씨 뿌리기.
그 날은 특별히,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한 날이 될 것이다.
<남유다>의 아모스를, <북이스라엘>에 보내신 하나님의 의도를
아모스서 마지막 장에서 읽게 된다.
유다의 남은 자를 향한 플랜을 가지신, 하나님의 심정으로 일할수 있는 선지자 아모스를 통해,
다림줄심판을 선포케 하신 것은,
북이스라엘을 고치시므로, 남유다의 기초를 바로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셨다.
북이스라엘의 우상을 근절시킨 후, 남유다의 제단을 성결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전략이셨다.
비록, 오늘 아모스서가, 바벨론 포로에 대한 예언으로 막을 내리지만,
본토에 그 백성을 심으시겠다는 하나님 때문에, 오늘 묵상, 소망 갖고 들어가 본다.
시온의 포로를 돌리시는, 하나님은 왜?
<심는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 걸까?
내가 그 본토에 심으리니...(아모스 9:15)
대적의 땅으로 보내실 때엔, 심지 않으시고,
<임시로> 머물게만 하실 계획이심을 알 수 있다.
특별한 날 꺼내어 쓰시려고, 청결한 장소에 보관해 둔 그릇처럼.
<그 본토>로 돌려 보내실 땐, <심으리라> 하신다.
남은자들을 좋은 씨앗으로 보시고,
옥토에 꾸욱- 손가락으로 눌러 박으시겠다는 것이다.
추수까지 기대하시는 표현으로 들린다.
하나님은 이렇게, 유다의 남은 자들이 앞으로 다시는 포로되지 않도록,
씨를 <심는> 심정으로, 약속의 땅으로 돌리시는구나...
그 가지에서 메시야의 결실까지 내다보시는 하나님의 안목이 되어 보니,
현재 어려움 속의 <나>를, 좋은 땅에 옮겨 심으시기 전에
모판에서 키우고 있는 모종처럼 여겨주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13절의 말씀은, 남은자들에게 약속하시는 소망의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여호와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결단하는, 하나님의 적용part 처럼 들려서 더욱 힘이 난다.
노아 홍수 때의, 무지개 언약처럼.
지난 3년동안 큐티모임 가는 날,
둘째아이를 봐주다가 셋째까지 봐주다가 넷째까지 돌보아 준 친구.
(친구도 베이비시터를 시작할 때,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나도 몰랐으니...)
내가 모임에 임하는 성실 못지 않게, 아이들과 매주 성실한 모임을 가져 준,
친구의 사랑에 눈물이 난다.
어제, 그 친구가...LA로 이사를 갔다.
형편이 어려워져서, 이제 지인의 집에 머무르며 일도 해야 할 처지이다.
어제 오후, 우리집 거라지에 모든 살림을 이사시켜 놓고,
다섯식구 몸만 지인의 집으로 들어갔다.
나를 위해, 오랜 시간 수고하여 준 친구의 사랑을, 내 가슴에 꾸욱 심어 둔다.
아모스가 끝나는 날, 이렇게 마음도 횡하고...새로운 고민도 생겼다.
이제 모임갈 때 아기를 어디에 맡겨야 할 지...
말씀이 나를 경책한다.
기도는 하되, 고민을 <심지는> 말라고.
아모스 9: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그 때에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네가지의 영적원리를 발견한다.
첫째,
내가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
추수할 열매가 결정되는 원리.
둘째,
뒤를 이으며...뒤를 이으며...
앞에 둔 <생각과 말과 믿음대로>, 뒤가 그대로 이어지는 원리.
셋째,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가, 포도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가...
<내>가! 뿌린 것을, <내>가! 거두게 되는 원리.
넷째,
<본토>에 심기워지면, 극상품 포도가 보장되는 원리.
둘째아이 임신하기 전 해에, 나를 큐티의 땅에 심으셔서
그 이후, 세아이를 출산하기까지...몸조리 할 때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한 주도 나를 그 땅에서 뽑은 적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큐티의 땅이, 정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본토가 맞다면,
꾸-욱 눌러 주셔서, 그 어떤 것도 나를 뽑아내지 못하게 하시리라!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아모스 9:9>
<적용>
지금껏 받은 은혜 한 알갱이도 잃지 않기.
새로운 문제에 대한 믿음의 씨 뿌리기.
댓글목록

김수희님의 댓글
김수희 작성일
저도 맨날 골고올~ 하면서도 지난 4년간 인도자를 맡은이후
아파서 빠져 본적이 (아니 무슨 이유로든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돌보심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제 아모스를 마치며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아무리 작은 알갱이라도 땅에 안 떨어트리시려고
가장 촘촘한 체 바구니를 고르시는 긍휼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모두 알갱이로 체 안에 남은 복된 인생들이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십자가의 은혜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