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24시간 만에 답을 쓰며
본문
11/8 (창세기 44:14-34)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어있거늘
정말 억울하고 또 억울했을 유다는 한마디도 변명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라고 고백한다. 유다는 현재의 억울함이 과거의 죄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지난 20년동안 그의 마음을 짖눌렀던 죄책감이 더 커서 현재의 억울함을 주장할수 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다는 유다의 고백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생각한다. 한 생명줄로 묶여 있는 예수를 하나님은 어떻게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을까. 두 아들을 잃었기 때문에 유다는 이 비밀을 알게 된 것일까. 그래서 유다는 아버지 야곱의 베냐민의 대한 마음을 알게 된 것일까. 생명을 잃는 아픔을 경험한 유다는 야곱의 편애 조차도 감싸 안는다.
야곱의 요셉에 대한 편애로 형제들은 요셉을 미워하고 결국 노예로 팔아 버렸다. 그러나 이제 야곱의 베냐민의 대한 편애로 형제들은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 하나가 되고 유다는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자처한다. 야곱의 편애는 변함이 없지만 형제들이 변했다. 야곱의 편애가 여전한데 아들들은 어떻게 이렇게 변할수 있을까.
이것이 복음이다. 깨어진 세상은 변하지 않지만 부조리와 부당한 일들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들이 변하는것이 복음이다. 깨어진 세상을 비판하고 정죄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보듬어 안고 함께 가는것이 복음이다. 야곱의 편애를 보듬어 안는 유다처럼, 우리가 변해서 변하지 않는 세상을 보듬어 안는 것이 복음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자매가 있다. 그 자매의 카톡을 받고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하루 종일 기도하며 보냈지만 여전히 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다음날 아침에야 답을 보내게 되었다. 나에게 언제나 훅 들어와 당황하게 하는 그 자매, 화가 나는 마음을 다스리고 또 다스리다 보면 무거운 하루를 보내게 하는 그 자매, 밤에 잠들때도 답답한 마음을 주님께 드리려고 기도하게 하는 그 자매, 도대체 왜? 하며 말 섞기도 피곤해서 회피하고 싶은 그 자매에게 24시간 만에 답을 쓰며 예수님을 생각한다. 아버지의 편애를 보듬어 안는 유다를 생각하니 이쯤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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