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야곱의 하프타임’
본문
2022년 10월 12일 (수)
본문:창세기 33:12-20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달라진 야곱
오늘 본문 말씀에 첫 구절의 주어는 에서이다. 그의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꼭 갑과 을의 관계 같이 말을 한다. 그동안의 말씀을 나열하면 주어가 야곱이었다. 형 에서와의 만남을 위해 물질을 준비하고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건드릴까 봐 언어와 행동까지 미리 계획했던 일들을 그는 주도적으로 실행에 옮겼었다. 그런데 오늘 첫 구절이 에서에게로 그 주도권이 옮겨진 듯 보인다. 이에 반응하는 야곱은 그에 지지않고 담대하게 자기 생각을 소신있게 이야기한다. 정말 야곱이 달라졌다.
말과 몸으로 그를 하나님 얼굴을 본 것 같이 일곱번 땅에 굽히며, 내 주의 종이라고 자신을
낮추는 야곱, 그러면서도 형 에서의 제안을 깍듯이 거절하는 용기는 무얼일까. 얼마전에 야곱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어 달라고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난다’고 주께 간절히 간구하던 자였다.
그런 그가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사백명의 장정들을 거느리고 오는 에서 앞에 당당히 나아가는 모습, 그리고 에서의 제안을 거절하는 그의 속마음을 옅 볼 수 있는 것이 오늘의 본문 말씀이다. 이를 통해 오늘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지 야곱과 에서의 발걸음을 잘 따라 가야겠다.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우니라
*이산가족 상봉
그는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 그의 인생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자기 힘으로 자수성가한 인생에서 이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새로운 모습의 ‘이스라엘’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하신다. 자기 꾀로 ,힘으로 하는 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이스라엘’로의 출발을 선언하며 당당히 형 에서와 재회를 했다. 야곱은 늘 이 장면을 상상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형의 감정을 잘 풀어줄 수 있을까. 혹시 형이 아직도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야곱의 우려와 달리 형 에서의 발길은 우호적이었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옛말이 맞는 것 같다.
어색한 공기를 가르며 형 에서가 먼저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년만에 만난 두사람은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것이 오래전 TV에서 보았던 남.북한의 이산가족 현장 같다. 이제 구십을 훌쩍 넘긴 두 사람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파노라마가 찰나에 지나 갔고, 눈에 보이는 것은 두 사람의 머리에 어느덧 하얀 서리가 희끗희끗 내린 두 노인의 모습 뿐이다. 부둥켜 안은 팔의 힘도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을 두 형제의 마음이 짠하다. 그동안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공소시효가 지나 버렸다. 두 형제의 감정이 눈물을 타고 나에게 전해져 온다. 남자들의 눈물은 물(H2O)보다 진하다. 이렇게 두 형제의 화해는 물꼬가 트이고 물이 아래로 흐르듯 20년 세월의 회포도 자연스럽게 풀려갔다..
14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라
16 이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동상이몽
이런 야곱의 발걸음이 수상하다. 형과의 우호적인 화해가 있었고 형 에서는 동생을 챙기듯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그러니 함께 가자’라고 동생을 보호하려는 제안을 한다. 앞으로 펼쳐질 약속의 땅에서 형의 우호적인 제안은 분명 야곱에게는 안전이 보장되고 여러가지로 득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야곱은 두차례 신중하게 거절을 한다. 그리고 나중에 형이 있는 세일로 가겠다고 약속하며 형을 배웅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줄 알았는데, 발걸음은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는 두 사람, 특히 야곱의 속마음이 궁금하다.
넓은 길을 두고 좁은 길로 가는 야곱의 발걸음은 숙곳으로 우회하고 거기서 집을 짓고 우릿간을 짓는다. 그리고 세겜으로 이주하고 그 곳에서 현지인의 땅을 사고 장막을 짓는다. 이 길이 가장 평안히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것을 야곱은 알고 있었나 보다.
예전처럼 자기 머리로가 아니라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한 그가 보인 생애 최고의 ‘순종’이란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나아갈때 그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형 에서와의 길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형과의 동행길을 거절했던 것이다. 이날에 에서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세일로 갔다. 야곱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그리고 그리운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목인 숙곳으로 방향을 바꾼 가장 큰 이유이다.
문득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에 자신을 떠나는 동역자들에 대한 글이 떠오른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 로 갔고…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딤후 4:10-11)
우리의 선택은 세상인지 아니면 주님을 따라 가는 길인지 늘 두길에 위에 서 있다.
오늘 그 선택에 서 있는 야곱은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길을 선택했다.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하프타임
이제 야곱도 나이가 어느덧 구십을 훌쩍 넘긴 여느 노인의 모습이다. 밧단아람에서 인생에 전반부는 종처럼 육체적인 고된 훈련을 하며 보냈다. 때가 차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버지 집으로 가고는 있지만, 하나님을 맞대면 했던 브니엘에서의 아침이 되기 전까지는 그도 불안한 귀향으로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만나주시고 챙기시며 남은 후반에 생에 큰 힘을 실어 주셨다. 오늘 본문 말씀이 안정과 편안함이 있는 재 정비의 시간 ‘하프타임’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그가 이 시간을 잘 보내면 그는 이제 하나님의 완벽하신 계획을 믿고, 인생의 후반부의 시간을 멋지게 살아낼 것이다.
하프타임은 축구 경기를 할때 전반과 후반 사이에 휴식시간을 지칭하는 말이다. 전반부를 뛰고 후반부로 가기 전에 시간인데 그때는 몇가지 룰이 있다. 그때는 꼭 휴식을 취해야하고, 정해진 시간 15분을 초과해서는 안된다. 이 시간은 회복의 시간이다. 전반부의 밀리던 승패도 이 시간을 잘 보내면 대역전의 기회가 생긴다.
오늘 본문은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는 새로운 인생의 멋진 후반부의 삶에 꼭 필요한 하프타임이다. 이 마저도 허락하신 시간이다. 그래서 안정과 성공이 보장된 세일로 형 에서를 따라 가지않고 숙곳으로, 세겜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세겜으로 지역을 넓히며 가나안의 중심지로 들어 가는 것이다.
인생 처음으로 자기집을 짓고 우릿간을 만들고 현지인의 땅을 사며 하나님 약속에 근접해 가며 회복과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룰을 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정해진 시간을 넘어 편안함에 익숙해 그곳에 오래 머물면 안되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이 야곱에게도 현재의 우리에게도 그 시간은 흐르고 있다.
야곱의 다음 후반부 인생은 전반부 보다 어떤면에서 더 엄청난 영적 싸움과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하프타임에서 보내는 숙곳과 세겜은 정말 중요한 무대인 것이다. 앞으로 야곱으로 인해 뻗어 나가는 가지가 담장을 넘어 열매를 맺을 때까지 야곱은 인생 후반부의 삶을 살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가나안을 넘어 애굽을 넘어 온 세상에 높은 담을 넘어 가는 그 계획의 유용한 입지적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전반부는 밧단아람에서 그의 이름 야곱에 걸맞는 수준으로 살았기 때문에 상대가 안되는 힘든 경기를 혼자 고군분투했다. 그 결과 인간 야곱이 승리한 경기라면 이제 이 하프타임이 끝나고 인생의 후반부 그 끝마무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야곱이 될 것이다. 그 섭리를 따라 가는 ‘이스라엘’로 거듭날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준다.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날마다 큐티로 쌓는 제단
야곱은 처음으로 자기집을 짓고 우릿간을 만들고 땅을 사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다. 이곳까지의 여정을 안전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적지않은 나의 인생을 뒤돌아 보니 나의 전반부는 야곱처럼 내 의를 가지고 나름 열심히 살았다. 이제 나의 후반부를 앞에 둔 이 싯점이 분명 나의 하프타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간에 약해진 체력도 기르고 잠깐의 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마주하는 시간에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머지않아 야곱처럼 브니엘의 아침을 맞을 꿈을 이어 갈 것이다.
이런 마음 뒤 한켠에 자꾸 뒤를 돌아 보는 나를 만난다. 힘들게 지나온 나의 밧단아람, 우울감과 불안으로 고생한 2년의 시간이 자꾸 나의 길을 방해한다. 나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불러 주시면 좋겠다. 브니엘의 아침, 그 빛나는 순간을 만나면 용기가 생길 것 같다. 그래서 세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하프타임을 보내는 숙곳과 세겜으로 인도해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거기에서 날마다 감사하며 큐티로 제단을 쌓고, 그 하나님을 높이 불러 드리고 싶다. 오늘 나의 주어는 에서도 야곱도 아니다. 오늘 나의 주어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나의 인생의 주어도 하나님이시다.
엘엘로헤이스라엘!!
지금은 나의 하프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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