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논쟁 하려는 생각
본문
고린도전서 11:1-16
오늘 본문의 내용은 여자가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에 관한 바울 사도의 말씀입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고, 여자가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도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며, 여자는 남자에게서 났으며,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지음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에게서 났고, 주안에서 남자와 여자 모두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에게서 났으니, 남자와 여자는 서로 돕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여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이것이 바로 모든 교회의 관례라고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말씀은,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라는 2절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안의 예배 드리는 모습에 관해 할 말이 많은 바울이 먼저 그들이 잘한 것을 칭찬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모든 일에 바울을 기억하고, 바울이 전하여 준 전통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을 먼저 칭찬하면서, 11장의 서두를 시작하는 바울의 지혜를 배웁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교회안에서 예배를 드릴때 남자와 여자의 모습에 대한 교회의 관례와, 그 이유에 대해, 피해야 할것과 행해야 할것에 대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설명하는 바울을 만납니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의 교회의 관례는 이렇다고 분명히 말하는 바울을 만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정죄하지 않고 사랑으로 권유하는 바울 사도를 만납니다.
바울이 칭찬을 먼저 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방을 먼저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자신을 먼저 생각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부터 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때를 돌아보면, 틀린 말을 해서가 아니라 바른 말을 했다는 것과, 상대방을 위한 바른말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상처만 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부끄럽게도 이런 실수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이러한 반복되는 실수들의 배후에는 상대방을 위한다는 가면을 썼지만, 사실상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이 앞섰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조언은 유익한 조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바울에게 배울 점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3절의,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3). 라는 말씀을 읽으며, 바울에게 배우는 또 다른 점은, 바울의 사랑은, 사랑하기 때문에 약해지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강건한 마음입니다. 바울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분명히 알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자신의 기대치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해 주며,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 바울을 만납니다. 바울 사도의 단호한 어조를 보면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연약한 나의 태도를 돌아봅니다. 단호하지 못한 태도의 배후를 살펴보니 사람의 눈치를 보는 나의 연약함이 보입니다. 바울 사도와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눈치만 보는데, 하나님의 눈치를 보다가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흔들리는 나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느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호하려면, 주 안에서 주님의 눈치만 살펴야 한다는 것을 바울 사도에게서 배웁니다.
저에게 두 번째로 다가온 말씀은 13절,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13) 라는 말씀입니다. 머리를 가리든 가리지 않든, 머리를 기르든 자르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유함’이라는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누리는 자신의 자유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자유’를 놓치고 있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스스로 판단하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에 비추어 나도 나의 신앙생활을 판단해 보려고 합니다. 내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머리를 가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머리를 가린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말씀대로 행하는 겸손한 태도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창조의 질서에 순종하는 태도입니다.
바울의 말씀에서 반복되는 남성과 여성의 창조의 질서에 대해 읽다 보니, 세상의 나라가 혼돈의 나라라면, 하나님의 나라는 질서의 나라라는 것을 배웁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만난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혼돈의 세상을 질서로 정리하시고, 질서 가운데 남자를 창조하시고, 질서 가운데 남자에게서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남자에게는 짧은 머리로, 여자에게는 긴 머리로 영광을 받으시는 질서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질서에 대해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허무한 논쟁을 멈추고,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3:18),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8:2).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면 지혜가 없는 것이고, 안다고 생각하면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바울 사도의 두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의 질서에 대해 논쟁하려는 사람은 스스로 안다고,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남편과 자녀들과 친구들과 무엇인가에 대해 논쟁하려고 할 때를 돌아보면,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것을 확신할 때입니다. 스스로 안다고, 지혜가 있다고 여길 때, 논쟁하려고 하는 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질서의 나라라는 것과, 질서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니, 나도 질서의 자녀가 되어야 마땅함을 깨닫습니다. 질서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 그대로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너울을 써야 하면 쓰고, 쓰지 말아야 하면 벗고, 서로의 권위를 존중하며, 자신의 위격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바라보고, 그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자의 본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부부관계에서 남편의 권위는 그리스도에게서 오고, 아내의 권위는 남편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3절 메세지 성경) 그리스도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대화할수 없고, 남편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대화할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머리에 너울을 쓰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아내는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고, 머리에 너울을 쓰지 않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남편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순종을 표합니다. 여기에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너무 확대 해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지 혼자 힘으로 살 수 없습니다. 모든 남자는 여자에게서 나왔고, 모든 여자도 남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는 누가 먼저냐, 누가 높으냐를 따지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직 집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성이며, 성에 걸맞은 자신의 겉모습을 순리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다가온 말씀은 16절의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입니다. 바울은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는 없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이런 관례가 없다는 것도 분명히 합니다. 논쟁하려는 생각이 자주 드는 나에게 주시는 말씀 같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공동체의 관례를 잘 알지 못해서 논쟁하려 한다는 것과, 사람의 마음에 논쟁하려는 생각을 넣어주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례에 대해 논쟁하려는 생각을 주는 것은 성령이 아닌 사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논쟁하려는 작은 마음이 커져 교회 공동체를 흔들수 있으며 교회를 소란하게 할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논쟁하기 좋아하는 나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으로 듣고, 바울의 말씀에 아멘합니다.
복음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소유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자유한 자는 무슨 일이든 하나님이 드러나도록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누구보다도 절대적인 자유를 지니신 분이었지만 누구보다도 그 자유를 제한하신 분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죽음으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내게 주어진 자유를 사용하지 않는 자유’를 누려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멋진 군마를 타실 수도 있었는데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따라 오늘 내가 군마 대신 선택해야 할 어린 나귀, 스스로 제한해야 하는 자유는 무엇일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스스로 제한해야 하는 자유는 나 자신의 욕망을 제한하는 자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먹을수 있지만 먹지않는 자유, 갈수 있지만 가지 않는 자유, 가질수 있지만 갖지 않는 자유, 떠날수 있지만 떠나지 않는 자유, 손절할 수 있지만 손절 하지 않는 자유, 따질수 있지만 따지지 않는 자유, 바보같은 자유, 손해보는 자유, 빼앗기는 자유, 때로는 무기력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되도록, 기이한 기도를 드리며, 나도 바울사도 처럼 성장해 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혼돈의 세상을 질서의 세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질서의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삶도 하나님의 질서로 통치하셨고, 하시고, 하실 것을 믿습니다. 나의 질서가 아닌 하나님의 질서로, 저의 삶이 정결하게 정돈되도록 기도 드립니다. 하나님의 질서로 저를 날마다 순간마다 통치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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